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원 '휴대폰 위치추적 영장필수' 맞나?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지속적 정보 수집에만 적용

데스크 칼럼입력 :2018/06/27 16:03    수정: 2018/06/28 09:1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범죄 수사를 위해 휴대폰 위치 정보 추적하려면 수색영장을 받아야 할까? 휴대폰이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이래 끊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 주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놨다. ‘휴대폰 위치 추적 정보가 필요하면 영장을 받아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이 소식을 전한 국내 언론들은 대부분 “역사적인 판결”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판결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 분명하다. ‘부당한 압수수색’을 금지한 미국 수정헌법 4조 적용 대상에 휴대폰 위치정보까지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9명의 대법관 중 긴스버그를 비롯한 진보 성향 4명이 휴대폰 위치 정보 추적 때도 영장을 발부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보수성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진보진영에 가세하면서 5대 4로 결론이 났다.

미국 연방대법원. (사진=미국 대법원)

그렇다면 앞으로 미국에선 모든 휴대폰 위치 추적 때 영장을 받아야 하는 걸까? 물론 그건 아니다. 국내 언론들이 “미국 휴대폰 위치정보 추적 때 영장 필수”라고 보도한 건 엄밀히 말해 절반만 맞는 보도다.

■ '제3자 원칙' 적용대상 제외는 큰 의미

이번 사건은 2011년 오하이오, 미시건 등에서 무장 강도를 하다가 체포된 티모시 카펜터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휴대폰 위치 추적 정보를 사용한 것이 발단이 됐다.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총 127일간 1만2천898건의 위치 정보를 활용했다. 경찰은 이 위치 정보를 티모시 카펜터가 가입한 통신사에서 제공받았다.

그러자 카펜터 측은 영장도 없이 위치정보를 수집한 점을 문제 삼았다. '독수독과'에 해당되는 만큼 재판에서 활용해선 안 된다는 게 카펜터 측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경찰이 수색영장 없이 휴대폰 위치 정보를 입수한 것은 정당한 법 집행이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카펜터 대 미국 정부’로 불렸다. 연방대법원에선 지난 해 10월 이 사건을 심리했다. 당시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카펜터 같은 사람은 자기가 다닌 곳을 사적인 정보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 기대했을까?

둘째. 이번 사안에도 ’제3자 원칙’을 적용할 수 있을까?

‘제3자 원칙(Third-party doctrine)’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오래 전부터 고수해온 판례다. ‘자발적으로 제 3자에게 넘긴 정보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프라이버시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제3자 원칙’의 핵심 골자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회의실. (사진=미국 대법원)

연방대법원은 1979년 전화 가입자의 통화 기록을 경찰이 영장 없이 수집한 것은 정당한 법 집행이었다고 판결했다.

그 때 이후 ‘제3자 원칙’은 개인 정보에 대한 프라이버시권을 제한하는 대표적인 원칙이었다. 이 원칙에 따라 택시 운전자들의 위치 정보는 보호 대상이 아닌 것으로 간주해 왔다.

그런데 연방대법원은 ‘카펜터 대 미국 정부’ 사건에선 제3자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 부분은 굉장히 의미 있는 판결이다.

연방대법원은 디지털 기술 발달로 인해 추적 범위가 무한대에 가깝게 된 점에 주목했다. 휴대폰 가입자라 하더라도 경찰이 오랜 기간에 걸쳐 모든 정보를 추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진 못할 것이란 게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휴대폰이 이젠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나 다름 없다는 점도 이번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연방대법원은 “휴대폰은 현대 사회에 참여하는 데 꼭 있어야만 하는 제품”이나 다름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휴대폰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넘겼다고 보긴 힘들다는 것이다.

따라서 휴대폰 위치 정보 추적에선 ‘제3자 원칙’을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판결 골자다. 그럴 경우 수정헌법 4조에 따라 정당한 수색 영장을 발부 받은 뒤 관련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 "6일까지는 영장 없이…7일치 이상은 영장 필수"

하지만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우선 연방대법원은 ‘제3자 원칙’ 자체는 그대로 인정했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넘긴 정보에 대해선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수색할 수 있다는 원칙은 여전히 살아 있다.

더 눈길을 끄는 건 그 다음 부분이다. 연방대법원이 ‘카펜터 대 미국 정부’ 사건에서 영장 없는 법 집행이 잘못됐다고 판단한 건 ‘장기간에 걸친 위치 정보 수집’이었기 때문이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 (사진=미국 대법원)

폭발 사고나 긴급 재난 같은 경우 실시간으로 위치 정보를 수집할 땐 영장 없이 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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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또 있다. 다수 의견을 대표 집필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 각주에 ’제3자 원칙’이 적용되는 구체적인 시한까지 적시했다.

미국 대법원 전문 사이트 스카터스블로그에 따르면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최대 6일 동안의 위치 정보에는 제3자 원칙이 적용되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적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