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셧다운제…청소년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일반입력 :2010/12/14 14:31    수정: 2011/01/22 21:12

전하나 기자

2004년, 성판매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던 일이 있다. 당시 여성부가 ‘성매매방지법’으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자 ‘생존권’ 투쟁으로 맞선 이들은 “정당하게 세금을 낼 테니 직업인으로 인정해달라”고 주장했다. 성판매 여성들의 시위는 ‘여성은 모두 같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행정부가 노골적으로 조롱당한 사건으로 남았다. 여성부가 모든 여성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2010년, 다른 듯 닮은꼴 이야기가 있다. 여성가족부가 추진하고 있는 ‘청소년보호법’에 청소년들이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청소년보호법에 담긴 셧다운제가 청소년들의 문화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다. 이 같은 내용의 ‘발칙한’ 성명서를 발표한 이들은 다산인권연대, 아수나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등으로 구성된 5개 청소년 인권 단체 소속이다.

13일 저녁 6시, 문래동 철강소 골목의 한 낡은 건물에 세든 그들의 공간에서 작은 좌담회를 열었다. 청소년보호법에 대한 청소년들의 솔직한 얘기를 듣기 위해서다. 이날 자리에는 공현㉓씨, 난다⑳씨, 둠코⑱씨, 매미⑰씨, 클린앤⑯씨 등 다섯 명이 참석했다. 필명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1시간여 동안 자신들의 생각을 거침없이 풀어내며 셧다운제는 반문화적, 반교육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셧다운제는 어른들에게 편리한 훈육방법”

둠코 : 솔직히 인터넷게임중독이라고 했을 때 어른들이 표면상으로 드는 이유는 학생들의 건강권과 수면권이잖아요. 그런데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게임하지 말라고 하지, 공부하지 말라고는 안하잖아요? 어른들에게 게임은 입시에 방해되는 주된 요인일 뿐예요. 셧다운제는 걸림돌을 효율적으로 제거하는 어른들의 훈육 방편인 셈이죠.

난다 :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일단 멈춰’, ‘너네 안돼’라고 말하는 식이 대부분이죠. 셧다운제는 시끌시끌한 교실에 매를 들어 손쉽게 통제하는 방식의 체벌과 같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주목하는 것은 훈육의 대상은 항상 청소년들이라는 거예요. 또 청소년이기 때문에 금기사항이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거고요.

클린앤 : 이런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어른들은 정말 모르는 건가요? 왜 문제의 뿌리를 뽑을 생각은 하지 않고 위에만 자르죠?

둠코 : 뿌리를 뽑으면 피해보는 건 결국 어른들이라서?

난다 : 가지치기부터 하면 우선은 예뻐 보일 테니까.

매미 : 셧다운제의 가장 큰 문제는 정작 청소년의 얘기는 하나도 듣지 않았다는 거예요. 청소년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은 청소년보호법, 문제가 있어도 많이 있지 않나요.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위치를 여실히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죠.

공현 : 게임 과몰입이 사회적 문제가 된다는 건 우리들도 알아요. 해결 방법, 청소년에 대한 해결책과 비청소년에 대한 해결책이 다르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거죠.

■셧다운제, 게임 과몰입 원인 제대로 짚었나…‘NO!’

둠코 :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단시간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용도로 게임을 해요. ‘** 한판’하고 학원가고 또 한판하고 숙제하기 바쁘니까요. 생각을 많이 필요로 한다거나 게임을 하는 데 장시간이 걸리는 게임은 애초에 뜰 수가 없어요. 빨리 몬스터를 죽여서 경험치가 올라가고, 멋진 아이템을 받을 수 있는 게임이 인기죠. 달리 말하면, 청소년들에게 주어지는 여가 시간과 놀이문화가 부족한 환경이 게임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라는 얘기예요.

공현 : 솔직히 게임을 하고 싶다고 작정했으면 자정까지 온라인게임을 하다가 자정 이후에는 오프라인 게임에 빠질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부모 주민번호 도용 같은 변칙을 이용해 온라인게임을 계속 즐길 수도 있죠.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온라인 게임 접속을 강제로 차단한다는 것이 게임과몰입을 근본적으로 해결할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청소년 범법자만 길러내는 건 아닐까요. 셧다운제는 행정부의 보여주기 식 제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클린앤 : 게임이용시간은 지극히 단선적인 기준이라고 봐요. 법을 만든 사람들이 청소년들이 게임에서 어떤 가치관을 학습했느냐에 대해서는 관심 있을까요? 가령 ‘심시티’라는 PC 패키지 게임에서 이용자는 직접 도시를 경영할 수 있는데요. 세금을 많이 내는 부자들을 도시로 이주시키기 위해 빈민가를 철거한다거나, 시민들의 반대를 묵살하고 핵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거든요.

매미 : 맞아요. 온라인 게임 대부분은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전술싸움이 전부죠. 침략 아니면 학살이 게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에요. 게임 속에 등장하는 병사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죠. 사실 NPC 죽었다고 슬퍼하지는 않으니까… 게임에 몰두하다면 이런 것에 무감각해져서 문제인 거잖아요. 셧다운제는 이런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법이 아니라는 거죠.

  

■16세는 졸속행정의 결과…“우리나라는 규제 천국”

공현 : 그런데 12·14·15·18·19·24세는 들어봤어도 16세는 그야말로 ‘듣보잡(듣도보도못한이)’ 기준인데요.

둠코 : 여성가족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양 부처가 양보할 줄 모르더니 결국 반으로 가른 거잖아요. 셈법이 참 쉽네요.

클린앤 : 일부 15세 등급 게임은 어른들이 실제 돈 가지고 아이템 거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잖아요. 16세가 허점투성이 기준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 아닌가요.

공현 : 연령등급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면, 이미 게임 관련 기본법에서 포함하고 있는 게임 내용에 대한 심의규율도 있는데 이중·삼중 규제만 쌓이는 것도 문제죠.

난다 : 우리나라는 규제 천국인 것 같아요. 가장 편리한 행정주의가 규제잖아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혜안은 안보이고, 손쉽게 통치하려는 어른들만 있으니 답답해요.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 (부모의 가치) 보호를 위한 법”

둠코 : 셧다운제는 청소년들의 문화적 자기결정권을 배제한 법이예요. 음식을 먹더라도 내가 어떤 음식을 먹느냐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잖아요. 청소년들이 충분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를 사회적으로 불가능케 하는 어른들의 명분에는 늘 ‘미성숙’이라는 말이 따라붙죠.

매미 : 미성숙이라는 말의 기준도 궁금해요. 담배·술이 19세는 안되지만 20세는 되잖아요. 19세에서 20세로 넘어가면서 유해물에 대한 신체적인 면역력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말예요.

공현 : 어떤 게임을 할 거냐, 게임을 어떤 시간에 할 거냐는 원칙적으로 자기결정권의 문제죠. 이건 성인도 마찬가지잖아요. 사회적으로 역기능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예외적인 부분에 대해 특정한 제한이 있을 수 있겠지만, 청소년만을 상대로 일률적이고 전면적인 강제조항을 택한다는 것이 화나요.

난다 : 16세 미만 뿐 아니라 16세 이상 청소년들한테까지 선택적 셧다운제라는 걸 적용하겠다고 하던데, 이때 선택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나요? 결국 청소년이 아닌 부모에게로 돌아가지 않겠어요?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에 대한 부모의 가치 보호를 위한 법안에 다름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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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앤 : 도대체 왜 청소년만 안 된다고 하는 거죠? 밤늦게까지 PC방에 있는 ‘폐인’들은 대부분 30~40대 아저씨들인데…

둠코 : 보호를 주장하는 쪽도 결국 게임이 산업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거예요. 실질적인 구매력을 가진 성인을 어떻게 건드리겠어요? 청소년들은 찍 소리도 못 내는 약자니까요. 결국 금지하고, 뒤에서는 밀어주고 하는 일이 반복되겠죠. 그게 어른들의 세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