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조심하라' 오라클發 클라우드 이념논쟁

일반입력 :2010/09/23 10:29    수정: 2010/09/27 11:15

황치규 기자

[샌프란시스코(미국)=황치규 기자]래리 엘리슨 오라클 최고경영자(CEO)와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닷컴 CEO가 때아닌 클라우드 컴퓨팅 이념 대결을 펼쳤다. 둘다 모두 자신들의 클라우드가 정석이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는 않았지만 건물 한 블록을 사이에 두고 진행한 강연에서 치고받는 난타전을 벌였다. 재치있는 수사학도 대거 동원됐다. 그러만큼, 참가자들의 웃음소리도 자주 들렸다.

권투에 비유하면 둘의 설전은 래리 엘리슨이 먼저 날카로운 잽을 날리자 마크 베니오프가 기다렸다는 듯 되받아쳤고 다시 래리가 좀더 힘을 실은 잽을 날리는 형국으로 진행됐다. 결과는 무승부인듯 하다. 발단은 19일(현지시간) 래리 엘리슨가 진행한 오라클 오픈월드 첫 기조연설이었다. 이날 래리 엘리슨은 클라우드 컴퓨팅을 화두로 던지며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aaS)가 '주특기'인 세일즈포스닷컴은 진정한 클라우드 컴퓨팅 모델로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대신 컴퓨팅 자원을 판매하는 아마존을 극찬했다. 아마존 스타일이 제대로된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것이었다.

래리 엘리슨 CEO는 클라우드 컴퓨팅은 하드웨어와 SW를 포함해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본다면서 세일즈포스닷컴은 SaaS이며, 데이터베이스에 고객 데이터가 저장되는 것도 보안상 단점이다고 지적했다.

오라클에서 마케팅을 책임졌던 마크 베니오프가 지휘봉을 잡고 있는 세일즈포스닷컴은 클라우드 기반 고객관계관리(CRM) 서비스로 기업용 SW 시장에서 오라클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자사 CRM서비스와 연동되는 모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포스닷컴이라는 개발 환경도 서비스로서의 플랫폼(PaaS)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마크 베니오프는 세일즈포스닷컴을 클라우드 컴퓨팅의 선구자라고 자부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옛동지였던 래리 엘리슨이 '너희들이 무슨 클라우드냐?'는 식으로 도발을 감행한 것이다.

자타가 공인한 입담꾼인 마크 베니오프가 그냥 있을리 없다. 마크 베니오프는 래리가 기조연설을 한 컨벤션홀 바로 옆에 있는 한 극장에서 참가자들을 상대로 래리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클라우드는 박스안에 있지 않다고 반격의 포문을 열었다.

그의 발언은 래리 엘리슨이 이번 오픈월드에서 하드웨어와 운영체제 그리고 미들웨어까지 통합한 클라우드 컴퓨팅 플랫폼 '엑사로직'을 소개하면서 '100만달러짜리 박스안의 클라우드'에 비유한 것에 대한 카운터펀치였다.

공세는 계속됐다. 베니오프는 래리 엘리슨 덕분에 자신이 쓴 '비하인드 클라우드'란 책 판매도 늘었다면서 '클라우드 컴퓨팅은 무엇인가?'를 다시 화두로 던졌다. 지디넷닷컴에 따르면 클라우드에 대해 베니오프 CEO가 내린 정의는 짧고도 도발적이었다.

베니오프 CEO는 우선 클라우드는 멀티테넌트(여러 고객이나 사업부가 동일 시스템을 분리해 쓸 수 있게 해주는 기능) 아키텍처에 기반하며 쓴만큼 돈을 내는 모델이라고 잘라 말했다.

앞서 래리 엘리슨은 세일즈포스닷컴이 강조하는 CRM 서비스의 멀티 테넌트 기능에 대해 보안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또 가격 정책에 대해서도 세일즈포스닷컴은 쓴만큼이 아니라 사용자당 과금을 매긴다고 꼬집었다.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베니오프 CEO의 클라우드론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세일즈포스닷컴 서비스는 어떤 규모의 기업들도 쓸 수 있다면서 이를 '컴퓨팅의 민주화'에 비유했다.

또 세일즈포스닷컴이 하드웨어와 SW를 새로 사라고 하고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패치를 내놓는 것을 봤느냐?면서 끊김없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가짜 클라우드를 조심하라는 아주 도발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지디넷닷컴에 따르면 베니오프 CEO가 '가짜를 조심하라'는 발언을 할때 화면에선 컴퓨팅 박스가 나타났고 구름이 걷히면서 IBM로고 일부 로고가 비춰졌다는 후문이다.

베니오프의 강연 내용을 전해들은듯, 래리 엘리슨은 22일 오픈월드 마지막 기조연설에사 다시 세일즈포스닷컴을 정조준했다.

그는 베니오프 말대로 클라우드는 박스안에 있지 않다면 세일즈포스닷컴은 서비스를 어디에서 돌리느냐? 델 서버 1천500대를 갖고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것도 박스 아니냐?고 되물었다. 래리 엘리슨은 또 베니오프가 엑사로직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자기 보다 키가 크기 때문이란 유머스러운 표현으로 참가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공세는 이어졌다.

래리 엘리슨은 마크 베니오프는 지금 쓰고 있는 델 서버들은 한줄로 쫙 깔린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랙으로 쌓여 있을 것 아니냐면서 세일즈포스닷컴은 델 서버 1천500대를 엑사로직을 바꾸는게 어떠한가?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래리 엘리슨은 세일즈포스닷컴이 자랑하는 멀티 네턴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직격탄을 날렸다. 15년전 기술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래리 엘리슨은 21세기는 가상화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멀티 테넌트는 한물간 기술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베니오프와 오라클간 인연은 깊다면 깊다. 그는 오라클 출신이고 래리 엘리슨 CEO와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래리 엘리슨은 세일즈포스닷컴의 초창기 투자자였고 이사회 멤버로도 활동했다. 그러나 오라클이 웹기반 SW사업에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래리 엘리슨은 세일즈포스닷컴 이사회를 떠나야 했다. 이후 오라클과 세일즈포스닷컴은 자타가 공인하는 경쟁 관계였다.

관련기사

오라클은 틈날때마다 웹기반SW 서비스 시장에서 세일즈포스닷컴을 따라잡겠다고 호언장담했고 그럴수록 세일즈포스닷컴은 오라클과 날을 세웠다.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 오라클이 SaaS 시장 지분 확대를 위해 세일즈포스닷컴을 집어삼킬 것이란 얘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두 회사는 지금 싸울 수 밖에 없는 사이다. 이번 말싸움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