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팝체인 상장보류'가 남긴 두 가지 시사점

엄격한 심사 필요…자정능력 확인은 큰 수확

기자수첩입력 :2018/05/18 16:45    수정: 2018/05/18 16:46

암호화폐 거래소가 자격미달 논란에 휩싸인 코인의 신규 상장을 보류하는 일이 발생했다. 빗썸과 팝체인 얘기다. 지금까지 거래소가 상장한 코인을 여러가지 이유로 거래 중지(상장폐지)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암호화폐 커뮤니티 반발로 계획했던 코인 상장을 보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빗썸의 팝체인 상장 보류 사건이 어떻게 결론날지 아직은 명쾌하지 않다. 커뮤니티 주장처럼 "스캠(사기 암호화폐 발행)에 가까운 코인을 빗썸이 무리하게 상장하려고 했던 것"인지, 빗썸과 팝체인 측 주장처럼 "검증되지 않은 허위사실이 유포돼 생긴 오해"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양측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어떤 결론이 나든 이번 사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에 주는 의미가 적지 않아 보인다.

빗썸 암호화폐 검토보고서

백서 요약한 듯한 검토보고서...검증을 하긴 한 건가 의문만 키운다

먼저 암호화폐 거래소의 코인 상장 심사과정과 그 결과물인 상장검토 보고서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숙제가 던져졌다.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안에 따라 주요 거래소들은 내부 상장심사 기관을 두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심사한 뒤, 보고서로 만들어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공개된 보고서를 보면 백서를 요약한 수준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상장심사는 스캠을 걸러내고 투자 가치가 있는 코인 거래를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절차다. 투자 참고자료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게 첫 번째 목적은 아니다. 그렇다면 좀 더 날카로운 시각으로 프로젝트를 보고 검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커뮤니티는 팝체인이 빗썸 상장 직전, 전체 토큰 중 90%가 2개 지갑 계정에 담겨있고, 소스코드에 비트코인, 모네로, 대시 코드를 다수 차용한 것을 발견했다. 또 팝체인 핵심 개발자 일부가 빗썸이 싱가포르 자회사 비버스터를 통해 만들고 있는 빗썸코인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팝체인이 부실한 프로젝트인데, 빗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어 쉽게 상장 심사를 통과한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빗썸 상장심사 위원회는 팝체인을 검토하면서 왜 이런 의문이 들지 않았을까. 만약 심사과정에서 이런 의문을 제기하고 팝체인에 소명을 요구했다면 빗썸 측 표현대로 '불필요한 논쟁'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거래소 상장 기준을 두고 말들이 많다. "심사 담당자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연줄 없이는 힘들다"는 얘기부터 "거래소가 상장 심사나 등록에 몇억 씩 요구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심사 접수부터 과정이 투정하게 공개되고, 심사 기준도 구체적인 항목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비즈니스 영속성, 기술적 기반과 확장성, 시장성"을 본다고 하고 백서를 요약한 것 같은 검토보고서를 내면 시장 불신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ICO 백서와 실제로 나온 제품이 크게 다를 수 있다는 점을 환기 시키는 그림(출처=커뮤니티)

암호화폐 커뮤니티의 재발견..."자정능력 갖췄다"

블록체인 커뮤니티가 가진 산업 자정능력을 발견했다는 점은 이번 사건이 가져온 긍정적인 산물이다. 업계가 바른 방향으로 성장하는 데 커뮤니티가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블록체인 산업은 기본적으로 투명성이라는 가치 위에 성장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오픈소스로 진행하기 때문에 소스코드가 공개돼 있다. 또 블록체인에 기록된 내용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이더리움 같은 경우 이더스캔이라는 사이트를 이용하면 어떤 지갑 계정에 무슨 토큰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드러난다. 트랜잭션이 얼마나 일어나는지도 알 수 있다.

정보가 공개돼 있어도 기술과 산업을 이해하는 사회의 성숙도가 낮으면 정보 그 자체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한국 암호화폐 커뮤니티는 기술과 산업에 상당한 수준의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으로 입증됐다. 업계가 바른 방향으로 성장하는 데 커뮤니티가 더 많은 역할 것이라 기대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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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ICO 프로젝트가 실상 꼼꼼히 따져보면 실현 가능한지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다. 블록체인과 ICO가 IT업계 핫키워드로 떠오르면서 굳이 블록체인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곳도 ICO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번 사건으로 암호화폐 커뮤니티가 생각보다 자정능력을 갖췄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아마 더 많은 프로젝트들이 보다 프로젝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