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페북 금지, 언론자유 침해일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미국 연방대법원의 흥미로운 판결

데스크 칼럼입력 :2017/06/20 16:19    수정: 2017/06/20 16:2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민주주의의 기본은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가 성립하기 위해선 자유롭게 듣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수 많은 민주주의 이론가들이 ‘공론장’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 때문이다.

미국 수정헌법 1조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도 만들지 못한다’고 규정하는 것도 같은 차원이다. 그래서 미국에선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질 땐 늘 수정헌법 1조가 거론된다.

그런데 미국 연방대법원이 19일(현지시간) 흥미로운 판결을 하나 내놨다. 성범죄자들에게 소셜 미디어 사용을 금지한 노스캐롤라이나 주법이 언론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전문가들은 공론장의 범위를 인터넷 공간으로 확대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사진=미국 연방대법원)

■ "소셜 미디어는 현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발언 공간"

‘패킹햄 vs 노스캐롤라이나’로 명명된 이번 사건 원고인 레스터 패킹햄은 21세 때인 2002년 13세 소녀와 성관계를 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6년 뒤인 2008년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성범죄자들이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했다. 미성년자도 사용하는 공간인 만큼 성 범죄자들이 자유롭게 접속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법 제정 취지였다.

그런데 성범죄자인 패킹햄이 2010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서 법정 공방의 빌미가 됐다. 패킹햄의 법 위반 사실을 발견한 (노스캐롤라이나 주) 더램 경찰당국은 곧바로 그를 성범죄자의 소셜미디어 사용 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자 패킹햄은 노스캐롤라이나주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를 침해했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 대법원에서 패소한 패킹햄은 곧바로 이 사건을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다. 그 재판 판결이 이날 나온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이번 사건이 ‘수정헌법 1조와 현대 인터넷의 관계’에 대해 처음으로 다룬 사건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의미 있는 사건이란 얘기였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 (사진=미국 대법원)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대표 집필한 대법원 의견서는 빠른 속도로 기술이 진보하고 있는 시대에 법 집행이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일단 대법원은 “인터넷의 힘과 방향은 워낙 새롭게 변화 무쌍하기 때문에 오늘 이야기한 것이 내일엔 시대에 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수정헌법 1조와 인터넷의 관계를 다룬 첫 사건인 만큼 “(수정헌법 1조가) 보호하는 범위가 좁다는 의견을 제시할 땐 극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토대 위에서 수정헌법 1조가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수정헌법 1조의 기본 원칙은 모든 사람들이 말하고 들을 수 있으며, 곰곰 생각한 뒤 또 다시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장소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 마디로 자유로운 공론의 장에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준 것이 수정헌법 1조의 기본 원칙이란 의미다.

■ "불법적 발언 막기위해 합법적 발언 억눌러선 안돼"

이런 전제 위에서 소셜 미디어의 성격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연방대법원은 상당히 흥미로운 논리를 펼친다.

과거엔 견해를 주고 받을 가장 중요한 장소가 어디냐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 해답이 아주 명확하다. 물론 그 곳은 바로 인터넷(사이버) 공간이다. 대법원은 “인터넷, 특히 소셜미디어는 가장 거대한 민주주의 포럼”이라고 규정했다.

왜 그럴까? 소셜 미디어는 “온갖 소통을 거의 무제한적이면서도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은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해주는 “인간의 생각만큼이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단 얘기다.

그런데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선 성범죄자들에게 소셜 미디어를 아예 이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물론 주 법의 입법 취지는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성범죄의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미성년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이 부분에서 제아무리 그런 상황이더라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수정헌법 1조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사진=미국 대법원)

연방대법원은 ‘법은 중요한 정부의 관심사에 맞춰서 좁게” 규정되어야만 한다고 판결했다. 노스캐롤라이나 법처럼 아예 소셜 미디어 전체를 못 쓰게 하는 건 지나치게 포괄적인 권리 침해란 의미다.

이 대목에서 원고인 패킹햄이 페이스북에서 미성년자와 접촉한 정황이 없었던 점이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됐다. 노스캐롤라이나 주가 패킹햄이 페이스북에서 또 다시 미성년자와 소통하려는 시도를 한 정황을 입증하지 못한 만큼 그에게 전면적인 접속 금지 명령을 내리는 건 과하다는 게 연방대법원의 판단이다.

연방대법원은 “이용자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정보를 얻고, 또 머리에 떠오른 생각들을 주고 받는다”면서 “그런데 노스캐롤라이나 주처럼 성 범죄자들에게 (소셜 미디어) 접속 자체를 전면 금지할 경우엔 현대적 공론장에서 시사 문제에 대한 지식을 얻고, 말하고 들을 수 있는 활동을 포괄적으로 막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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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소셜미디어 접속을 완전 금지하는 것은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한 정당한 권리 행사를 막는 것이다”고 판결했다.

연방대법원은 “정부는 불법적인 발언을 억제하기 위해 합법적인 발언을 억눌러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 법이 바로 그런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연방대법원이 판결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