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보다 무서운 더블딥…IT업계 삼중고

일반입력 :2011/08/04 12:00    수정: 2011/08/04 12:01

봉성창 기자

사상 초유의 미국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 상황은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 상환한도를 늘리는 법안으로 다행히 비켜갔다. 오바마 美 대통령은 디폴트 위기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는 안정을 찾아가는 분위기지만 세계 경제는 한층 냉랭해졌다.

특히 수출 비중이 절대적인 국내 IT 업계는 올해 하반기를 어떻게 넘겨야 할지 벌써부터 노심초사다. 주가, 환율 등 주요 경제 지표는 이미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하반가 원달러 환율이 1천원 미만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디폴트를 면하게 된 첫 날 뉴욕 증시는 다우존스 지수가 무려 150포인트나 폭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소폭 오름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1천50원대에서 머물고 있다.

미국 내수 시장의 의존도가 높은 국내 IT 업계는 당장 미국 정부의 채무 불이행 상황보다 환율 약세와 미국 내수경기 악화가 더 무섭다. 증권가에서도 이번 법안의 통과로 미국 경제가 당분간 후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일어나는 ‘더블딥’이야 말로 국내 IT업계에는 치명적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 상반기보다 더 힘든 하반기

국내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하반기를 장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전통적으로 가전업계 계절적 성수기인 3분기와 연말 홀리데이가 포함된 4분기 모두 마찬가지다.

올해 상반기 이들 업체가 받아든 성적표는 기대를 조금 밑돈다. 전년대비 이익률이 소폭 하락하며 힘든 불정안한 세계 경제 상황을 그대로 반영했다. 환율 하락 및 원자재값 폭등도 실적 악화의 주범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하반기가 돼서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2분기 실적발표에서 “현재로서 3분기에 대해 장담할 수 없다”며 “글로벌 경제 불안이 계속 이어질 경우 4분기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올해 초 흑자로 돌아선 LG전자도 “3분기가 2분기보다 경영 여건이 더욱 어려워 질 전망”이라며 “전체적으로 실적이 개선되는 시점은 4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양사는 그동안 주력해 온 미국 등 선진 시장이 아닌 신흥 시장으로 방향을 사업 전략을 선회할 예정이다. 신흥 시장은 잠재적 수요는 풍부하지만 이익률이 낮은 보급형 제품을 앞세워야 하기 때문에 그다지 매력적이지만은 않다.. 또한 선진 시장과의 경제적 종속성을 감안하면 불안 요인도 여전하다.

이러한 암울한 전망은 그대로 주가에 반영되는 분위기다. 벌써부터 증권가는 이들 기업의 목표 주가를 대폭 하향했다.

■ 1천원대 무너지나, 중소기업 ‘한숨 뿐’

국내 중소 IT기업은 당장 생존이 걸린 문제에 직면했다. 제조업이 받는 타격에 비하면 다소 덜하지만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IT 기업들 역시 환율 약세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을 넘어 치명적인 상황이다.

무엇보다 대기업은 현지 생산이나 결제 통화 대변화 등으로 환율 리스크를 최소화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환율 피해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 직격탄을 맞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거래선을 변화시킬 수도 없다는 것이 업계의 볼맨 소리다.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계속 수출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지식경제부는 지난달 수출액은 총 514억5천만 달러로 작년 같은 달보다 27.3% 늘어났다고 3일 밝혔다. 그러나 원화 표시 수출액은 54조5억 원으로 11.7% 증가하는 데 머물렀다.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이 느끼는 체감 수출율은 크지 않다. 반면 환율 하락은 당장 뼈아프게 다가온다.

■ 기업 간 양극화 현상 ‘뚜렷’

경제학자들은 고도화된 자본주의에서 불황은 승자 독식 구조를 가속화시킨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 IT업계 상황이 그렇다.

전 세계 IT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스마트폰 특수로 인해 애플은 미국 정부보다 많은 현금 보유고를 가지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2의 판매 호조로 무선사업부는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기존 휴대폰 사업에서 한 축을 담당했던 LG전자나 노키아는 상황이 정반대다. LG전자는 여전히 스마트폰 사업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휴대폰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노키아는 3위로 추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는 과거 해당 업종에서 4~5위권 업체까지 공존할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큰 변화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보수적인 소비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품질은 물론 가격 경쟁력을 모두 갖춰야 살아남는 세상이 됐다.

비단 스마트폰 이외에도 인텔, 오라클, 구글 등 IT 공룡기업들은 지난 2분기 역대 최고의 실적을 기록했다. 미국 경기가 바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그러나 이들과 경쟁하는 중하위권 업체들은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로 어려움에 처했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은 국내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양극화 현상을 넘어 심지어 대기업 간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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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정부에서는 중소기업보호업종 지정이나 각종 동반성장 정책으로 대기업 중심의 성장 정책을 지양하고 중소기업 육성 의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소 IT기업 대표는 지속적인 미국 경기 불황으로 인한 더블딥 공포감은 우려가 아니라 현실이라며 실제 기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올해 하반기를 어떻게 견디느냐에 온 정신이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