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신산업을 키운 정부, 막은 정부

[박승정칼럼] 제주도 특구 지정에 거는 기대

데스크 칼럼입력 :2018/08/14 14:18    수정: 2018/11/16 11:34

기억할지 모르겠다. 비트코인 거래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연초, 한 방송사 스튜디오에서 펼쳐졌던 유시민과 정재승의 블록체인·암호화폐 토론 장면 얘기다.

토론은 흐름으로만 보면 유시민의 승리로 귀결됐다. 블록체인 비전문가인 그는 전문가 타이틀을 가진 정재승을 코너로 몰았다. 한때 재치 있는 입담으로 유명세를 탄 KAIST 정재승이었지만 명료한 대중의 언어를 앞세운 유시민을 당해내지 못했다.

유시민 ‘아류들’이 생겨난 것도 이때쯤이다. 그들은 암호화폐·블록체인을 인류 역사상 가장 난해하고 우아한 사기라고 공박했다. 가능성 ‘제로’라는 것이다. ‘바다이야기’처럼 도박과도 같아서 모든 국가들이 불법화할 것이라는 예측도 잊지 않았다.

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오비이락(烏飛梨落)이었을까. 법무장관이 총대를 멨다. 정부가 암호화폐 공개(ICO)를 단박에 틀어막았다. 정부의 입장은 아직 완고한 듯하다.

세계 각국 기업들은 블록체인, 인공지능(AI)등 신사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은 픽사베이.

■ 블록체인·암호화폐 정책 갑론을박... 구한말 개화파·척사파 대립 연상

블록체인·암호화폐를 대하는 정부 내 현상만을 놓고 보면 구한말의 개화(開化)파와 척사(斥邪)파를 연상시킨다. 새로운 사조와 철학, 산업의 현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옹호론자들은 개화파다. 요사스러운 것, 사기와 같은 현상을 물리치겠다는 척사파는 다름 아닌 무용론자들이다.

그런데 지자체는 달랐다. 원희룡 도지사는 아예 제주를 블록체인·암호화폐 특구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개화파들보다 더 적극적이다. 지난주엔 정부에 공식 제안하고 건의하는 형식도 갖췄다. 여당과 관계 장관, 전국 시도지사가 참석한 연석회의가 무대였다.

제주뿐만이 아니다. 서울과 부산, 경기도도 나섰다. 지역분권화 시대의 때 이른 단면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배경과 방법이 각기 달랐지만 사실상 지향점은 비슷했다. 블록체인·암호화폐의 도입이 그것이다.

여간 혼란스러운 게 아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현재와 미래주자 간 성장 동력을 보는 작은 시각차라기엔 나가도 너무 나간 탓이다. 여전히 집권 세력은 사기라고 단언하는데 차기 지도자그룹의 원희룡·박원순·오거돈 같은 이는 신산업이라고 주장하는 판이다.

이대로 간다면 제주도는 블록체인을 키운 원희룡 자치정부가 되고 중앙정부는 블록체인을 막은 문재인 정부가 된다.

정부 내에서도 블록체인·암호화폐에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획재정부가 개화파에 가깝다면 법무부와 금융위, 청와대는 척사파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갑론을박, 논쟁만 무성하다.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게 아니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정부가 판단하기 어렵다면 네거티브 규제 형식으로 매듭을 풀어가되 나머지는 지자체나 시장에 맡기라는 얘기다. 블록체인과 같은 파괴적 혁신이란 속성을 갖고 있는 신산업은 규제를 최소화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규제 샌드박스형 지역 혁신성장 특구든, 규제 프리존이든 형식과 명칭을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원희룡 제주 지사가 8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혁신성장회의에서 제주 블록체인 특구 지정을 정부에 공식 건의했다.

■ 제주, 혁신성장 특구 조건 갖춘 유일 지자체... 중앙정부 미래 지향적 정책 결단 ‘기대’

제주도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자. 원 지사의 주장처럼 제주는 이미 국제자유도시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위상을 갖고 있다.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산업경제 부문서 얼마든지 그 지위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지정학적으로도 한·중·일 중간지역이고 섬이라는 테스트베드 지역으로서의 이점도 있다. 이미 와이브로,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육지에서는 테스트하기 힘든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다. 60만~70만이라는 적정 규모의 인구도 강점이다.

무엇보다 최고 행정책임자의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비전과 의지다. 원 지사 개인적으로도 10년 전 20조원 이상의 대규모 ‘디지털뉴딜’을 주창했던 경험이 있다. 결국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당시 ‘4대강 토건족’이 득세한 상황에서 그의 행보는 정책 제안 이상의 의미를 내포했다.

제주도가 관광뿐만이 아닌 블록체인 특구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적으로도 여야 어느 지점에도 속하지 않은 무소속 자치단체장이 이끌고 있다. 정부여당의 부담 요인이 적다는 의미다.

제주도의 블록체인 특구 도전은 그래서 남다르다. 다가오는 분산경제 시대의 첫 관문이기 때문이다.

분산경제 시대의 블록체인은 분명 기회와 리스크 요인이 상존한다. 하지만 기회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법이다. 삼국지의 관우처럼 다섯 관문을 넘어야(五關六斬)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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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제주도는 여전히 글로벌 비즈니스에 필요한 규제 혁신을 수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도시다.

[편집인/과학기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