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네이버에 사망 선고를 내렸나

김인성 한국IT산업의 멸망 저자

일반입력 :2011/06/02 12:16    수정: 2011/06/07 18:34

정윤희 기자

“한국 포털은 다 죽었습니다.”

그의 책 제목만큼이나 극단적인 발언이다. 일견 ‘한국 IT산업의 멸망’을 얘기하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하다(?)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IT강국이 아닙니다. 지금 멸망으로 가는 수순에 있어요. 어느 한 분야가 문제라면 그 분야를 개선하면 되겠지만, 우리 IT산업은 그게 아닙니다. 총체적인 난국이랄까요.”

‘한국 IT산업의 멸망’(북하우스)를 통해 신랄하게 IT강국의 허상을 비판한 김인성 시스템 엔지니어 겸 IT칼럼니스트를 서울 내방역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특히 그가 지적한 부분은 포털사이트다. 그동안 막연하게 폐쇄적이다, 콘텐츠의 블랙홀이다 지적을 받아온 포털에 날리는 회심의 어퍼컷인 셈이다.

그는 이미 ‘검색 엔진’임을 포기한 포털은 게이트웨이가 아닌 기득권을 가진 콘텐츠집합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초기 포털 엠파스 출신이라는 이력이 현재의 포털에 가지는 아쉬움을 크게 만드는 모양새다.

■“포털, 안타깝지만 사망하셨습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포털사이트의 기본은 총 일곱 가지로 요약된다. 원본을 먼저 제시할 것, 중요한 자료를 먼저 제시할 것, 검색 질의어에 가장 적합한 결과를 제시할 것, 원하는 데이터에 도달하는 최단 경로를 제시할 것, 검색 결과를 임의로 조작하지 말 것 등이다.

“이것이 한국 포털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검색어 장사를 하기 때문이죠. 내부의 검색어 DB에 있는 결과를 먼저 보여줘야 또 다른 내부 클릭이 이뤄집니다. 이용자가 포털의 외부로 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하죠. 외부 사이트의 원본글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팝코즈나 DVD 커뮤니티 등 전문 커뮤니티들 중 상당수는 아예 포털과의 단절을 선언했다. 구글, 빙, 야후 등 해외 포털에서만 그나마 검색되는 상황이다. 저자 역시 자신의 블로그에 서치 네이버닷컴(search.naver.com)으로 들어오는 경로는 막아버렸다.

“전문 커뮤니티 입장에서는 포털에 열어주면 손해라고 생각해요. 포털에서는 커뮤니티나 블로그를 복제한 글이 가장 먼저 검색되죠. 복제의 위험성은 높아지는 반면 원본글이 검색될 확률은 점점 떨어져요. 천신만고 끝에 원본 글이 있는 곳에 들어오더라도 도움이 되는 트래픽은 아닌 거죠.”

미래에 대한 대비가 없다는 점도 한국 포털의 약점으로 꼽았다. 구글이 수년 전부터 클라우드니 모바일이니 할 때 국내 포털의 대비는 전무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새로운 서비스가 나왔을 때 미투전략을 쓰기 바빴을 뿐 미래에 대한 준비는 없다고 얘기한다.

“한국 포털은 미래에 대한 대비가 아무것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한다고 해도 당장 1년 후 정도까지만 보는 거죠. 현재 국내 포털의 상황은 전국의 수험생들이 경쟁하는 와중에 ‘나는 우리 반에서 1등이야’, ‘이과에서는 1등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농담처럼 너무 구글에 우호적인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저자는 “구글도 천사는 아니다”고 단칼에 잘랐다.

“제가 네이버를 비판한다고 해서 소위 말하는 ‘구글빠’인 것은 아닙니다. 구글도 물론 잘못을 하죠. 다만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개선의 여지가 있으니까 덜 비판하는 것뿐입니다. 사실 애플도 플랫폼적 측면에서는 매우 폐쇄적이지만 콘텐츠 생태계에 매우 큰 혁신을 준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또 한 가지 아쉬워하는 것은 우리나라 이용자들의 이중 잣대다. 애플이나 구글을 비판할 때와 네이버, 삼성을 비판할 때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 수년간 지속돼온 애국심 마케팅에 저항할 때가 됐다는 주장이다.

“애플이나 구글을 비판할 때는 우리 모두가 미국 시민이 됩니다. 모든 IT업체는 공정해야 하고 혁신적이어야 하며 권력에 저항하는 훌륭한 업체들이어야 하죠. 그러나 눈을 돌려 우리나라를 보는 순간 시궁창입니다. 국내 기업들은 애국심 마케팅 하나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 상태가 지속되면 혁신은 없고 도태와 몰락만 있을 뿐입니다.”

저자가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아이폰을 사는 것이 애국이다’는 말 역시 이러한 안타까움에서 나온 외침인 셈이다.

■기득권을 버려야 한국IT가 산다

포털뿐만이 아니다. 통신, 보안, 방송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카카오톡이 이동통신사들의 공적이 된 것도, 인터넷 실명제가 존재하는 것, 해외에서 국내 쇼핑몰에서 물건을 살 수 없는 것 역시 기득권의 논리대로라는 얘기다.

“4G, 5G로 가면서 통신사라는 경계가 없어질 겁니다. 나중에는 카카오톡이 통신사가 되는 시대가 오는 거죠. 그러나 지금 통신사들은 이러한 혁신에 눈을 돌리기보다는 기득권을 지키는데 힘을 쓰고 있습니다. 논리는 ‘통신인프라는 국가의 인프라다. 그러니까 도와라’인거죠. 마치 자기들이 국영기업인 것처럼. 사람들은 깜박 속고 있는 겁니다.”

보안 산업도 좁은 국토에 갇혔다. 그는 우리나라 보안은 사용자의 컴퓨터를 못 믿어서 감시한다고 표현했다. 끊임없이 사용자의 컴퓨터에 액티브엑스,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는데 정작 해킹이나 바이러스는 그 보안프로그램의 설치 과정에서 들어온다는 설명이다. 해외에서 국내 사이트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그가 얘기하는 한국 IT산업의 멸망은 진화하지 못한 기득권의 몰락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와도 사장되는 현 상황에서는 마땅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

“갑갑합니다. 그러나 좌절하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한걸음씩이라도 개방을 향해 나가야죠. 기업들이 매년 초 신년사에서 얘기하는 공염불 같은 혁신이 아닙니다. 멸망으로 가는 우리 IT산업에 인공호흡이라도 하려면 오픈과 혁신이 필수입니다.”

저자가 인터뷰를 하는 내내 가장 많이 한 말은 “엔지니아가 이런 말을 할 지경까지 왔다”다. IT산업 내에서 목소리를 내야할 사람들은 입을 다물거나, 혹은 낸 목소리가 무시당한다는 안타까움이다.

다소 공격적인 제목의 책을 쓴 것도 그래서다. 내부에서 IT산업의 멸망을 막을 수 없다면 일반인의 공감과 도움을 얻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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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인지 그를 만나기 전에 읽은 책은 의외로 쉽게 읽혔다. 내용의 강약과는 별개로 문장도 나긋나긋(?)했다. 저자로서 IT라고 하면 막연하게 복잡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고, 나아가 함께 토론을 하고 싶은 욕심이었단다.

“IT라는 것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밀접합니까. 관련 업계 종사자들을 제외한 일반인들도 충분히 IT산업의 현실에 대해서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을 쓰게 됐죠. 나름 재미있고 쉽게 쓰려고 존댓말로 쓰고 했는데…독자들이 문제점에 공감하고 작은 실천이라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