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우정, 평화. 언뜻 듣기에는 너무 달콤한 말이다. 하지만 가장 실현하기 어려운 말들이 아닐까.
모두가 원하기에 너무 많이 쉽게 쓰이는 말.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
여기 또 하나 달콤한 세상이 있다. ‘스마트시티(Smart City)’. 그대로 번역하면 똑똑한 도시다.
문재인 정부는 8대 핵심 선도 사업으로 ‘스마트시티’를 선정했다. 2022년까지 세계적인 스마트시티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하에 스마트시티특별위원회까지 설립했다.
스마트시티는 문재인 정부만의 사업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누가 먼저 스마트시티를 구축하는지 경쟁이 뜨겁다. 왜 지금 각국은,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스마트시티라는 달콤한 세상을 외치고 있는 걸까.
현재 도시에 사는 세계 인구는 39억 명이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가 55%나 된다. 2050년까지는 세계 인구의 68%가 도시에서 살게 될 전망이다. 도시가 증가하고 그 안에 사는 사람이 늘면서 도시에는 교통, 환경, 안전 등의 많은 문제점이 생겨나고 있다.
넘쳐나는 도시의 문제를 5G, 빅데이터, IoT, 인공지능(AI) 등의 첨단 기술을 이용해 해결해보자는 것이 바로 스마트시티다. 도시민이 지금보다 더 많은 생활 편익을 얻을 수 있도록 도시를 조금 더 ‘똑똑하게’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시티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긍정적이지 않다. 기대와 냉소,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똑똑한 도시'가 국가에, 내 삶에 활력과 생산성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무관심이나 그런 유토피아 도시는 올 수 없다는 냉소적인 시선도 있다.
스마트시티에 대한 냉소는 전혀 근거가 없는게 아니다. 이미 10년 전 스마트시티 초기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유시티(U-City)'라는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유시티는 첨단 정보 통신망을 바탕으로 다양한 유비쿼터스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지은 도시다. 하지만 유시티 사업은 사람들에게 박수받지 못한 채 퇴장했다.
이후 사업은 스마트시티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때의 과오를 발판삼아 진행 중이다. 유시티 사업이 실패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유시티가 도시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한 사업으로 인식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유시티의 가장 큰 과오는 지속가능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스마트시티를 유망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국가 성장 동력을 만들고자 함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올해 내년 한국경제 성장률은 각각 2.9%와 2.7%로 전망되며, 한국 경제 성장속도는 점점 둔화되는 추세다. 경제 성장의 많은 부분을 견인하고 있는 반도체, 자동차, 핸드폰 등 제조업 분야도 그 전망이 밝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해외로 수출할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스마트시티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시티는 사업 이전에 도시다. 시민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핸드폰처럼 제품 하나를 만들고 팔면 끝나는 상품이 아니다. 심지어 핸드폰도 상품이 소비자의 손으로 넘어간 후에도 끊임없이 업데이트 되며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날 유시티는 어땠나. 모든 하드웨어가 그렇듯, 내부 소프트웨어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지 않으면 그 기기는 죽은 기기가 된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멋들어진 시스템을 구축해도 계속해 정보와 서비스가 업데이트 되지 않으며 소용이 없다.
구축만 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할 재원과 동력을 마련하지 못한 유시티는 그렇게 아파트 분양하듯 끝나버렸고, 막대한 예산만 쏟아부었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도시를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동하는 터전’이 아닌 그저 ‘돈벌이’로만 본 탓이다.
도시는 정부, 특정 기업,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그 도시에 살아가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시민들의 것이다. ‘스마트시티’를 단순히 수출 플랫폼이라는 하나의 상품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스마트시티는 유시티와 다른 길을 걸을까. 사실 '유시티의 과오를 답습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의 시선을 온전히 지우기 힘들다. 여전히 스마트시티를 단순한 사업으로만 바라보고 R&D 예산 혹은 기업 이익만 챙기려는 일부 기업들, 또 부처 간 또는 부처와 기관 간 오랫동안 이어져 온 칸막이 행정, 여기에 새로운 신기술과 서비스를 실험하기 어려운 수많은 규제까지 생각하면 넘어야 할 산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역시, 달콤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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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냉소를 보내며 포기하긴 이르다. 다행히 정부와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 총괄책임자(MP)를 비롯한 스마트시티 추진 관계자들은 지난 사업의 부족한 부분을 인지, 시민의 편리하고 행복한 삶을 담아내는 도시로서의 ‘스마트시티’ 개념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생각해본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자'는. 이성을 갖춘 정부 의지와 기업 의지, 그리고 함께 참여하고 감시하는 시민과 언론의 의지, 이 의지들이 스마트시티를 바라보는 냉소를 극복하게 해 줄 것이다. 또 국가와 시민에게 이익을 주는 ‘똑똑한 도시’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