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가 즐거운 회사 ‘KTH’…왜?

[인터뷰]권정혁 KTH 기술전략팀장

일반입력 :2011/12/07 10:56    수정: 2011/12/15 08:28

정윤희 기자

이제 IT 분야의 구심점은 소프트웨어(SW)로 이동했다. 스마트폰을 앞세운 애플, 구글 생태계가 출범한 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서 SW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경쟁적으로 터져 나왔다.

안타까운 점은 SW 개발자 양성과 역량 강화, 어려움 해결을 부르짖는 목소리는 여러 해 동안 이어져 왔지만 산업 생태계는 제자리다. IT업계에서 개발자는 대표적인 3D 직종으로 분류된 지 오래다. 어느 직장인들 편하겠냐마는, 잦은 야근과 박봉에 시달리다보면 자연스럽게 개발자의 끝은 치킨집 사장이라는 ‘닭튀김 수렴법칙’ 같은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온다.

때문에 최근 불어 닥친 SW 열풍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점은 여느 개발자가 마찬가지 일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최근 눈에 띄는 곳은 KTH다. 단순한 개발자 지원에 그치지 않고 기업 차원에서 기본적으로 일하는 환경부터 바꾸겠다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개발자가 즐거운 회사’를 표방한 KTH는 올해 초부터 개발자 영입, 역량 강화에 힘쓰며 차근차근 내실 다지기에 들어갔다.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 ‘H3’다. KTH는 지난달 30일 서울 신대방 전문건설회관에서 열린 개발자 대상 컨퍼런스 ‘H3’에서 개발자 파워를 유감없이 뽐내며 호평을 얻었다.

“개발자가 행복한 세상. 그게 KTH가 지향하는 목적이자 컨퍼런스의 메인 테마였어요. 지금 당장 KTH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되고 싶다는 거죠. 그런 세상으로 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 나가고 있는지 개발자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것이 가장 컸어요.”

‘H3’를 큐레이팅한 권정혁 KTH 기술전략팀장을 만났다. 올해 초 KTH에 합류한 그는 개발자 에반젤리스트기도 하다. 권 팀장은 KTH에 들어올 때 직접 개발자 에반젤리스트를 자원했단다. 실제로 기술이 아는 사람이 개발자들과 소통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개발자들의 실상을 사전등록이 끝난 후 트위터에 등록된 한 참관객의 피드백으로 설명했다. ‘(H3 사전등록하고 난 후에) 연차 쓰고 가야겠다.’

“가슴 아팠어요. 컨퍼런스를 연차 쓰고 가야한다는 사실이요. 이걸 왜 연차를 씁니까, 회사가 보내줘야죠. 개발자들이 어떠한 비전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개인뿐만 아니라 회사에도 좋고, 전체 산업 생태계에도 좋은 일입니다.”

그가 지난 두 달 동안 ‘H3’를 준비하면서 고민했던 부분은 참관객들이 단순한 제품 소개가 아닌 어떤 것을 얻어가게 할 것인 가였다. 이를 위해 직접 컨퍼런스를 다녀보면서 아쉬웠던 점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 가에 초점을 맞췄다. 사실 ‘H3’는 KTH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연 개발자 행사였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상당했다는 고백이다.

“상품 소개에 치우치거나 세션이 중복되거나 하는 부분은 과감히 뺐어요. 직접 다른 컨퍼런스에 가보았을 때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더라고요. 또 단순히 발표 내용을 슬라이드로 프린트해서 주는 것보다는 논문을 쓰듯 자료집을 만들었어요. 나중에라도 찾아볼 수 있게 말이죠. 솔직히 말해서 다른 개발자 행사보다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내용만큼은 알차게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권 팀장은 ‘H3’를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둔 행사라고 자평했다. 넉넉지 못한 예산 내에서 최대한 직원들이 힘을 모았다는 설명이다. 행사장은 가까운 신대방동 전문건설회관을 섭외하고 자료집 디자인은 디자인팀에서, 행사 스탭은 막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맡는 식이다. “돈으로 막을 것을 몸으로 막았어요(웃음).”

직접 준비하다보니 내부 분위기도 좋아졌다. ‘우리가 만드는 행사’라고 인식하자 개발자들도 서로 발표하겠다고 몰렸고 행사 지원자도 늘어났다. 자원봉사 했던 신입사원들도 자부심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웃으면서 준비를 했지만, 사실 걱정도 많았어요. 근데 이제 내년에 더 잘하지 않으면 욕 먹겠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행히 개발자분들이 너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예전에는 KT에 기생하는 회사라는 이미지도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바뀌었나 하는 분도 있고요. 회사가 바뀌었다는 것을 남들이 알아준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죠.”

참관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행사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비가 오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1천여명 이상의 참관객들이 몰렸다. 특히 호평을 얻은 것은 정성을 기울인 자료집이다. 자료집 인기가 치솟다보니 여기저기서 요청이 밀려들었다. 결국 KTH는 행사 다음날 컨퍼런스 자료집을 추가 인쇄하기로 결정했다.

“자료집 만드느라 고생 좀 했죠. 출판사를 통해 인쇄를 하려면 한 달 전에 원고를 넘겨야 하거든요. 제가 자료집에 쓸 원고 달라고 좀 심하게 독촉을 했었어요. 발표자들이 저보고 빚쟁이 같다고 하더라고요. 또 발표자마다 프레젠테이션도 적게는 3, 4번 많게는 대여섯 번 넘게 연습했어요. 주말도 반납하고 말이죠.”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내년 행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개발자들을 위한 행사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다. KTH가 행사 말미에 내년에도 꼭 ‘H3’를 열겠다는 말을 남긴 이유다. 그래서 사이트 주소도 2011로 만들었다.

“이제는 기술을 아는 회사가 승리하는 겁니다. 개발자들도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소위 말하는 삽질이라는 것을 알려면 남을 봐야하고요. ‘우리 회사는 잘하고 있다, 봐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바꿔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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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팀장은 ‘H3’에 대해 ‘해피 해킹 히어로(Happy Hacking Hero)’라고 정의했다. 개발자가 즐거워야 한다는 신념을 그대로 반영한 네이밍이다. 그런 그가 내년 행사에 바라는 점은 한 가지다.

“내년에는 개발자들이 연차를 쓰지 않고도 컨퍼런스에 참석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회사 사장님들이 먼저 개발자들에게 공부하고 오라고 등을 떠밀거나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