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라는 말, 이젠 좀 그만 씁시다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잘못된 용어, 잘못된 프레임

데스크 칼럼입력 :2018/08/30 10:50    수정: 2018/08/30 11:0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언제부터인가 가짜뉴스란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많이 사용하지요. 주로 ‘오보’란 얘기를 할 때 “그거 가짜뉴스입니다”고 항변합니다.

잘 아는대로 가짜뉴스는 영어 페이크뉴스(fake news)를 번역한 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번역이죠. 조작된 뉴스, 혹은 뉴스처럼 가장한 뉴스 정도가 정확한 번역일 겁니다. (이 칼럼에선 편의상 fake news를 가짜뉴스로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번역 얘길 하려는 건 아닙니다. 가짜뉴스란 말이 얼마나 사람들을 혼동케하려는 지 한번 따져보려는 겁니다.

(사진=구글 뉴스룸)

■ 가짜뉴스로 규정지을 경우 신뢰도 더 낮아져

미국에서 페이크뉴스란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 정치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닐까 합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구글에서 ‘트럼프 뉴스’를 검색해보라. 가짜뉴스 미디어들만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프는 아예 “나에 대한 뉴스는 90% 이상이 가짜”란 말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 CNN 등이 트럼프가 꼽은 대표적인 가짜뉴스 매체들입니다. 구글, 페이스북에 대해서도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짜뉴스 프레임은 자주 사용됩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아예 가짜뉴스대책반까지 만들었습니다.

왜 정치인들은 ‘가짜뉴스’란 말을 사용하는 걸까요? 논리적으로 따져봐도 가짜뉴스는 틀린 말입니다. 원래 fake news가 되려면 두 가지 전제가 성립돼야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ZDNet)

첫째. 담고 있는 메시지가 허위 정보일 것.

둘째. 허위정보를 언론사가 보도한 기사처럼 보이도록 조작할 것.

이런 기준을 적용할 경우 트럼프나 자유한국당이 자주 사용하는 ‘가짜뉴스’는 틀린 표현입니다. (이렇게 반문해보면 어떨까요? 이런 주장들에 대해 제가 ‘가짜 주장’이라고 하면, 당사자들 기분은 어떨까요?)

물론 정치인들도 잘 알 겁니다. 가짜뉴스란 표현이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런데도 왜 가짜뉴스란 표현을 자꾸 사용하는 걸까요? 물론 오보라는 조금은 모호한 표현보다는 훨씬 더 대중소구력이 강하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또 다른 강점도 있습니다. 가짜뉴스로 규정할 경우 신뢰도가 확 떨어지는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미국 미디어 전문기관인 포인터연구소가 29일(현지시간) 흥미로운 논문을 하나 소개했습니다. 텍사스대학 에밀리 밴 두인 교수 등이 발표한 논문입니다. (☞ 포인터 기사 바로가기)

연구 방법은 간단합니다. 미국 성인 299명에게 뉴스를 보여준 뒤 신뢰도를 측정한 겁니다.

연구 참여자들에게 엘리트 정치인들의 트윗을 보여줍니다. 한 트윗은 그냥 기사를 비판한 거고, 다른 트윗은 ‘가짜뉴스’라고 규정한 겁니다.

이렇게 한 뒤 참여자들에게 해당 미디어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하는 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가짜뉴스’로 틀 지어진 매체에 대한 신뢰도가 훨씬 낮게 나왔습니다.

이 연구는 이렇게 결론내립니다. (☞ 논문 바로가기)

(사진=포인터연구소)

“가짜뉴스란 주장을 접하게 할 경우 개인들의 미디어 신뢰도가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게 되면 진짜 뉴스(real news)를 가려내는 정확도도 함께 낮아질 수 있다.”

조금은 섬뜩한 결론 아닌가요?

이 연구를 소개한 포인터는 가짜뉴스 대신 사용할 용어들이 많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보(misinformation), 허위정보(disinformation) 같은 말이 대표적입니다.

■ 'fake news=가짜뉴스' 번역도 부정확

가짜뉴스 공방은 우리나라로 넘어오면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가짜뉴스란 말 자체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지요. 가짜뉴스란 말 속엔 ‘진짜’가 따로 있다는 의미이지요.

한번 따져봅시다. 오보는 가짜뉴스이고, 정확한 사실 보도는 진짜뉴스일까요? 아닐 겁니다. 의도적으로 잘못된 사실을 쓰지 않는 한, 오보도 성실한 보도활동의 결과물이지요. (야구 선수들의 실책이 가짜 야구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악의적인 오보’는 가짜뉴스인 걸까요? 그것도 아니지요. 뉴스는 뉴스인데, 의도적으로 허위정보를 유포한 악의적인 보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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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적절한 용어는 사회 전체의 커뮤케이션을 원할하게 하는 출발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가짜뉴스는 추방되어야 할 대표적인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오보, 허위보도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좀 더 심하면 고의적인 오보, 악의적인 오보라고 평가하면 될 겁니다.

뒤집어 생각해보세요. 가짜 정치인, 가짜 시민, 가짜 교수라고 비판하면 기분이 어떨까요?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