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 먹어라 스타트업 세상아

전문가 칼럼입력 :2016/10/18 09:41    수정: 2016/10/20 10:29

임백준 baekjun.lim@gmail.com

재미난 글을 읽었다. 쉠(Shem)이라는 사람이 쓴 '퍽 유 스타트업 월드'(Fuck You Startup World)를 읽고, 그것을 우리말로 번역해 놓은 글(https://brunch.co.kr/@five0203/19)도 읽었다. 글의 형식은 거칠지만 진실이 담겼다. 가면을 쓰고 각자의 역할 놀이에 몰두하는 무도회에서 쉠은 모두에게 가면을 벗고 정신을 차리라고 일갈한다.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지만, 이런 비판적 사고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쉠은 말한다. "우와, 스냅챗에서 새로 나온 기능 봤어? 우와, 인스타그램이 스냅챗을 따라하는 것 봤어? 우와, 주커버그의 타운홀 미팅 생방송 봤어? 우와, 엘론 머스크가 트윗한 거 봤어? 우와, 우버가 투자를 또 받았다는데 들었어? 제발 닥치란 말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그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서 유포되는 시끌벅적한 신화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신화는 대개 캘리포니아나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의 개발자, IT 전문가, 경영인들에게 퍼져나간다. 1주일에 100시간을 일한다는 앨론 머스크, 130시간 일한다는 마리사 마이어 등의 신화. 스타트업 회사에서 술이나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직원들의 생산성을 향상 시킨다는 신화. 회사에 스탠딩 책상이나 러닝머신 등 복지 시설을 갖춤으로써 생산성을 올린다는 신화.

쉠은 1주일에 40시간 일하고, 점심시간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특별한 복지 시설 없이 평범한 책상에 앉아서 일해도 할 일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주일에 책을 1권씩 읽어야 한다는 신화. (쉠은 그딴 소리를 할 시간에 실제로 책을 읽으라고 말한다.) 용감한 젊은이라면 당연히 창업을 해야 한다는 신화. 성공을 원한다면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신화. 말장난 같은 애자일 프로세스의 신화. 터무니없는 연봉과 보너스, 무제한 휴가를 제공한다는 신화. 이 모든 신화에 대해서 쉠은 엿을 먹으라고 말한다. 신화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 개발자, 프로그래머, 코드, 개발

이 글을 읽기 전에 피터 디아만디스와 스티븐 코틀러가 쓴 '볼드'를 읽었다. 그들은 새로운 풍요의 시대가 온다고 주장하며 어떻게 커다란 꿈을 꿀 것인가, 어떻게 부를 창출하고 세상을 바꿀 것인가(How to go big, create wealth and impact the world)를 이야기한다. 미래를 읽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가 많고 저자가 글 쓰는 방법을 알아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그들의 지나친 낙관과 기술지상주의가 불편했다.

디아만디스와 코틀러가 이야기하는 풍요의 주체는 일반 대중이 아니라 자본이다. 책의 논지는 대중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부를 창출하는 방법, 즉 자본의 생산성에 초점을 맞춘다.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유포하기 위해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해 눈을 감는다. 디아만다스와 코틀러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이런 태도는 이데올로기다. 미디어 연구가인 리처드 바브룩과 앤디 카메론은 이미 1990년대에 정확히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향해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브룩과 카메론에 의하면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얼굴이다. 기술지상주의의 낙관 속에서 정치적 좌파와 우파를 하나의 그릇에 녹여내는 멜팅팟이다. 기술이 모두를 해방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전파하는 동안 세상에 존재하는 사회정치적 모순을 철저히 외면하는 철학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는가?

개발자들의 야근 문제를 예로 생각해보자. 나는 개발자에게 야근은 미친 짓이라고 주장한 바 있고, 내가 확인한 범위 내에서 많은 개발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렇다면 개발자의 야근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CEO의 결심? 아니다. 한국 개발자에게 야근의 문제는 SI 업계의 현실, 다단계 하청의 악순환, 소프트웨어에 대한 정상적인 인식의 빈곤에서 비롯된다. 이건 정치 문제다. 한 회사의 기업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페이스북, 스냅챗, 우버, 구글 등의 사례를 인용하며 한국의 젊은이에게 창업을 권하는 것, 지원금을 (찔끔!) 대줄 테니 젊은이 답게 창업을 해보라고 권하는 것은 젊은이에 대한 기성세대의 폭력이다. 실패했을 때 돌아갈 수 있는 곳, 사회적인 안전망이 튼튼하게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창업을 하라고 권하는 것은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밧줄에 매달려 번지점프를 하라고 등을 떠 미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폭력이다.

청년창업의 전제조건인 사회적 안전망은, 그것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철저하게 정치 문제다. IT 업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쉠이 엿을 먹으라며 손감자를 먹이는 대상은 일종의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다. 무심코 일어나는 왜곡은 없으며, 모든 왜곡이 의도적이라는 점에서 현실왜곡은 지극히 정치적이다. 그건 일종의 TV 드라마다. 젊은 시절을 그리워 하는 노인들이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젊고 예쁜 사랑을 보며 심리적 위안을 얻는 것처럼, 성공적인 스타트업을 경험할 수 없는 99%의 개발자들은 캘리포니아에서 전해지는 1%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리만족을 얻는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지. 하지만 꿈을 꾸는 방식 자체가 왜곡되었기 때문에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들이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고 트윗에서 리트윗하는 캘리포니아 드림은 이루어질 수 없는 백일몽이다.

"우리는 모두 TV를 보면서 언젠가 나도 백만장자, 영화배우, 혹은 록스타가 될 거라고 믿으며 자랐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우리는 서서히 진실을 깨닫는 거야. 진실을 깨닫고 나면 아주, 정말이지 아주 커다란 분노를 느끼지."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타일러 더든은 이렇게 말했다. 어쩌다 성공을 거둔 - 혹은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 사람이 나타나면 모든 매체가 달려들어 집중적으로 그 사람을 조명한다. 그것이 바로 현실이 드라마를 써 내려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드라마를 통해서 현실은 지속적으로 왜곡된다. 그 왜곡장 안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번지점프의 줄을 몸에 묶는 젊은이가 하나 둘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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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꿈꾸지 않는 삶은 지루하다. 우리 몸을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밀고 가는 에너지의 원천은 우리가 꾸는 꿈이다. 단, 타인이 짜 놓은 프레임 안에서 꾸는 꿈은 무망하다. 그건 꿈이 아니라, 욕망이다. 현실왜곡장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진짜 꿈을 꾸는 사람은 두 발이 디딘 곳에서 행복을 추구한다. 자기 행복에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유행에 민감하지 않고,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존감이 충만하고, 타인을 존중한다.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를 중시하고, 그리하여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의 복음이 없어도 이미 행복하다.

고단한 현실을 부정하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최면을 거는 '정신 승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 짧고 소중하다. 그걸 말하는 거다. 당장 따라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세상을 향해서 때로는 쉠처럼 "엿이나 먹어라"하고 외치는 배짱도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창조는 그 엿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