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나 떨고 있니?

[박승정 칼럼] 텔레그램 ICO가 주는 교훈

데스크 칼럼입력 :2018/03/23 10:38    수정: 2018/06/25 22:52

예사롭지 않다. 텔레그램을 둘러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장의 움직임을 두고 하는 말이다. 블록체인의 사상과 철학을 바탕으로 암호화폐에 대한 정체성과 가치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인 가운데 텔레그램의 코인공개(ICO)가 역대 최고의 성과를 거둔 참이다.

텔레그램은 지난 달 사전판매만으로 8억5000만달러의 자금을 모았다. 테조스의 2억3000만달러를 가볍게 넘어섰다. 현재 진행 중인 일반 판매 8억5000만달러 규모와 필요할 경우 6월께 발행하겠다는 8억5000만 달러 규모를 합친다면 무려 25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 수치상으로는 대박인 셈이다.

텔레그램발(發) ICO의 성공은 현재보다 미래 가치에 대한 반응으로 읽힌다. 텔레그램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분산경제 시대에 더 발전 가능성이 높다는 내외의 평가일 것이다. 물론 작금의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 열기도 한 몫을 했다. 기존 SNS 시장의 강자들이 속속 ICO 대열에 참여하는 배경이다.

이미 와츠앱, 위챗, 페이스북, 구글 등 글로벌시장의 공룡과 아시아시장의 강자인 라인, 국내 시장의 맹주 카카오에 이르기까지 속속 ICO 대열에 참여할 예정이거나 참여 방침을 시사했다.

■ 텔레그램, 암호화 SNS 브랜드 앞세워 사이버 영토 폭풍 질주

왜 그럴까. 텔레그램은 속도와 보안을 최우선으로 하는 비영리 암호화 메신저다. 오픈성과 종단간 암호화 기술(E2EE)이 최대 무기다. 모든 개발자가 자유롭게 애플리케이션을 수정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프로토콜과 API, 소스코드를 공개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종단간 암호화 기술은 모든 주고 받는 내용이 서버에 저장되지 않아 외부 해킹뿐만 아니라 텔레그램 회사에서도 내용을 알 수 없다.

무엇보다 태생부터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난 획기적인 보안 설계 기술 기반이라는 점을 내세워 글로벌 시장과 한국에서 영토를 무섭게 확장해 나가는 중이다.

그런데 텔레그램은 한발 더 나아가 블록체인의 사상과 철학을 반영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자 한다. ICO의 일차적 성공으로 실탄도 넉넉하다. 겉으로 드러난 계획만 봐도 의욕적이다. 작금의 기능을 새롭게 보완한 분산 파일저장 서비스, 탈중앙화된 VPN 서비스, 블록체인 기반 보안 웹브라우징 환경 개발, 블록체인 기반 앱 개발, 더 정교한 스마트 컨트랙트 서비스, 보다 완벽한 P2P서비스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2억명 이상의 사용자 기반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결제 및 송금 시스템을 탑재할 계획이다. 연내 블록체인 지갑 서비스 제공에도 나선다. 특히 TON(Telegram Open Network) 플랫폼 기반의 지불 시스템을 개발해 비자나 마스터카드와 맞먹는 규모와 속도로 거래할 수 있는 멀티블록체인 구조의 완성이 목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각종 암호화폐들. (사진=지디넷)

결국 텔레그램이 패러다임 전환기의 흐름에 올라탄 것으로 해석된다. 태생부터 블록체인 사상 기반인 텔레그램은 분산경제 시대의 대표 암호화 SNS 앱을 표방한다. 여기에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장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블록체인으로 묶어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글로벌 공룡들이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 시대를 앞서가는 퍼스트무버(First Mover)로서의 텔레그램의 행보는 이미 판을 흔들 정도로 충분히 파괴적이라는 게 내외의 평가다.

주목할 만한 것 중의 하나는 텔레그램 ICO의 성공이 가까운 장래에 ICO가 벤처캐피털의 주류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 한 해 동안 기업들은 ICO를 통해 약 37억 달러를 모았다. 아직 세계 전체 벤처캐피털의 투자금 1550억 달러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미국 뉴욕 증시 IPO 규모의 10분의 1 수준으로 급증했다. 텔레그램의 대규모 ICO가 성공적인 서비스로 이어진다면 암호화폐 생태계의 중대 변곡점이 될 것이다.

텔레그램이라고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주자들이 명멸해 간 것이 이를 증명한다. MSN메신저를 비롯해 지니, 버디버디, 네이트온, 터치, 마이피플, 틱톡 등 20여년에 걸친 SNS 역사에서 사라져간 브랜드가 하나 둘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용자들의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보안의 강점이 다른 약점을 커버하고 있기는 하다. 지금은 프라이버시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시대다. 기능적 한계는 그 다음이다. 기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더 적확하게 표현하면 메신저의 기능이 진화와 함께 보안의 중요성이 맞아떨어졌다. 최근에는 5000만명에 달하는 개인정보 유출 파문으로 세계 최대 SNS 업체 페이스북이 벼랑으로 내몰리는 참이다.

국내는 어떤가. 보안이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이제는 SNS의 주도권이 보안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이버 망명’ 사태가 이를 방증한다. 국가 권력이 보안서버를 통째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1차 대탈출 행렬이 이어졌던 게 근래의 일이다. 2014년 9월, 국가기관이 사이버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를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인터넷 및 SNS서버를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한 게 결정적이다.

오죽하면 ‘사이버 난민’이란 용어가 생겼겠는가. 프라이버시는 그만큼 민감한 문제다. 사상, 출판, 언론의 자유는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그런데도 ‘테러방지법’은 2016년 3월 국회 문턱을 통과했다. 이른바 2차 대탈출의 명분이다. 사이버 망명 사태가 재발했음은 물론이다. 카카오에 대한 충격과 불안감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 사상 최대 ICO 성공, 이제는 블록체인 플랫폼 진화 '야심'

이번에는 ICO다. 아직 텔레그램 ICO의 프리세일 파장을 가늠하기에는 조심스럽다. 보안 문제는 아니지만 3차 대탈출에 준하는 ‘자발적’ 이동 가능성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국내 SNS의 신뢰 기반에 의문부호가 따라붙는 상황에서 리워드 방식을 동반한 새로운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재밌는 현상은 독일 텔레그램의 경우 보안 문제가 부각되면 될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당국의 검열에도 굴하지 않고 맞섰던 파벨·니콜라이 두로프 형제의 개발자 이름값이 보증수표다. 프라이버시를 최우선으로 하는 글로벌 SNS의 위상과 대중의 관심이 ICO의 성공을 계기로 더욱 탄력을 받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에도 여파가 만만치 않다. 메신저로만 보더라도 ICO의 성공은 가입자 확산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안과 속도에 강점이 있는 데다 다양한 리워드 제도가 더해지면 기능 이상의 비교 우위다. 게다가 블록체인 기반의 차세대 서비스는 덤이다. 가입자 기반은 더욱 탄력을 받는다.

간단한 게 아니다. 글로벌시장의 강자인 구글과 국내 시장의 강자 카카오, 아시아시장의 유력주자 네이버에 이르기까지 주요 주자들이 텔레그램의 ICO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득권적 전통의 강자인 카카오, 네이버가 ICO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고육지책에 다름 아니다. SNS를 기반으로 한 시장의 생태계를 놓고 벌이는 각축전은 이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사진=텔레그램)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SNS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들이 메신저의 쇠락과 함께 한꺼번에 자취를 감추었다는 점이다. 페르미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시대의 변화를 멀찌감치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오히려 시대를 적극적으로 앞서가는 파괴적 혁신과 역발상이 필요한 시대다.

SNS 시장만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전화, MP3, 게임기, 네비게이션, 무료신문, 필름 카메라 등과 알타비스타, 야후, 엠파스, 노텔, 컴팩 등 얼마나 많은 제품과 서비스, 기업들이 명멸해 갔는가. 뉴스 메이커라고 예외는 아니다. 최근에는 뉴욕의 130년 전통의 인쇄 매체가 주인을 찾지 못해 문을 닫았다.

블록체인 시대의 카카오가 주목받는 이유다. 국내에서 텔레그램의 성장은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을 간과한 국내 플랫폼 사업자들의 잘못이 크다.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지 않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를 건드린 텔레그램은 ICO 발행을 통해 고객들의 보상심리를 한껏 자극하고 있다. 텔레그램의 파괴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배경이다.

세계는 지금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에 직면했다.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 제2의 인터넷 혁명이라 칭하는 블록체인 경제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술 경쟁도 본격화하는 중이다. 분산경제의 거대한 회오리가 태풍을 몰고올 조짐이다.

정부 역시 대변혁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제2의 인터넷 혁명이 도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법·제도는 물론 정책적 지향점을 재점검해봐야 한다. 블록체인 시대의 전환기적 변화를 투기적인 요소에만 묶어두고 외면해서는 안 된다. 암호화폐에 대한 열풍을 블록체인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로 돌려놓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고 했던가. 세계는 이미 블록체인 경제의 주도권 경쟁에 돌입했다. 우리만 이 거대한 쓰나미를 막아보겠다고 무모하게 쇄국정책을 쓸 것인지, 아니면 블록체인 시대의 신(新)조류를 수용하고 기회의 창으로 삼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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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미지의 신세계인 블록체인은 도전적으로 치고나갈 필요가 있다. 텔레그램의 ICO가 국민 메신저 카카오에 주는 메시지다.

[편집인/과학기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