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풀 앱 토론회…'끝장공방' 자세로 제대로 해라

[기자수첩]서울시·정부, 기술변화-후생 잘 조화시켜야

기자수첩입력 :2017/11/16 13:26

출퇴근 시간은 언제로 봐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출퇴근하는 시간으로 한정해야 할까? 아니면 개인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지난 열흘 동안 계속된 카풀 앱 '풀러스 논쟁'의 쟁점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풀러스가 새롭게 도입한 출퇴근 시간 선택제가 운송사업법에 저촉되느냐가 핵심 쟁점이다.

언뜻 보기에도 단순한 영역 다툼을 넘어선 공방이다. 전통(혹은 관행)과 혁신이 맞부닥치는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6일 풀러스가 등장한 이후 서울시를 비롯한 행정기관의 초기 반응은 '관행 중시'였다. 모든 시간대에 카풀 앱을 이용할 수 있다면 사실상 택시나 다름 없다는 논리를 폈다. 제한된 시간에만 카풀을 허용해준 법 취지에 어긋난다면서 '고소'하겠다는 강수를 뒀다. 국토교통부도 서울시 편에 섰다.

여기까지만 놓고보면 그 동안의 수많은 '보혁 논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전개된 과정은 종전과 조금 달랐다. 새로운 기술과 관행이 부닥칠 때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전통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단 기대감을 갖게 됐다.

그 실마리는 IT업계에서 제공했다. 서울시와 국토부의 조치에 대해 IT 업계가 '네거티브 규제' 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금지된 사항 외 모든 것을 허용하는 방식만이 4차 산업혁명 같은 새로운 시대를 담아낼 수 있다는 논리였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이 내 일처럼 나서줬다. 여기에 이례적으로 대한변호사협회도 힘을 보탰다. 대한변협은 서울시가 카풀 출퇴근 시간 선택제를 위법으로 본 것은 현행법을 비합리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법을 최일선에서 다루는 변협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기존 법률의 틀을 지키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협이 '기존 법률에 대한 유연한 해석'을 강조한 것은 이례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변협이 카풀앱 같은 기술 혁신 사례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낸 자세한 내막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긴밀한 대화를 주고 받은 점도 중요한 계기가 됐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논쟁이 진행되는 와중에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이 내달 열릴 규제개선 토론회 첫 의제로 시간선택제 카풀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 토론회는 상생 첫 발에 불과…전향적 결론 기대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기존 입장을 고집하지 않은 부분은 일단 평가해줄 만하다. IT업계를 중심으로 도식적인 법 적용에 대한 지적이 계속되자 서울시는 토론회를 통해 해결책을 찾겠다고 밝혔다.

당사자인 풀러스 뿐 아니라 시민과 전문가, ICT 업계, 택시업계 등이 한 자리에 모여 토론회를 하도록 주선하겠다는 것이다.

조금 늦긴 했지만 서울시의 이 같은 입장 전환엔 박수를 보낸다.

서울시 같은 행정기관이 새로운 서비스에 대해 금지 명령을 내릴 순 있다. 기존 법률을 엄정하게 적용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급한 결정 때문에 혁신의 싹을 자르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서울시가 풀러스 등장 이후 곧바로 고소 입장을 밝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표한 건 그 부분 때문이었다.

강정수 메디아티대표는 지난 8일 열린 카풀 규제 관련 포럼에서 "외국에선 2박3일 일정으로 컨퍼런스를 개최하기도 하고, 하다 못해 정부기관 교통과에서 간담회를 열기도 한다"며 "살인이나 교통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속도전으로 해결해야 하는 급한 문제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인의 경우 알리페이 앱, 홍콩 국적 사용자의 경우 '알리페이HK' 앱을 통해 스캔만 하면 홍콩 택시 탑승이 가능하다. (사진=알리바바)

서울시는 몇년 전 우버 때 강경한 자세로 규제 칼날을 들이대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이번 카풀 앱 사태 때도 초기 대응은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대화와 토론을 통한 결론 도출을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뒤늦게지만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토론회를 갖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토론회는 '상생을 향한 첫 발'에 불과하다. 토론회를 여는 것으로 서울시가 제 역할을 다했다고 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토론회에서 운수사업자와 카풀 앱 사업자들은 팽팽하게 대립할 것이 뻔하다. 서로의 생업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시는 토론회를 통해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고 시민들의 후생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토론을 위한 토론'에 머물 가능성이 많다.

혹여라도 토론회 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할 일 다했다고 두 손 놓고 있어선 절대로 안된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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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입장 변화로 '출퇴근 시간 선택제'를 골자로 한 카풀 앱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모쪼록 토론회가 전통과 혁신의 행복한 결합을 이끌어내는 멋진 공론의 장이 되길 기대해본다.

카풀 앱 출퇴근 시간 선택제 갈등은 문재인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정책의 기준점이 될 것이라 보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 기대감에 부응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담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