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디자인 특허소송, 누가 진흙탕 만드나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의미 있는 판결 나올까

데스크 칼럼입력 :2018/05/18 17:58    수정: 2021/06/01 14:4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일부 디자인 특허 침해 때 전체 이익 상당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건 부당하다.”

2016년 12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122년만에 열린 디자인 특허소송에서 의미 있는 판결을 내놨다. 양탄자 시대에 만들어진 미국 특허법 289조를 재해석한 판결이었다.

당시 소송 당사자는 삼성전자와 애플. 삼성전자는 하급심에서 ’둥근 모서리’를 비롯한 애플 디자인 특허 세 건을 침해한 혐의로 3억9천900만 달러 배상 판결을 받은 터였다.

하지만 삼성은 ‘일부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는데 전체 이익을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건 부당하다’면서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사실상 삼성의 손을 들어준 판결을 내놓으면서 사건을 하급심으로 파기 환송했다.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디자인 특허 배상금 산정을 위한 소송이 열리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 (사진=씨넷)

■ 겉보기엔 단순했던 소송, 두껑 열리자 온갖 억지주장 난무

삼성과 애플이 14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에서 다시 만났다. 6년 전 1심 공방을 이끌었던 바로 그 법원. 당시 재판을 이끌었던 루시 고 판사도 그대로 있다.

하지만 소송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다. 일단 삼성이 ‘둥근 모서리’를 비롯한 애플 특허 세 건을 침해했다는 건 다툼 대상이 아니다. 특허 침해 배상금을 어느 정도 지불하는 게 적절한 지 산정하는 게 이번 재판의 목적이다.

실제로 루시 고 판사는 이번 재판에 ‘Groundhog Day Rule’을 적용한다고 공언했다. 이번 재판에선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다. 또 삼성의 애플 특허 침해도 더이상 논의 대상이 아니다. 참고로 ‘그라운드 호그 데이’는 일상이 똑 같이 반복되는 걸 의미하는 말이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이번 재판은 굉장히 단순해 보인다. 삼성에 부과된 3억9천900만 달러 배상금을 상한선으로 봐야 할 것만 같다. 디자인 특허 배상의 기준이 되는 ‘제조물품’을 스마트폰 전체로 볼 경우 배상금을 100%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반면 스마트폰 가치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나올 경우 그 비중에 따라 배상금을 산정하면 될 것 같다.

삼성 측 존 퀸 변호사가 배심원들에게 어떤 삼성 폰이 애플 특허를 침해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진=씨넷)

하지만 진행되는 상황은 조금 다르다. 애플은 삼성이 자신들에게 지불해야 할 배상금이 10억 달러란 주장을 내놓고 있다. 자신들의 디자인 특허 3건을 침해한 스마트폰 수 백만 대를 팔아 33억 달러 매출에 10억 달러 수익을 냈다는 친절한 수치까지 제시했다.

반면 삼성은 3억9천900만 달러를 기준으로 “적정 배상금은 2천800만 달러 수준”이라고 맞서고 있다. 단순 계산하면 디자인 특허가 제품 전체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남짓한 수준이란 주장이다.

어느 쪽 주장이 법률적으로 타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기자가 법률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 애플, 디자인에 지나친 가치 부여하다 자기모순 빠지기도

하지만 개략적으로 판단해볼 순 있다. 일단 애플 주장이 성립되려면 두 가지 전제가 다 충족돼야 한다.

첫째. 삼성이 애플 특허를 침해해서 벌어들인 돈이 10억 달러다. (반면 삼성은 연구개발, 마케팅, 영업 비용 등을 제외하면 애플이 제시한 수치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 스마트폰에서 디자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00%다. 다시 말해 디자인이 미국 특허법 289조에서 제시한 배상금 산정이 기준이 되는 제조물품(article of manufacture)다.

애플의 첫 번째 계산 역시 회계전문가들 사이에선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더 문제는 두 번째 전제다.

매킨토시 아이콘을 만든 수잔 케어가 애플 측 증인으로 출석해 디자인 특허가 미치는 범위에 대해 증언했다. (사진=씨넷)

저 전제가 성립할 경우 애플이 그동안 혁신의 산물이라면서 마케팅했던 수많은 기능들을 어떻게 봐야 할 지 모호해진다. 지문인식, 듀얼 카메라, 동채인식 등 그 동안 강조해왔던 수 많은 혁신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삼성 쪽 주장 역시 따져볼 여지가 적지 않다. 과연 초기 스마트폰에서 디자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제품 전체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칠 지는 여전히 의문이긴 하다. 하지만 최소한 그 주장은 비중을 따져보면서 논쟁을 벌일 가치는 있어 보인다.

그런데 ‘10억 달러 배상설’을 내세운 애플 주장은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게다가 디자인 특허에 대해 과도하게 배상해선 안 된다는 연방대법원 판결 취지와도 맞지 않다.

■ 외신 "두 어린아이가 상대방 향해 소리치는 모양새" 꼬집어

두 회사의 지겨운 공방은 이번 주 다섯 차례 공판을 한 뒤 배심원들이 적정 배상금액을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 복잡한 작업을 일반인들이 어떻게 해낼 수 있을 지, 그리고 그들이 산정한 배상금을 선뜻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인콰이어러는 두 회사 소송 소식을 전해주면서 “두 어린아이가 서로 상대방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모양새다”고 꼬집었다. 서로 “이번 경기는 쟤네한테 유리하게 돼 있어요”라면서 떼를 쓰고 있는 것 같다는 비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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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기자 입장에선 이번 소송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양탄자 시대에 확립된 디자인 특허 관련법을 첨단 IT 시대에 걸맞게 다듬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신들을 통해 들려오는 소식은 이런 기대를 갖기 힘들게 만든다. 특히 ‘디자인 특허 강자’인 애플은 생떼에 가까운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 같아 다소 아쉽다. 이런 내 판단이 과연 ‘국수주의적 판단’에서 나온 것일까?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