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한국' 발목잡는 게임규제 유감

[김장현 칼럼] 스스로 조절하는 문화 절실

전문가 칼럼입력 :2018/05/23 14:10    수정: 2018/05/23 14:21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2000년대 중반,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광대역 인터넷 보급가구 비율이 50%를 넘어섰다. 가장 빠른 인터넷을 가장 싸게 쓸 수 있는 나라. 다이얼업 모뎀에서 가장 빨리 탈출한 나라. ‘산업화는 늦었어도 정보화는 앞서가자’던 구호는 정치이념에 상관없이 공유되었고,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그런데 불과 1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실정은 어떠한가. 솔직히 말하면 너무도 여러 방면에서 점점 더 뒤처지고 있는 우리 모습을 보면 착잡하다. 1995년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돌파후 2만달러에 이르는 데 12년이 걸렸지만 그래도 IMF 외환위기의 험준한 고개를 넘었기에 스스로 위안할 수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어 다시 11년만인 올해에서야 3만달러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있긴 하다. 하지만 반도체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조선, 자동차 등 우리의 주력사업에서 모두 빨간신호등이 켜졌다. 상처뿐인 영광이다. 마차를 이끄는 말의 숫자가 줄어드니 3만달러라는 정거장에 다다랐다는 흥이 나지 않는다. 머지않아 이 마차가 멈추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만 엄습할 뿐.

셧다운제

마차를 더욱 빨리 달리게 하려면 말에게 신선한 여물을 주어 힘을 내게하는 게 한 방편이요, 무럭무럭 성장하는 혈기넘치는 새로운 말을 들이는 것이 또다른 방편일테다. 그런데 힘좋은 게임산업이라는 새 말을 들이고 싶어도 그렇게 못하게 막는 방해물이 있다. 첫째도 규제, 둘째도 규제, 셋째도 규제다.

불과 7, 8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게임은 사용자 경험, 그래픽, 스토리텔링 등 모든 면에서 중국산보다 압도적이었다. 중국 업체들은 우리 게임을 퍼블리시하고, 우리 프로그래머를 데려가고자 필사적으로 덤볐다. 그들은 세계 최초로 게임 프로리그를 출범시킨 우리의 역동성을, 수 만 명의 청년을 고용해낸 놀라운 일자리 창출력을 부러워 했다.

하지만 게임의 저변이 넓어질수록, 우리 정부와 국회는 메스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기업하기 좋은나라’를 표방하던 MB 정부하에서 2011년 시행된 ‘셧다운제’는 자정부터 아침 6시까지 청소년의 게임 접속을 원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 규제는 월 결제 금액을 성인 50만원, 청소년 7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웹상에서 구동되는 보드게임은 월 결제액과 1회 베팅 한도를 각각 30만원과 5만원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1일 손실 한도가 10만원을 넘으면 24시간 동안 게임 접속이 막힌다.

‘스타크래프트’로 프로게이머 시대를 열고 ‘리니지’로 아이템 기반 경제의 가능성을 보여준 한국 게임은 이제 더 이상 중국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게임의 양과 질 측면에서 이미 우리는 중국게임을 곁눈질하러 다니는 신세다.

전성기 시절 우리 게임에 반해 한국에 유학온 미국인과 중국인 대학원생 제자가 있다. 모두 게임산업에서 첫 직장을 잡고 싶어 하는데, 한국 시장은 거의 포기한 눈치다. 세계 게임 프로듀싱과 퍼블리싱의 빅샷은 이제 텐센트, 넷이즈(NetEase), YY같은 중국기업이기도 하거니와 한국의 게임산업은 오히려 고용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판교에 번듯한 사옥을 짓고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게임회사의 얘기는 이제 현실이 아니라 신화가 되어가고 있다.

4차산업혁명의 깃발을 들어올리며 새 정부가 출범한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이제 잔여 기간 중에 임기 막판 1년 여를 빼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채 3년이 되지 않는다. 게임은 일자리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할 준마(駿馬)다. 청소년 자녀를 둔 아빠로서 게임의 중독성에는 깊이 공감한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자제하는 모범을 보여주려고 시작한 스마트폰 게임을 내 스스로 줄이는게 여간 힘들지 않음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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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가 폭력을 막으려고 전국의 부엌칼 판매에 시간제한을 두지는 않듯이, 도구의 활용을 막기보다 깨어있는 이용자를 길러내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가정과 학교의 교육적 연계를 높이고, 스마트폰, 게임, 유튜브같은 신종 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하고 스스로 통제할 줄 아는 인재를 기르는 혁신적 교육과정으로 해결할 문제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온라인 보드게임이나 온라인 복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소위 사행산업은 그 접속 자체를 막는 것보다 이용자의 자율성 교육에 대한 투자를 통해 자정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누구나 무엇이든 접속할 수 있는 모바일 인터넷 시대에 우리 규제의 얼굴은 왜 이리 ‘아재’스러운가. 우리 내부적으로만 막는다고 정말 막아지는가. 이제 정말 ‘눈가리고 아웅’ 규제 대신 ‘스스로 조절하는 문화’를 가진 진짜 선진국으로 가 보자.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장현 IT컬럼니스트

성균관대에서 사회과학적 관점으로 인터넷커뮤니케이션, 데이터사이언스, IT 리더십 등을 연구하는 학자이다. 최근에는 ‘데이터사이언스 총서’라는 북시리즈를 발간하고 정치학, 사회학, 정보과학, 컴퓨터 공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를 넘나들며 융복합 인재를 양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소셜네트워크 분석과 시멘틱네트워크 분석에 있어 국내외에서 다양한 연구활동을 보여주고 있으며, 공공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도 관심이 많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미국 하와이대 등에서도 교수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