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탭보다 킨들파이어가 무서운 이유

일반입력 :2011/10/12 09:23    수정: 2011/10/12 13:25

남혜현 기자

아이폰4S가 발표된 지난 5일, 삼성전자도 서초사옥에서 조촐한 미디어 행사를 열었다. 디지털 콘텐츠 공모전 시상식이었다. 전자 제품 만드는 회사에서 무슨 문학상이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의미는 있었다. 국산 하드웨어 업체들도 콘텐츠를 핵심 경쟁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마존 태블릿 킨들파이어가 열풍이다. 11일(현지시각) 해외 IT매체들에 따르면 킨들파이어는 사전예약 판매 하루만에 9만5천여대가 팔렸다. 닷새간 사전주문량만 25만대다. 내달 초 공식 출시되면 판매량이 애플 아이패드와 맞먹을 것이란 이른 기대도 나온다.

킨들파이어가 발표되자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혹평은 우선 낮은 사양을 겨냥했다. 카메라도, GPS도 없다. 3G 통신 모듈도 빠졌다. 저장 용량도 8기가바이트(GB)로 아이패드 절반수준이다. 고사양 제품으로 눈이 높아진 소비자들의 기대에 부합하긴 모자란다는 지적이었다.

그래도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가격이 큰 역할을 했다. 아마존은 킨들 파이어를 199.99달러에 내놨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원가보다 적게는 10달러, 많게는 50달러까지 더 저렴하다. 많이 팔릴수록 아마존이 손해인 가격이다.

아마존은 자신만만했다.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풍겼다. 제프 베조 CEO는 킨들 파이어를 발표하며 단순한 태블릿(하드웨어)이 아니라 (총체적인) 서비스라 강조했다. 단기적으론 손해를 봐도 장기적으론 산업 1위로 올라서겠다는 욕심, 아마존이 킨들로 세계 제1의 온라인 서점에 올라섰던 바로 그 전략이다.

■아마존 프라임의 비밀

저가 정책을 내세웠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태블릿 제조업체들이 경쟁력을 확보하려 이미 300달러 이하 태블릿을 선보였다. HP는 아예 재고정리를 앞세워 499달러 짜리 터치패드 가격을 99.99달러까지 내렸다. 애플 아이패드와 삼성 갤럭시탭을 제외한 대부분 태블릿이 100~200달러씩 가격을 떨어트리는 판국이다.

결과는 안 팔려요다. 99달러짜리 터치패드를 제외하곤 다수 태블릿이 이렇다할 가격 효과를 보진 못했다. 킨들파이어보다 사양도 높은 제품인데, 소비자들은 큰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굳이 이 태블릿을 사야할 필요를 못느꼈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진짜 무서운 이유는 여기서 나온다. 소비자들이 언제 지갑을 여는지를 안다. 콘텐츠다. 아마존은 단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콘텐츠 생태계를 이미 갖추고 있다. 여기에 손해를 보면서 단말을 싸게 공급한다. 소비자들은 잘 빠진 디자인과 높은 사양에 감탄하지만, 효용성이 없다면 돈을 쓰지 않는다.

게다가 아마존은 이미 전자책 시장에서 e잉크 단말기 '킨들'로 성공한 경험이 있다. 아마존은 최근 킨들의 가격을 99달러까지 떨어트렸다. 광고 애플리케이션을 보는 대신 단말 가격을 저렴하게 내놓는 실험도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자체 온라인쇼핑몰에 올라온 단말 중 최다 판매를 기록했다. 킨들에서 볼 수 있는 콘텐츠 판매도 늘어났음은 물론이다.

아마존은 킨들로 전자책 분야 1위 사업자로 우뚝 섰다. 킨들파이어는 그 다음을 위한 포석이다. 단순히 책과 DVD를 파는 것을 넘어 빠르게 디지털콘텐츠 시장을 장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함이 묻어있다. e잉크 단말로 도서 시장을 장악했다면, 태블릿으론 동영상, 영화, TV쇼 등 다양한 콘텐츠 시장 확보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핵심은 프라임 서비스다. 아마존은 킨들파이어 구매자에 프라임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연간 79달러만 내면 동영상 콘텐츠를 무료로 볼 수 있다. 제품을 구매하면 배송비도 무료다. 방대한 콘텐츠와 프라임 서비스는 소비자들이 주저없이 킨들파이어를 구매하게 하는 요인이다.

미 지디넷은 최근 올해 연말 시즌은 게임콘솔이나 PC, 아이팟이 큰 선물이 안될 것이라며 올해는 아마존 킨들 파이어의 해라고 평했다. 연말 최대 성수기에 아이들을 위한 선물로 킨들 파이어가 최대 히트작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형 콘텐츠 생태계 시급

하드웨어 시장은 지난 2년간 빠르게 변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등장했고, 시장 참여자도 크게 늘었다. 이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최대 경쟁자는 노키아도 모토로라도 아니다. 애플은 물론 소프트웨어 기반의 구글, 온라인서점 아마존이 가장 큰 경쟁자로 거론된다. 시대가 이미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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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하드웨어에 집중하는 국내 기업이 걱정스러운 이유다. 더 높은 화소의 내장 카메라, 보다 밝은 디스플레이는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그 좋은 화질에서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그나마 다행인 점은 국내 기업들도 콘텐츠 확보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전자업체와 이동통신사가 나서서 콘텐츠 육성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출판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전자책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한 대기업 관계자를 만났어요. 그런데 아직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더군요. 애플은 30% 수수료를 받는데 우리는 20%만 받을 테니 콘텐츠를 팔라는 거에요. 단순히 수수료만 적게 받으면 출판사들이 참여할 거라 생각하나 봐요.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