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가 클라우드를 필승카드로 꺼낸 이유

일반입력 :2011/03/30 08:26    수정: 2011/03/30 10:22

최근 HP는 위기의 연속이었다. 마크 허드 전 CEO가 7년에 걸쳐 진행한 비용절감 중심의 경영전략은 혁신의 마지막 영혼까지 집어 삼킬 기세였다. 새로운 IT시대가 온다는 지금, HP의 미래마저 불투명해보일 정도다.

이런 가운데 작년 11월 부임한 레오 아포테커 HP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HP 서밋(Summit) 2011 컨퍼런스’에서 차세대 무기로 클라우드 컴퓨팅을 뽑아들었다. 누구나 다한다는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시장 판도를 뒤엎을 전략과 비전을 기대했던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포테커 CEO의 전략은 서버, 스토리지를 제공하는 퍼블릭 클라우드 사업, 개방형 애플리케이션 마켓, 웹OS 기기의 확대 등이 골자였다.

그러나 HP의 클라우드 전략은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에 초점을 맞춘다. 대기업의 데이터센터가 퍼블릭 클라우드로 완전히 옮겨가지 않을 거란 판단 때문이다. HP는 프라이빗과 퍼블릭을 혼용하는 형태가 엔터프라이즈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강조한다.

최근 내한한 울프강 위트머 HP APJ 엔터프라이즈서버스토리지네트워크(ESSN) 사업부 총괄부사장은 기자에게 “HP야말로 클라우드 환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지원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라며 “클라우드는 HP를 새로운 IT환경에서도 리더로 자리매김하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컴팩시절을 포함 35년동안 HP에서 엔터프라이즈 하드웨어만 담당했던 위트머 부사장은 철학을 논하고, 비전을 제시한 뒤, 실제 데이터센터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말을 이었다.

“HP가 컨버지드 인프라를 준비하기 시작한 게 2009년입니다. 최초 제품인 프로라이언트 G6. 인티그리티 유닉스 서버, 블레이스시스템매트릭스가 당시 나왔습니다.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시스템 매니지먼트까지 클라우드 플랫폼을 이 때 이미 얘기했었던 겁니다.”

위트머 부사장은 HP가 2년에 걸쳐 준비한 컨버지드 인프라스트럭처(CI)를 강조했다. 인프라 전반을 통합적으로 제공해 비용효율적인 클라우드 환경을 구축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2009년 데이비드 도나텔리가 EMC에서 HP로 오면서 제품군별 경쟁을 지양하는 컨버지드인프라 비전을 그렸습니다. 일단 기존 제품을 갖고 시작했고, 지난해 쓰리콤과 3PAR를 인수하며 CI를 완성했죠. 이것이 미래의 클라우드 컴퓨팅에서 HP가 가진 최대 강점이 될 겁니다.”

지난해 HP는 두가지 성격의 신제품을 출시했다. 유닉스서버 슈퍼돔2, x86블레이드서버 프로라이언트G7, 스토리지제품 스토어원스 등은 자체적인 역량으로 개발한 제품이다. 이외에 아이브릭스, 쓰리콤 스위치, 레프트핸드 P4000 등은 인수합병에 바탕을 둔 신제품이었다.

HP는 재빠르게 각 제품을 데이터센터 토털솔루션으로 구성했다. 인수합병 제품이 기존 제품에 빠르게 녹아든 것이다. 이는 R&D와 M&A를 적절히 혼합해 시장변화에 빠르게 대처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처럼 빠른 시간 내에 각 제품군을 통합할 수 있었던 조건은 모듈러 아키텍처와, 블레이드시스템매트릭스다.

“2007년 마크 허드는 HP의 막강한 공급망과 구매력을 바탕으로 모듈러 아키텍처를 구상했어요. 인텔, 삼성전자 등의 시장 표준 제품을 조립해 만들기 때문에 기존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는 거였죠. 차별화는 단일 매니지먼트 시스템입니다. 완벽하게 자동화를 구현한 단일 SW에서 데이터센터 인프라 전체를 손쉽게 운영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센터에 이를 적용한 모습은 단순하다. 하드웨어만 가져다 끼우면 모든 설정과 자원 할당을 자동화 콘솔SW인 블레이드시스템매트릭스가 알아서하기 때문이란다. 네트워크를 위한 케이블 연결도 필요없다. 보안은 티핑포인트의 데이터프로텍트가 담당한다.

“모듈러 인프라스트럭처로 가야 비용절감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기계마다 50개 넘게 달린 센서를 이용해 전력소모를 관리하면, 냉방효율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서버만 해도 유닉스, 리눅스, 윈도로 다양한데 이를 하나의 팜에서 관리하게 됩니다.”

위트머 부사장은 CI를 설명한 후 클라우드 전략을 소개했다. HP의 클라우드 서비스가 CI를 바탕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서비스 카탈로그, 클라우드 맵스 등이 눈에 띄었다.

“서비스 카탈로그란 ERP나 기업메일 등을 서비스로 제공한다는 겁니다. 직원이 늘어나면 인프라를 자동적으로 확장해주고, 사용자마다 용량과 정책을 배분하는 것도 자동으로 이뤄지죠. 클라우드 맵스는 이곳저곳의 애플리케이션을 자기 환경에 맞게 맵으로 구성한다는 겁니다. 업계 표준을 이룬 업체들이 각 표준 스크립트를 만들어줬습니다. 고객의 자체 어플도 여기에 맞추면 고객환경에 맞는 클라우드 맵을 구성할 수 있지요.”

HP의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는 유닉스-리눅스 같은 멀티OS와 VM웨어-하이퍼V 등 멀티 하이퍼바이저 환경에서 싱글 서비스로 만들어준다. 가상화 후 어디에 어떤 가상머신이 있는지 정확한 위치를 인식시켜 준다는 것이다.

“HP는 IT환경을 웹OS기반 디바이스로 바꾼다는 구상을 갖고 있습니다. 이게 클라우드란 인프라로 연결될 것으로 보는 겁니다. 그리고 애플리케이션을 개방형으로 가겠다는 거고요.”

궁금해진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확산될수록 HP같은 제조회사는 매출이 줄어들 지 않을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위트머 부사장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블레이드시스템 매트릭스가 2009년 나왔을 때 한분기에 10대를 팔았습니다. 작년은 분기당 100대였고, 올해는 1천대 나갈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게 클라우드 잖아요? 여전히 고객이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를 각각 사던 비율은 90%정도지만 갈수록 컨버지드 인프라를 택하는 비율이 늘어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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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등 각 장비마다 매출이 달랐던 것이 컨버지드 인프라 매출로 잡히면 더욱 커진다는 전망이다. 위트머 부사장의 설명은 이어진다.

“또 HP는 컨슈머 시장도 주요 사업분야죠. 데스크톱 가상화(VDI)의 경우 고객이 씬클라이언트를 ESSN에 물어봅니다. 각 사업부에서 추가적인 매출이 늘어나는 거죠. 서비스도 영향을 줍니다. 몇년에 걸쳐 서비스 하나 만들면 한두 고객에게만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서비스로 만들어놓으면,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고객에게서 서비스 매출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클라우드가 HP를 키운다고 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