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둘리의 거리에 성인용품점이?

일반입력 :2010/01/22 15:03

정윤희 기자

영원한 ‘아기공룡 둘리’가 행정 당국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지난 2000년 부천시 상동에 폭 10m, 길이 300m로 조성된 ‘둘리의 거리’에는 둘리가 없다. 거리 곳곳을 둘러봐도 술집, 안마시술소, 성인 PC방, 모텔이 넘쳐날 뿐이다. 심지어 성인용품점도 버젓이 자리 잡고 영업 중이다. ‘어린이의 친구’ 둘리는 사라지고 유흥가만 남았다.

아무리 둘리가 성인(1983년 4월 22일생)이라고 해도 조성 취지와 어긋난다. 명예 부천시민증까지 받으며 부천시와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둘리로서는 섭섭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만화도시’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문화프로젝트를 추진해 온 부천시의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둘리의 거리’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좋지 않다. 술집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성인 PC방, 성인용품점은 너무 심하다는 반응이다.

친구들과 함께 놀러 나왔다는 이진아⑰씨는 “‘둘리의 거리’라고 해도 그냥 다른 유흥가나 똑같다”며 “딱히 둘리를 떠올릴 거리라고는 가끔가다 조그맣게 있는 조형물뿐이다”라고 말했다.

회사원 김성철㊱씨도 “절대로 아이들과 함께 나올만한 거리는 아니다”며 “특히나 밤이 되면 거리에 환락 업소들의 간판 불빛밖에 안 보일 정도다”고 말했다.

‘둘리의 거리’ 조성을 담당한 부천시 문화산업과에 따르면 현재 ‘둘리의 거리’에는 점포 입점 기준이 없다. 일단 ‘보여주기’식으로 조성만 해 놓고 ‘나몰라라’한 모양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가게든 낼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유흥업소들이 들어섰다.

문화산업과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점포 입점을 관리할 만한 규제는 없는 상태다”며 “어차피 둘리가 우리 생활 속에 있는 캐릭터라면 그런 곳(유흥업소)이 있다는 것을 꼭 나쁘게만 볼 수 없지 않냐”고 말했다.

그나마 진행되는 사후 관리는 1년에 한 번씩 하는 손상된 조형물 보수뿐이다. 그마저도 부족해 광장과 거리에 세워진 조형물은 때가 끼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둘리광장에는 아예 노점상들이 터를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점상 단속은 문화산업과 소관이 아니라 손댈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산업과 관계자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나타나는 노후화는 막을 수 없다”며 “노점상에 대해서도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둘리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가지고 있는 둘리나라(대표 류미희)는 지난 2007년부터 부천시에 ‘둘리의 거리’ 명칭 폐지를 요청했다. 주변 상권 및 지역여건 변화로 거리 조성사업은 역부족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둘리나라 관계자는 “지금 ‘둘리의 거리’에서 술집 정도는 아주 양호한 축에 낀다”며 “아예 환락가가 돼 버린 거리에 둘리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서 명칭을 빼달라고 건의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부천시는 시의회 행정감사를 통해 둘리나라측의 요구를 수용하고 향후 명칭을 폐지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천시 관계자는 “‘둘리의 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예산, 재정을 투입해서 조성한 것이라 갑자기 없애기는 어렵다”며 “그동안 주변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으나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관계 당국이 이번 ‘둘리의 거리’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천시에서 추진 중인 ‘빼꼼’ 이미지 활용, 최근 성내동에 조성된 ‘하니공원’ 등 관에서 주도하는 사업일 경우 ‘반짝 행정’에 그치지 말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둘리는 향후 만화 내에서 ‘고길동’이 거주한 도봉구로 옮겨갈 예정이다. 둘리나라는 현재 도봉구청과 ‘둘리테마파크(가칭)’ 조성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