'디아블로3'를 어찌 하오리까

일반입력 :2012/01/09 11:22    수정: 2012/01/09 18:11

전하나 기자

정부가 ‘디아블로3’ 딜레마에 빠졌다.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가 이 게임의 한국 서비스를 위해 게임물등급위원회에 등급분류 신청을 냈지만 판정이 계속 보류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오는 2월로 관측된 디아블로3 글로벌 출시 일정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9일 관련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정부가 해당 게임의 아이템 현금거래 기능을 공식적으로 도입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게임의 위법여부와 상관없이 딜레마에 빠진 것”이라고 말했다.

블리자드가 디아블로3에 대한 등급심의를 처음 신청한 것은 지난달 2일이다. 이에 대한 심사는 게임위가 추가 자료를 요청하면서 한차례 연기됐다. 이후 블리자드가 논란이 되고 있는 ‘환전 시스템’을 삭제했고 게임위는 등급분류회의를 세차례나 더 열었지만 안건 상정조차 하지 않는 등 안갯속 행보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쟁점은 디아블로3 내 도입되는 ‘화폐 경매장’이다. 화폐 경매장은 이용자가 게임을 통해 실제 화폐를 얻을 수 있는 ‘배틀코인’을 이용해 아이템 거래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현재 환전 시스템이 빠졌다곤 하지만 게임위는 블리자드가 추후 해당 기능을 도입할 수 있는 UI를 남겨둔 이상 쉽사리 등급 판정을 내줄 수 없단 입장이다. 자칫하면 사행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블리자드측은 “게임위는 현재 환전 시스템이 삭제된 버전의 게임을 가지고 공정하게 심사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법무법인 정진의 이병찬 변호사도 “특정 게임이 사행적 요소가 커질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등급심사를 필요 이상으로 지연한 것은 적법하지 않다”며 “블리자드가 나중에 아이템 현금화 기능을 추가하게 된다면 그때 다시 규제 여부를 검토하면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런 이유로 게임위에겐 더 이상 디아블로3 등급판정을 보류할 만한 명분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게임위의 고민이 쉽게 결판나지 않는 것은 디아블로3 등급판정이 단지 게임 하나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할 것이란 걱정 탓이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게임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시각이 좋지 않을 뿐더러 아이템 현거래 금지를 골자로 오는 22일 시행되는 개정 게임법 등을 미루어 볼 때에도 정부의 기조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특히 디아블로3의 등급을 내주면 동일한 장르와 기능을 표방한 게임들이 쏟아질 텐데 게중엔 ‘사짜’ 게임들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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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사행성 아케이드 게임물은 최근 들어 온라인으로 급격히 진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얼핏 온라인 캐주얼게임으로 보여지는 이들 게임은 이용자간 상호작용없이 단순 반복 조작을 통해 결과를 축적하는 방식을 취하며 아이템 구매에 필요한 선불카드를 만들거나 현금 환전을 유도해 문제가 되고 있다. 선물하기 기능 등을 악용해 PC방 주인을 통해 환전을 시도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너무 앞선 기우라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이번 디아블로 사태로 게임위가 단지 게임 하나에 대한 대처 능력이 아니라 그 뒤에 따를 파장에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부재하다는 것을 드러낸 꼴”이라고 했다. 이 전문가는 이어 “게임위가 지나친 걱정으로 장고 끝에 수를 둘 타이밍을 놓쳤지만 최악의 수를 두지는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