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인공지능 그리고 ‘Korea Inside’

[임백준 칼럼] 한국은 진정, 부를 창출하고 있는가

전문가 칼럼입력 :2017/03/27 15:31    수정: 2017/03/27 17:45

임백준 baekjun.lim@gmail.com

뉴욕에서 열린 MLconf 2017에 다녀왔다. 해마다 열리는 머신러닝 관련 컨퍼런스다. 2년 전인 2015년에 이어 두 번째로 참가했는데 행사에 참여한 데이터 과학자들의 열기가 사막에 작렬하는 태양의 열기처럼 뜨거웠다. 멀리 해외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참가자가 많았고, 다른 개발자 행사에 비해 여성의 비율도 높았다. 특히 중국계 참가자의 비율이 매우 높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바이두에서 딥러닝 플랫폼을 개발하는 엔지니어, 홍콩의 금융회사에서 딥 강화학습(deep reinforcement learning)을 연구하는 연구원, 바이두에서 오픈소스로 공개한 딥러닝 플랫폼 패들패들(PaddlePaddle)을 소개한 데이터과학자 등 기억에 남는 중국계 발표자만 3명이었다. 인공지능 연구에 관한 한 중국은 이미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현재의 발전 양상을 고려했을 때 조만간 독보적인 선두로 나설 가능성도 엿보인다. 국가와 민간이 합심해서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강연 사이 쉬는 시간동안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뒤적거리다 본 두 개의 우리나라 '뉴스'가 기억난다. 어려운 사정을 겪던 청년이 창업을 해서 10억인가 20억을 벌었다는 뉴스가 하나였고, 어떤 청년이 스테이크 집을 열어서 억대의 수입을 올리게 되었다는 뉴스가 다른 하나였다. 이럴 때 미국에서는 "good for you"라고 말한다. 우리말로 "좋겠네"다. 해당 개인에게는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런데 뭐 어쩌라는 것인가. 그런 이야기를 뉴스로 만들어서 전달하는 사람은 뉴스를 보는 사람이 어떤 느낌을 받길 바라는 것일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것일까.

내가 오래전에 번역한 책 ‘해커와 화가’에서 폴 그레이엄은 돈(money)과 부(wealth)가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런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사람들이 현실에서 좇는 것은 대부분 부가 아니라 돈이다. 2008년에 전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을 때 사람들은 월가의 은행을 맹렬히 비난했다. 젊은 행동가들은 월스트리트에 돗자리를 펴고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드러눕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월가의 은행은 부를 창출하지 않으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부의 창출없이 돈만 벌어들이는 존재를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간단히 말하자. 스테이크집을 열어서 돈을 번 사람을 뉴스로 취급하는 것은 저널리즘이 아니라 호들갑이다. 그런 호들갑의 심리적인 배경은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을 보도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사람들의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고, 이성을 마비시키고, 그리하여 냉정한 현실이 아니라 백일몽을 좇도록 만들고 싶은 것이다. 저널리즘은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 부를 창출하는 사람을 보도해야 한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역량이 얄팍하게 돈을 버는 방법이 아니라 부를 창출하는 방법에 모아질 때 공동체의 참된 생존과 번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중국이 선도하는 인공지능-머신러닝 흐름에 올라타야

그럼 부라는 것은 무엇일까. 중상주의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 부는 금과 은이었다.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부란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는 소비재라고 정의했다. 그렇지만 이런 경제학적인 개념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경제학에서 말하는 자본이나 고전경제학에서 말하는 토지 같은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도 아니다. 폴 그레이엄은 부를 이렇게 쉽게 설명했다.

"부란 근본적인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 음식, 옷, 집, 자동차, 도구, 재미있는 곳으로의 여행 등등. 설령 돈이 없어도 부는 가질 수 있다. 만약 자동차를 만들어 주거나 음식을 요리해 주는, 혹은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만들어 주는 마술 상자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돈은 필요하지 않다. 당신이 아무 것도 구입할 수 없는 남극 대륙에 있다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부다."

나는 부와 돈을 구별하는 개인적인 방법을 가지고 있다. 객관적이거나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이고 비과학적인 방법이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기 바란다.

누군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하자. 사람들이 그의 성공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면 그는 부의 창출없이 돈만 번 것이다. 사람들이 그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존경을 보내면 그는 부를 창출한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 말이 이해될 것이다. 당신의 친구가 우연히 이사간 집의 가격이 크게 올라서 많은 돈을 벌었다. 당신은 그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친구에게 존경을 보낼 수 있는가? 아니다. 부러워서 배가 아플 것이다. 또 다른 친구는 주식투자를 해서 대박을 냈다. 당신은 그 친구를 끌어안으며 기뻐하겠는가? 아니, 배가 아플 뿐이며 기쁜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친구가 로또 1등에 당첨되었다. 마찬가지다.

친구가 치킨집을 열었는데 장사가 너무 잘되어 돈을 많이 벌었다. 이건 조금 생각할 부분이 있다. 이 경우는 돈만 번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의 성실함과 아이디어가 손님을 남다르게 만족시킨 부분이 있었을 것이며 그것을 부의 창출이라고 보아도 좋다. 친구가 이런 식으로 성공하면 당신도 기쁜 마음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같은 부라고 해도 성격과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치킨집이 만들어내는 부는 깊이가 개울물처럼 얕아서 바람이 불면 바닥이 보인다. 개인의 미래를 치킨집에 걸 수는 있지만, 공동체의 미래를 치킨집에 걸 수는 없다.

MLconf 컨퍼런스에서 무서운 기세로 약진하는 중국의 과학자/엔지니어를 하루 종일 지켜보면서 우리는 어디쯤에 서있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중국인들은 현재 진정한 부를 창출하는 사람들 특유의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다. 열기만 놓고 보면 이미 우리가 경쟁할 수 있는 상대를 넘어섰다.

그들은 컨퍼런스에 와서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실제로 벌여놓은 사업도 엄청나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미 세계 최대의 소비 시장이자 데이터 생산지인 중국을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파악하고 있다. 중국이 우리와 인접한 나라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건 우리에게도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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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디아만디스의 ‘볼드’를 읽고 그의 지나친 기술낙관주의가 불편하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렇긴 해도 앞으로의 부의 창출이 인공지능에 달려있다는 주장은 반박할 수 없다. 우리는 이 거대한 흐름, 중국이 선도하고 있는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이라는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 이면에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를 흉내낸 ‘이스라엘 인사이드(Israel Inside)’로 대변되는 이스라엘의 기술력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중국의 인공지능 산업에 대해서 우리는 ‘코리아 인사이드(Korea Inside)’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진정한 부의 창출은 거기에 달려있다.

그래서 지금은 어쩌다 돈을 번 사람의 성공담을 놓고 우리끼리 호들갑을 떨 계제가 아니다. 그건 그 사람 개인의 수준에서 축하할 일이며 공동체의 미래와는 상관이 없다. 사리사욕에 눈이 먼 정치인,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급급한 기업인, 정부지원금이라는 이름의 눈먼 돈을 좇는 벤처회사, 관료주의에 사로잡힌 대학교수, 사법고시나 공무원시험에 목숨을 거는 젊은 두뇌들. 호들갑 떠는 언론까지.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이 흐름을 역전시켜야 한다.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머신러닝을 수행하고, 로봇이 로봇을 제작하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 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폭탄이 우리 머리 위를 폭격하기 전에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부를 창출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경제발전이 문제가 아니다. 이건 생존문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