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코, 죽지는 않지만 군림도 어렵다

일반입력 :2011/07/14 15:29    수정: 2011/07/15 09:57

인터넷 혁명을 타고 네트워크 황제로 군림했던 시스코시스템즈가 대규모 감원에 돌입했다. 전체 직원 14%인 1만명을 정리해고할 것이란 소식도 들린다.

존 챔버스 시스코 회장은 10일부터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시스코 라이브 컨퍼런스에서 강력한 구조조정 의지를 표시했다. B2C사업을 정리하고 B2B사업에 보다 집중하는 형태로 사업조직을 개편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그와 함께 블룸버그통신은 12일 시스코가 다음달말까지 최대 7천명을 감원하고, 3천명은 조기퇴직시키는 것을 검토중이라고 보도했다.

시스코의 대규모 구조조정 소식에 반응이 엇갈렸다. 감원과 사업부 조정을 통한 비용절감효과에 대한 시각차에 따른 것이다. 죽음인가, 회생인가. 인터넷 시대의 기린아 시스코와 유선 네트워크산업 모두 중대기로에 섰다.

■엇갈린 반응, 성공은 확신할 수 없다

구조조정을 환영하는 측은 과거 IBM, EMC의 사례를 들며 낙관론을 폈다. 그동안 시스코가 성장률보다 높은 고용률을 유지했기 때문에 적절한 기업 규모를 찾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란 것이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시장경쟁이 심해질 때 강도높은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통신케이블 전문업체인 코닝사가 시장 경쟁이 심해질 때마다 사업모델을 혁신했던 사례도 언급됐다. 심지어 스토리지업체 EMC와 합병하라는 급진적인 지적까지 나온다.

시스코 직원들은 의외로 강도높은 인력 해고에 불만을 표시했다. 시스코의 한 직원은 인터넷 게시판에 “그룹 프로젝트 실패하면 리더는 다른 그룹으로 넘어가고 해당 엔지니어만 해고당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리해고에 앞서 수익 사업 단위를 빨리 정리하는 것이 먼저였다”며 “일방적인 구조조정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시스코가 휘청거리는 모습은 IT분야에서 한시대를 지배했던 기업의 추락처럼 보인다. 휴대폰의 절대강자 노키아가 스마트폰 트렌드에 급격하게 몰락하는 장면과 유사하다.

■죽지는 않지만 군림은 어렵다

시스코는 라우터, 스위치 사업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인터넷과 커뮤니케이션이란 개념이 IT에 도입되던 199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해 현금을 쓸어모았다. 남아도는 현금은 시스코의 M&A에 활용됐고, 사업분야는 기업 네트워크에서 소비자가전까지 빠르게 확대됐다.

혹자는 시스코의 현재가 유선네트워크의 종말을 보여주는 것이라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바일 시대라 해도 유선네트워크가 죽는 건 어불성설이다. 무선 네트워크도 백본인 유선네트워크를 필요로 한다. 클라우드 컴퓨팅에 따라 데이터센터 산업은 호황을 겪고 있으며, 무선망의 성장만큼 유선망도 동반확대된다.

문제는 가격경쟁이다. 시스코의 현재는 이더넷 스위치와 라우터의 가격경쟁이 심화되며 나온 것이다.

어느 시장이든 수익성이 높을수록 경쟁은 치열해진다. 주니퍼네트웍스, 브로케이드 등의 경쟁사에, 파트너였던 HP도 쓰리콤을 인수하며 네트워크업계에 뛰어들었다. 중국 화웨이가 뛰어들며 가격경쟁을 부추겼고, 갈수록 낮아지는 제품가격은 시스코 성공의 원동력이었던 마진을 줄였다.

존 맥쿨 코어기술그룹 수석부사장은 “시스코 마진이 줄어드는 것은 신제품을 꾸준히 출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네트워크 제품은 새로운 모델 출시 이후 구형모델이 사라지지 않는다.

신제품은 비싸면서 마진도 적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발비용을 상쇄하고 마진을 늘린다. 초기 대규모 투자에서 시작해 수익을 늘려가는 것이다. 신제품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한 마진은 일정하거나, 줄어들 수밖에 없다.

존 맥쿨 수석부사장은 “현재 초기 개발비를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신기술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면서, 기술경쟁력을 유지하는 방안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투자자들은 시스코의 본래 모습을 찾으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네트워크 분야에 안주해버린다면 가격경쟁의 함정에 더 깊이 빠져들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시장의 포커스가 가격에 쏠린다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시스코가 아무리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과거처럼 황제로 군림하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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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명확한 전략을 갖고 큰 틀에서 접근할 것을 조언하는 이도 있다.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등의 하드웨어에 SW까지 통합되는 상황에서 한 분야에 주력하기에 시스코의 덩치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서버사업을 빠르게 본궤도에 올리고, 통합커뮤니케이션(UC) 솔루션을 지렛대 삼으려던 전략을 더 강화해야 한다”며 “다만, 지금의 형태는 다분히 시장상황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