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KT-손정의 소뱅 도원결의 알고보니...

일반입력 :2011/05/30 13:15    수정: 2011/05/31 17:00

김태정 기자

<도쿄=김태정 기자>“차기 히든카드?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가”

지난 2009년 말 KT 전략회의. 이석채 회장의 이 같은 발언에 분위기는 조용했다. 갑자기 클라우드 컴퓨팅? 이름처럼 뜬 구름 잡는 얘기로 들렸다. 새로운 통신료 체계나 단말기 전략이 나올 줄 알았다.

이 회장은 개의치 않았다. 말을 실천으로 급속히 이어갔다. 지난해 5월 클라우드 추진본부를 신설, 올해까지 1천2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본부장에는 신사업 개발과 기업 인수합병 전문인 서정식 상무를 임명했다.

이쯤에서 더 강도 높은 전략이 나왔다. “해외서 안 팔리면 그만 둘 각오로 진행하라”

임원들의 우려는 더 커졌다. 아마존과 구글 등 실리콘밸리 공룡들이 세계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 정복에 나섰기에 KT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지적들이 나왔다. 일부 임원들은 당시 분위기를 “반강압적이었다”라고 회상한다.

KT 뿐 아니라 다른 이통사들도 해외 사업 성공사례가 부족한 가운데 생소한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국내도 아닌 해외를 공략하겠다니 반대 여론이 없다면 이상했다. KT 내에 클라우드 컴퓨팅 관련 전문가가 부족했던 것도 우려를 키웠다.

■철저히 계산된 불도저 전략

이 회장은 직원들을 누차 독려했다. 일일이 대면도 하고 회의 때마다 클라우드 컴퓨팅 얘기를 꺼냈다. 데이터센터 관리 노하우를 썩히는 대신 최대한 활용할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기술력은 충분하고 인프라와 인재는 키우면 된다. 일단 우리의 데이터센터를 키워보자. 관리 능력은 자신 넘치지 않은가?” 추진력은 이미 불이 붙은 상태. 유휴 시설이었던 저궤도 위성센터를 리모델링, 지난해 8월 천안에 3,000kw 규모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를 세웠다. 클라우드 추진본부 설립 후 3개월만의 일이다.

이 센터는 서버 집적도가 기존 대비 50배 이상 개선됐고, 전력 효율은 2배 높다.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에는 1천500억원 가량이 필요한데 리모델링 방식으로 80억원만 투자한 것도 성과다.

기술 향상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컨설팅 업체 클라우드하모니의 분석 결과 지난해 8월 기준 세계 순위가 고성능 데이터베이스 서버 CPU 2위, 프로그램 언어 1위 등의 기록을 냈다.

■손정의 러브콜 “일단 만납시다”

다음 차례는 숨 가쁜 해외 비즈니스. 만나는 해외 경영자들마다 KT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에서도 이 회장은 클라우드 비즈니스로 분주했다. 막강 데이터센터에 4세대 이동통신까지 더한 차별화된 서비스를 약속했다. 해외서 안 팔리면 접겠다던 본인의 말이 부담으로 다가와 더 열심히 뛰었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이른바 ‘대박’이 나왔다. 지난 달 12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 직접 전화가 왔다. “실례지만 와주십쇼. 만나서 얘기합시다” 일본 IT 최대 거물에게 이 회장의 전략이 통한 장면이다.

이 회장은 이틀 뒤 현해탄을 건너 손 회장을 만났고, 수백억원이 오가는 원가 책정과 투자 비율 등의 논의를 큰 줄다리기 없이 단 일주일 만에 끝냈다. 그만큼 두 사람 간 사업 전략이 맞아 떨어졌다는 뜻이다. 일본 내 최대 데이터센터 사업자인 소프트뱅크에게 KT가 필요할까? “저렴하고 우수한 서비스라면 얼마든지 쓴다”는 손정의 회장의 신조가 이에 대한 답이라는 것이 소프트뱅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두 회사는 오는 9월 클라우드 컴퓨팅 합작사(가칭 KTSB데이터서비시즈)를 한국에 설립한다. 지분은 KT가 51%, 소프트뱅크는 49%다. 10월에는 부산 인근(김해공항에서 20Km 이내)에 3만평 6,000Kw(서버 1만대 수준) 규모로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내년 상반기 20,000Kw까지 증설할 계획이다. 투자액은 약 750억원이다.

이 데이터센터는 한일 양국 기업들에게 클라우드 컴퓨팅을 제공하며, 아마존과 구글을 비롯한 해외 공룡들에게 맞설 방어기지 역할도 맡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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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가 내수산업이라는 통념을 깨고 싶었지만 불확실한 사업으로 해외에 나설 수 없었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이 같은 고민에 답이 됐다. 한국은 이제 글로벌 데이터센터 허브다”

일본 기업들의 관심은 이미 뜨겁다. 30일 KT-소프트뱅크가 도쿄서 연 사업설명회에 2천500여명의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이 회장의 시나리오가 순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