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IT중소기업들,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상]스마트 시대, 국내 중소기업들 운명은?

일반입력 :2011/04/21 09:49    수정: 2011/04/21 17:52

남혜현 기자

중소기업이 애플과 삼성전자에 싸워서 이길 수는 없다. 아무리 좋은 기능을 갖고 나와도 사과 마크 하나면 끝이다.

한 중소기업 간부의 말이다. 이 업체는 지난 몇년간 꾸준히 개발하던 PMP와 내비게이션 생산을 중단했다. 한 때 학습용 PMP 부문에서 상위를 다투는 선두업체였지만, 지속되는 실적 악화에 주종목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PMP 시장은 80만대 규모로 추산된다. 판매 대수로만 따지면 사상 최대다. 인터넷 강의가 성장하면서 PMP시장도 덩달아 커졌다. 그러나 상황은 곧 급반전됐다. 아이폰을 필두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보급이 본격화 되면서 올해 PMP 시장 규모는 60만대 정도로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국내 PMP 1위 업체 코원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PMP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며 올해는 트렌드가 급변하면서, 시장이 태블릿으로 넘어가고 있는게 맞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PMP나 다른 디지털기기들이 갑자기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소비자들이 스마트 기기를 더 혁신적이고 매력있어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이 어렵다는 것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유행가가 아니다. 지난해 아이폰이 국내 본격 상륙한 이후 시장은 급격히 변했다. 이미 모바일인터넷디바이스(MID)나 내비게이션, MP3플레이어를 전문으로 하던 업체 다수가 소리소문없이 문을 닫았다. 생산 초입에 들어섰던 제품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 것만도 수십여가지다. 지금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업체들은 그나마 살아남았기 때문에 신음이라도 낼 수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은 사과를 깨물었다

곽동수 한국사이버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이같은 상황을 두고 시장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들의 자연도태라고 일갈했다. 그는 제조업체들이 '스마트'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도 원가나 성능만 강조하는 기업이 대다수라며 대기업 조차 아직까지 특별한 제품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차별화가 없는 중소기업들은 도태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애플이 들어오고 나서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변했는데 계속해서 같은 패러다임을 소비자에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 곽 교수의 이야기다. 10년 전, 아이리버가 디자인 혁신으로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을 제패했듯이, 지금 바로 국내 중소기업들에 그런 혁신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국내 중소기업들도 이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아이스테이션 관계자는 그동안 외국산 제품들이 국내에 들어오는데는 시간적 한계도 있었고 판매도 부진했다며 그러나 이제는 애플이 제품 하나만 만들어도 시장을 싹 쓸어버리기 때문에 중소기업으로서는 다른 방향으로 사업을 돌려 수익을 내려는 분위기가 크다고 말했다.

PMP 뿐만 아니다. MP3플레이어도 마찬가지다. 이철민 아이리버 본부장은 글로벌한 제품이 전 세계 시장을 쓸어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중소기업은 특화된 서비스를 탑재한 제품으로 틈새시장을 노리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후발주자인 현대카드가 성장하기 위해 카림 라쉬드라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영입했다며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지 않고 단순히 '죽겠다'라는 말만 반복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고 덧붙였다.

■스마트폰 1천만대 시대…중소기업 경쟁력은?

강충구 고려대 교수는 지난 11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개최한 '이동통신 주파수 정책 토론회'에서 내년말까지 스마트폰 가입자가 3천162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스마트폰 가입자수는 지난달 이미 1천만명을 넘어서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기존 단말기 판매업체에 충격파가 될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PMP나 MP3플레이어, 내비게이션 등 주요 하드웨어 단말기 업계를 살펴보면 최근들어 1~2위 업체들만 살아남는 독주체제로 변화하는 방향이 뚜렷이 감지된다.

코원 관계자는 올해 PMP 시장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코원의 성적표는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며 시장 규모가 작아지면서 경쟁업체가 줄어들어 작은 시장을 소수 업체가 독식하는 형태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내비게이션 시장도 지난해 팅크웨어와 파인디지털 양강체제로 굳어진 모습을 보였다. 팅크웨어 관계자는 시장 규모는 지난해와 비슷하게 유지되겠지만, 사후매립 단말기나 블랙박스 등 기존에 없던 부문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개별 단말기에 의존하는 사업 모형에서 태블릿 등 스마트 기기와 직접적 충돌을 피하는 다른 사업 부문의 비중이 커질 것이란 이야기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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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 심화되면서, 아날로그 제품이 사라지는 것보다는 오히려 특화된 기기 안에서 개별 기업들의 경쟁력이 더 중요해 질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고윤전 KT경제경영연구소 박사는 아직까지 특화된 기기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에 PMP나 MP3플레이어 등 시장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지금 문제는 한 제품군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해당 시장에서 개별 기업들이 얼마나 경쟁력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