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계약 특성 고려한 합리적 법리 발전必"

[한서희 변호사 칼럼] 블록체인과 스마트 계약

전문가 칼럼입력 :2018/08/09 09:21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P2P 방식의 지급수단을 지향하는 암호화폐(가상통화)를 통해 결제를 시도할 경우, 일정한 네트워크 안에서 거래 이행이 거래 당사자의 개입 없이도 자동으로 가능해질 수 있다. 이러한 취지로 최근에 주목받게 된 것이 '스마트 계약'이다. 스마트 계약을 가능하게 하도록 고안된 플랫폼이 이더리움 플랫폼이기 때문에 암호화폐 발전상황에 맞춰 스마트 계약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

미국에서는 최근 주로 블록체인이나 스마트계약에 의하여 이루어진 거래에 대하여 차별적인 취급을 하지 않는다는 대등성의 원칙을 선언하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가정적인 상황 및 사례를 고려해 보았을 때 스마트 계약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전통적인 민사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여 취소나 무효 여부에 대하여 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민사 법리가 당연히 배제된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명백한 것은 스마트 계약의 특성을 고려하여 합리적인 새로운 법리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스마트 계약과 관련하여 비즈니스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블록체인 업계 종사자들은 앞으로 스마트 계약의 입법 및 해석과 관련하여 어떤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진=픽스타)

■ 스마트 계약 뭐길래?

스마트 계약은 컴퓨터프로그래머인 닉 서보(Nick Szabo)가 1994년에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이는 계약의 조건을 실행하는 거래 프로토콜로 출발한 것으로 당시 이 아이디어는 한정된 사용 허가만을 획득하는 내용의 디지털 저작권 관리(DRM)계약으로 구체화됐다. 이처럼 스마트 계약에 대한 논의가 블록체인으로 인해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더욱 스마트계약이 주목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암호화폐를 통해서 결제가 자동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과 함께 블록체인은 조작되지 않은 데이터와 기록을 남기기 때문에 스마트 계약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는 예상 때문이다.

이러한 스마트 계약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적 논쟁이 있다. 스마트 계약은 아직 그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협의의 스마트 계약은 청약과 승낙의 합치로 성립하는 일반계약과는 달리 일방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코드)를 의미하는 것으로, 계약의 성질을 가지지 않는다.

한편 광의의 스마트 계약은 공개된 코드가 존재하고 상대방이 이에 응하기로 하는 긍정적인 반응 즉, 코드에서 제시하고 있는 조건을 성취시킨 경우에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광의의 스마트 계약 하에서는 어떤 사람이 코드에서 제시한 조건을 실현한 경우 코드 작성자의 의사표시와 상대방의 의사표시가 합치된 것으로 볼 수 있어 계약의 구조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다만 일반적인 계약은 계약이 체결된 이후에 계약에 따른 이행의무가 발생되는데 반해, 광의의 스마트계약은 상대방의 의무이행(조건의 성취)과 함께 코드 작성자의 의무 이행이 자동적으로 실현된다는 점에서 양자는 상이하다.

스마트 계약을 이더리움 플랫폼에 탑재하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우선 상대방의 전자지갑 주소가 아닌 설계자가 설정한 특별한 주소를 이용해야 한다. 계약당사자는 코드에 정해진 스마트 계약의 조건을 실행해야 하고 그러면 스마트 계약이 발효된다. 스마트 계약의 성립과정을 그 단계별로 살펴보면 ▲설계자의 코드 작성 ▲코드 공개 ▲거래 상대방의 조건 성취 ▲토큰 이전 ▲계약의 자동 실행으로 구성된다.

위에서 말하는 스마트 계약의 조건 성취는 거래 상대방인 인간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컴퓨터가 조건 성취 여부를 판단하여 처리하는 알고리즘 계약과 스마트 계약은 상이한 개념이다.

■ 스마트 계약에 대한 법률 쟁점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스마트 계약과 관련하여 어떤 법률 쟁점이 부각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긴 하다. 다만 예상 가능한 문제들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우선 조건이 실행되면 바로 이행되므로 원칙적으로 채무불이행(이행지체·이행불능)이라는 개념이 적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 계약상의 채무가 이미 이행이 이루어진 경우에도 불완전이행은 문제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 계약의 체결과 동시에 이행된 반대급부가 권리상의 하자 또는 물건상의 하자가 있다면, 민법상의 담보책임을 부담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P2P의 블록체인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어 익명 거래가 가능하여 금융거래에서 금융실명제 등과의 상충도 예상되며 스마트 계약이 인공지능과 연결될 경우 코드 설계부터 컴퓨터에 의해 이뤄져 누가 계약의 당사자가 되는지 하는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계약의 소스코드와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제안서가 불일치할 경우 상대방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의사표시에 관한 착오로 볼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가 요구된다.

다음으로 채무의 이행이 오히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에 있어서 그로 인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문제될 수 있다. 잘못된 계약은 파기되는 것이 옳고, 당사자가 불이행을 선택한 후 다툴 수 있어야 하는데 스마트계약에서는 인간의 선택에 의해 이행을 정당하게 보류 내지 지연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또 스마트계약에서는 코드의 약점을 파악하여 자신의 부당한 이익을 달성하는 일종의 해킹 행위를 하는 사람을 막을 수 없다는 점도 과제로 남는다. 대표적인 예가 the DAO에 대한 해킹 사례이다. 해커가 이더리움을 공격하여 14달러를 주고 4천7백만 달러 가치가 있는 대가를 받는 거래를 성사시켰는데, 이더리움 측은 이것이 해킹 내지 일종의 사기라고 주장하는 반면, 해커 측은 공개적인 서신으로 자신은 이더리움 컴퓨터 코드에 공개적으로 제시된 바에 따라 이에 응하여 거래하였을 뿐, 아무런 불법적인 행위를 한 바가 없다고 항변한 사례이다.

■ 미국·러시아 입법 사례 살펴보면…

스마트 계약은 당사자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제거하고, 계약 체결 내용이 모두 공개됨으로 인해 동일한 내용의 계약을 체결할 경우 해당 내용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되어 계약 체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스마트 계약에 대한 입법례가 많은 것은 아니나 몇몇 입법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2015년 1월 2일 미국 하원은 '2014 온라인 시장보호법(Online Market Protection Act of 2014);을 발의했다. 위 법안이 연방법률 차원에서 스마트 계약의 개념을 최초로 언급한 법안이라고 한다. 동 법안에 따르면 스마트 계약은 '미리 정해진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계약실행 또는 다수당사자의 계약실행 그리고 공개된 거래기록, 재산 이전을 가능하게 하는 암호로 코드화된 합의'로 정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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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리조나주가 주법상 최초로 스마트계약의 개념을 입법했는데 이 법은 스마트 계약을 '분산화·비집중화 되고 공유·복제된 원장에서 실행되는 이벤트 기반의 프로그램이라고 하며, 원장에서 자산을 보관하고 그것의 이전을 지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올해 1월 발표한 '전자금융자산에 관한 연방법'에도 스마트 계약에 대한 정의규정이 존재한다. 위 제정안에서는 스마트계약을 '전자적 형태의 계약으로서 일정한 조건이 성취된 경우 권리와 의무가 엄격하게 정 의된 순서에 따라 분산장부에서 전자거래의 자동이전에 의해 이행되는 계약'으로 규정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2007 : 제49회 사법시험 합격, 2008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2010 : 사법연수원 제39기 수료, 2012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경제법),2010 : 대우증권,2011 : 현재 법무법인 '바른' 소속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