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너무 길고 지루하다…똑똑하고 간결해야"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악시오스의 독특한 성공 전략

데스크 칼럼입력 :2018/09/07 17:19    수정: 2018/09/07 21:1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미디어는 붕괴됐다. 너무도 자주, 속이려 든다.”

“기사는 너무 길고 지루하다. 낚시 제목으로 독자를 유인한다.”

“돈을 벌기 위해 갈등까지 조작한다. 아예 조작된 뉴스(fake news)를 팔아 먹는다.”

"독자들은 정보 홍수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가치 있는(worthy) 뉴스를 찾기가 갈수록 힘들다."

미디어 비평이 아니다. 한 언론사 출범 선언문에 담긴 내용이다. (☞ Axios Manifesto 바로 가기)

그들은 독자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장담했다. 아예 ‘똑똑한 간결함(smart brevity)’을 경쟁 포인트로 내세웠다.

이쯤 소개하면 짐작했을 것 같다. 2017년 1월 출범한 미국 뉴스 사이트 악시오스(axios) 얘기다. 악시오스는 그리스어로 ‘가치 있는 것(worthy)’이다.

악시오스를 이끌고 있는 폴리티코 출신 3인방. 왼쪽부터 짐 반더하이, 마이크 앨런, 로이 슈워츠. (사진=악시오스)

■ "모바일 시대, 모든 게 편해졌다…뉴스 읽기만 빼고"

악시오스는 이제 출범 2년 차인 신생매체다. 하지만 진작에 신생매체 티를 벗었다. 출범과 함께 심심찮게 특종을 쏟아냈다. 국내에서도 ‘악시오스에 따르면’이란 인용 보도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명품 매체 중 하나다.

국제뉴스미디어협회(INMA)에 따르면 악시오스의 월간 순방문자는 1천180만명, 페이지뷰는 8천만에 이른다. 뉴스레터 가입자는 36만명이다. 1년 전 월간 방문자 600만명, 뉴스레터 가입자 20만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장세다.

이런 성장 비결은 뭘까? 물론 변화된 상황을 잘 읽은 덕분이다. 그렇다면 변화의 핵심은 뭘까? 악시오스의 케이트 메이스너 비즈니스 개발담당 부사장은 독자 조사 결과를 세 가지로 요약한다.

메이스너는 INMA 회원들을 대상으로 악시오스 비즈니스 모델을 소개하는 웨비나를 진행했다. 아래 내용은 INMA 사이트에 올라온 웨비나 소개 기사를 참고했다. (☞ INMA 기사 바로 가기)

1. 기사를 끝까지 읽는 독자는 5%에 불과하다.

2. 방문자 세 명 중 두 명은 다른 기사를 눌러보지 않고 떠난다.

3. 소셜 미디어 포스트 중 59%는 읽지도 않고 공유한 것들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악시오스 기사. 깔끔하게 정리된 노트 필기 같은 모양새다. (사진=악시오스)

셋 모두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한 내용이다. 하지만 수치로 표현된 것들은 실제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다. 악시오스 편집진은 특히 ‘읽지 않고 공유한다’는 부분에 대해선 ‘끔찍한 결과’라고 묘사한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악시오스의 시선은 신랄하다.

“디지털 시대는 모든 걸 더 쉽게 만들었다. 단 뉴스 읽는 것만 빼고.”

악시오스가 ‘똑똑한 독자들이 신뢰할 수 있고 편리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자’는 모토를 내건 건 이런 상황 때문이다. 그 해답으로 나온 것이 ‘똑똑한 간결함’이다.

‘똑똑한 간결함’이란 모토가 모호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악시오스 기사를 한번 읽어보라. 한 눈에 보기에도 다른 기사들과는 확연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악시오스 기사에서 연상되는 건 모범생의 요약 노트다. 수업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노트 필기 같단 얘기다.

모든 기사는 ‘왜 문제가 될까(why it matters)’ 같은 핵심 질문들로 구성돼 있다. 쉽게 읽고, 쉽게 기억하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 "자기 분야 정통해야"…때론 전문가 영입한 뒤 기자로 변신시키기도

왜 이런 방식으로 쓰는 걸까?

메이스너의 대답은 분명하다. “독자들은 800자 분량 기사를 잘 읽지 않는다. 알기 원하는 걸 바로 얘기해줘야만 한다.”

꼭 필요한 정보를 간략하게 전해주는 것이 경쟁 포인트란 얘기다. 사실 이런 설명은 뻔하게 들린다. 요즘 같은 때엔 거의 모든 매체들이 추구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음 단계 질문이 필요하다. “악시오스의 기사는 왜 특별하단 평가를 받는 걸까?”

악시오스는 저널리스트에 대한 기존 상식을 살짝 뒤집는다. 그 동안 기자는 ‘보편적 지식인’이었다. 특정 분야 전문가보다는 뛰어난 취재력과 전달력을 가진 보편적 인재가 전통적인 기자상이었다.

(사진=악시오스)

그런데 악시오스는 인재 선발의 무게 중심을 살짝 비틀었다. 메이스너는 “우리가 채용하는 모든 사람들은 담당 분야 전문가”라고 설명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별 것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어지는 설명은 좀 파격적이다.

때론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적이 없는 사람을 채용할 때도 있다는 것. 해당 분야 전문가를 영입한 뒤 저널리스트로 변신시키는 전략을 자주 쓴다는 설명이다.

악시오스의 기사는 간략하다. 하지만 그들의 간략함은 ‘똑똑한 간략함’이다. 해당 분야를 간략하고 깔끔하게 정리한 모범생들의 필기 노트. 악시오스가 내세우는 ‘똑똑한 간략함’에서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다.

똑똑한 간략함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때도 있다. 남이 잘 정리한 노트를 읽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잘 정리해놓은 역사 노트같은 느낌. 그래서 굵직한 팩트는 챙기지만, 행간의 의미는 놓칠 우려가 있는 서술 방식.

‘간결함’의 이런 공허함을 메워주는 것이 ‘똑똑함’이다. 악시오스가 전문가를 뽑은 뒤 저널리스트 훈련을 시키는 것도 이런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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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 채 안 된 신생매체 악시오스의 성공적인 질주는 모바일 시대 저널리즘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라 듣고 싶어하는 얘기를 해줘야 독자들이 열광한다는 단순하지만 절대 불변의 진리를 떠올리게도 만든다.

그래서일까? 내 시간이 소중한 만큼 독자들의 시간도 소중하다는, 조금은 비장한 다짐을 하게 된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