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모토로라 인수, '오라클-썬' 닮은꼴?

일반입력 :2011/08/16 12:33    수정: 2011/08/16 16:40

구글이 모토로라의 휴대폰 사업을 손에 넣었다. SW를 가진 기업이 쓰러져가는 하드웨어 기업을 인수한 것이다. 하드웨어는 결국 SW에 종속될 뿐이란 요즘의 유행을 또 한 번 증명했다.

모토로라는 2000년초까지 스타텍, 레이저 등으로 노키아와 함께 휴대폰 시장을 호령했다. 이후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놓지 못한 모토로라의 사세는 급격히 저물었고, 애플의 아이폰에 직격탄을 맞고 M&A 대상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주어와 목적어만 바뀐, ‘시장을 흔들 M&A’

최근까지 모토로라의 휴대폰 실적은 밝지 못했다. 신흥시장의 매출증가 속에서 전체 순익은 줄어들면서 적자와 흑자 사이를 오갔다. 마지막 히트작 레이저 디자인에 사로잡혀 스마트폰의 유행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탓이 컸다.

모토로라의 M&A 추진에 대한 보도는 2년 동안 끈질기게 터져나왔다. 당초 모든 사업부를 한꺼번에 매각하려던 시도는 실패했다. 결국 회사를 휴대폰-셋톱박스의 모토로라 모빌리티, 기업용 통신솔루션의 모토로라솔루션 등 둘로 쪼개진 후에야 매각에 성공했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2년 전 기업SW의 거물 오라클이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이하 썬)를 삼킨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썬은 2000년초까지 자체 프로세서인 스팍을 앞세워 유닉스 서버 시장을 석권했다.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놓지 못하면서 IBM, HP 등의 공세에 흔들리더니 2009년까지 적자에 허덕였다. 썬은 실적 부진 속에 M&A 매물로 나왔다.

오라클은 데이터베이스(DB), ERP, CRM 등의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기 위해 HP, IBM 등과 협력했다. DB머신 엑사데이터 첫 제품은 HP 손에서 만들어졌다.

HP와 협력으로 부족했던 것일까. 오라클은 하드웨어와 SW를 통합해 제공하겠다며 썬의 하드웨어를 손에 넣었다. 오라클의 썬 인수 당시 애플은 하드웨어와 OS를 최적화한 아이폰으로 컨슈머시장을 바꾸고 있었다.

구글-모토로라, 오라클-썬. 몰락에서 인수합병까지 여러모로 닮았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부분도 유사하다. 구글이 모토로라의 1만7천개 특허권을 노렸다는 점은 썬의 자바특허로 오라클이 안드로이드 진영에 저작권 시비를 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협력에서 경쟁으로’ 시장 격변도 비슷

구글이 스마트폰을 직접 생산하면서 당연히 삼성전자, HTC 등 휴대폰 제조업체들과 유지해온 동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삼성이 처음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구글과 삼성전자의 밀월도 서서히 파국을 맞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오라클이 썬을 인수한 후 파트너였던 HP와 멀어진 상황을 보면 유추할 수 있다.

지난해 오라클은 썬의 하드웨어에 기반해 운영체제(OS), 가상화, 애플리케이션 등을 결합한 어플라이언스 제품 ‘엑사데이터X2’와 ‘엑사로직’을 선보였다. x86 하드웨어와 SW를 최적화해 메인프레임급 성능을 자랑하는 제품이었다.

오라클의 공격은 이어 SW파워를 앞세워 HP의 목을 졸랐다. 오라클은 SW 라이선스를 서버 CPU 코어수에 따라 과금하는데, HP 서버에 대한 과금비율을 자체 하드웨어보다 4배 비싸게 변경했다. 또, 지난 3월 오라클은 HP 유닉스서버에 사용되는 인텔의 아이태니엄 프로세서용 SW개발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HP과 오라클은 법정 소송을 진행중이다. 서로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며 지금까지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구글은 모토로라를 별도 사업으로 진행할 것이며, 안드로이드 역시 계속 개방형 플랫폼으로 공급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안드로이드 OS의 소스코드를 모조리 들여다보는 모토로라의 엔지니어와, 그를 자기 입맛대로 움직이게 된 구글의 결합은 결국 타 제조업체에게 비수처럼 날아들 것이다.

■왜 ‘나홀로 최적화’인가

구글은 2005년 안드로이드란 SW 개발업체를 인수한 후 2007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2008년 안드로이드가 개방형 플랫폼으로 세상에 나왔고, 구글은 유선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모바일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구글이 운영체제(OS)를 만들면, 삼성전자·HTC·모토로라 등이 하드웨어를 제공했다. 문제는 안드로이드OS와 하드웨어의 최적화였다. 구글은 OS의 표준버전만 제공할 뿐 모든 최적화를 하드웨어회사에 일임했다. 이는 스마트폰 성능의 경쟁력 부족으로 이어졌다.

안드로이드폰 제조업체의 난립에 따라 생태계 단일화도 실패했다. 레퍼런스폰인 구글폰 넥서스를 뒤늦게 개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안드로이드용 애플리케이션은 통일되지 못하고, 구글이나 제조업체 어느 곳도 애플만큼 파괴력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운영체제를 주무르다보니, 구글의 통제는 안드로이드 버전업데이트 외에 특별한 게 없었다. 정책을 변경해도 기기마다 사양이 다르니 구글의 영향력은 미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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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최근 IT업계의 유행을 그대로 보여준다. SW를 가진 회사가 시장의 갑(甲)지위를 획득한 후 영향력을 더 높이기 위해 하드웨어까지 손에 쥐고 완제품을 내놓으려는 시도인 것이다.

구글과 모토로라의 결합에 따른 파급효과는 예측가능하지만, 성공을 예측하긴 어렵다. 오라클은 썬 인수 후 여전히 하드웨어 사업에서 기대만큼 폭발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