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욕심내다 불문율 깨진 구글 또다른위기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전통적 두 가치 흔들려

데스크 칼럼입력 :2018/08/20 14:25    수정: 2018/08/20 21:4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구글은 젊고 자유분방한 회사다. 매주 열리는 TGIF란 전직원 회의는 그런 구글의 문화를 대표한다. 직원들은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질문할 수 있다. 임원들은 회사 비밀까지도 숨김 없이 말해준다. 세르게이 브린이나 래리 페이지 같은 창업자들도 기꺼이 직원들의 질문에 답한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TGIF에서 오간 정보는 절대 외부에 발설해선 안된다는 불문율이다.

지난 주 목요일 오후에도 구글에선 TGIF가 열렸다. 이날 회동에선 구글이 중국 정부의 검열 요구를 수용하려한다는 최근 보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구글이 중국 시장에 새롭게 진출하기 위해 검열 가능한 검색엔진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드래곤플라이’란 암호명까지 언론에 공개되면서 구글 경영진들이 강한 비판을 받게 됐다.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 창업자

회의 석상에서 'F*** you' 등 험한 말 오가기도

이날 회의에서 선다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드래곤 플라이가 출시 직전 단계란 소문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앞으로 어떤 비밀 프로젝트든 직원들과 적극 공유하겠다는 말도 했다.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도 무대에 올랐다. 브린은 "솔직히 말해 이런 대소동(kerfuffle) 때문에 드래곤플라이에 관심갖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에야 드래곤플라이에 대해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구글 특유의 기업 문화 덕분에 또 한번 정의를 실현했다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검열에 굴복하느니 차라리 중국 시장을 포기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재연하는 듯하다. ‘사악해지지 말라(Don’t be evil)’는 초기 구글의 모토를 떠올리게 만든다.

세르게이 브린 창업자와 선다 피차이 구글 CEO가 지난 16일 전체 회의에서 한 발언이 뉴욕타임스 기자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개돼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날 회동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르게이 브린과 선다 피차이 등 핵심임원들이 회의 석상에서 한 발언이 뉴욕타임스 기자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개된 때문이다. ‘모든 걸 공유하되, 절대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깨져버린 것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그 여파로 이날 회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한 남성 직원은 단상에 올라 회의 내용을 누설한 동료를 맹비난했다. “f*** you”란 말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회사를 떠나라’고 소리쳤다. 회의장 안 대형 화면에는 뉴욕타임스 기자가 올린 트윗 내용이 그대로 중계되고 있었다. (☞ 비즈니스인사이더 기사 바로가기)

애플과 달리 구글은 일찌감치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2010년 중국 정부의 검열 요구에 불응하면서 세계 최대 시장을 포기했다. 구 소련 출신인 세르게이 브린이 검열이나 감시 사회에 대해 특히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랬던 구글이 8년 만에 ‘검열 수용’이란 조건으로 중국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는 보도는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16일 밤 열린 TGIF는 그런 분위기를 다독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회의 내용 유출 사건으로 오히려 사태는 더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비즈니스인사이더, 더버지 등 주요 IT 매체들은 “이번 사건으로 구글 경영진이 중국 프로젝트 내용을 직원들과 공유하지 않을 명분이 생겼다”고 꼬집었다.

세르게이 브린은 정말로 '드래곤플라이'를 몰랐을까

이날 회의 석상에서 오간 해명들도 도마 위에 올랐다.

선다 피차이 구글 CEO는 중국 프로젝트는 ‘탐색단계’라고 밝혔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들은 이미 ‘드래곤플라이’가 출시 직전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더버지는 “선다 피차이는 이 차이에 대해 명확하게 해명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드래곤플라이를 최근에야 알게 됐다”는 세르게이 브린의 발언도 논란이 되고 있다. 중국 시장 철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승인없이 ‘드래곤플라이’를 추진하는 것이 가능했겠냐는 것이 비판의 골자다.

구글은 출범하면서 ’사악해지지 말자’는 걸 회사 모토로 내걸었다. ‘모든 걸 공개하고, 모든 걸 논의하는’ 기업 문화도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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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구글은 이 두 가지가 모두 흔들리고 있다. 전자는 사업 확장을 꾀하는 경영진들을 통해, 후자는 ‘TGIF에서 오간 정보는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깬 어느 직원을 통해.

중국은 이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할 정도로 매력적인 시장임엔 분명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내부 갈등은 생각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이번 갈등은 경영진과 직원 양쪽에서 동시에 원인을 제공한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