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맹'이던 삼성과 구글의 기묘한 행보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스마트폰 너머를 보자

데스크 칼럼입력 :2016/10/06 16:43    수정: 2016/10/07 09:3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구글이 픽셀이란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내놨습니다. 바로 이튿날. 삼성도 깜짝 발표를 했습니다. 인공지능(AI) 기업 비브를 인수한 겁니다. 비브란 이름이 생소하신가요? 애플의 자랑인 시리는 어떠세요? 비브는 시리를 만든 사람들이 차린 회사입니다. 만만찮은 곳이란 얘기입니다.

연이어 나온 소식을 접하면서 IT 시장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얘길 한번 해볼까요?

어제 구글이 픽셀을 발표하자 많은 국내 언론들은 ‘안드로이드 동맹 와해’란 분석을 내놨습니다. 동맹이던 삼성과 정면 대결을 하게 됐다는 논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전 그 분석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선 포화 상태에 다다른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든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교체 수요를 자극해야 하는 시장에 뛰어들 이유가 없어보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삼성을 비롯한 안드로이드업체들과 단말기 경쟁을 하는 게 구글에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애플과 단말기 시장에서 정면 승부한다는 시나리오도 조금 웃기구요. 안드로이드 동맹군이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구글 비즈니스엔 훨씬 도움이 됩니다.

픽셀 폰을 공개하고 있는 릭 오스털로 부사장. 모토로라 출신인 오스털로는 구글 하드웨어 전략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사진=씨넷)

■ "구글 HW 행사의 핵심은 어시스턴트"

그런데 왜 구글은 단말기를 내놨을까요? 그리고 (공교롭게도) 구글이 단말기를 내놓은 바로 다음 날 삼성은 왜 인공지능 전문업체를 인수했을까요?

이 질문 속에 2016년 IT 시장의 현주소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목적'으로 놓고 볼 경우엔 IT 시장의 거대 흐름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이런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스마트폰에 가상현실(VR)과 인공지능(AI) 기술을 왜 자꾸 접목하는 걸까? 왜 단말기 업체들은 화면을 키우려는 걸까? 구글은 왜 ‘스마트폰 시장 막차’를 타려는 걸까? 대체 스마트폰이 뭐길래?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보니 다른 그림이 조금씩 보였습니다. 어쩌면 스마트폰은 '수단'에 불과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게 됐단 얘기입니다.

픽셀폰은 구글의 대화식 음성인식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가 적용됐다. (사진=씨넷)

한번 따져볼까요? 어제 구글은 픽셀이란 스마트폰을 내놨습니다. 예전과 달리 통신사인 버라이즌과 독점 공급 계약도 맺었구요. 금방이라도 단말기 사업에 박차를 가할듯한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들려오는 얘기는 조금 다릅니다. 생각만큼 구글 단말기가 많이 보급되는 것 같진 않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단말기를 내놨을까요? 당연한 얘기지만, 안드로이드를 비롯한 구글 소프트웨어를 최적화하기 위해선 하드웨어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동안은 가만 있다가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와이어드 기사를 보게 됐습니다. 예전만은 못 하지만, 와이어드는 한 때 미국에서 대표적인 디지털 잡지로 꼽히던 매체입니다. 인사이트가 뛰어나기로도 유명했구요.

와이어드는 이렇게 단언합니다. “구글 하드웨어 행사의 초점은 하드웨어 자체가 아니다. 인공지능 비서인 구글 어시스턴트가 핵심이다.” 아시죠? 구글 픽셀은 처음으로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했습니다.

■ 구글과 삼성의 또 다른 키워드 "끊김 없는 경험과 유비쿼티"

그런데 구글 어시스턴트 같은 AI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걸 최적화하는 게 쉽지 않지요. AI를 주류로 만들려면 하드웨어, 특히 스마트폰이 꼭 필요하다는 게 와이어드의 설명입니다. 픽셀과 구글 홈이 양대 축이란 겁니다.

와이어드의 이어지는 해석은 더 파격적입니다. 가트너 애널리스트인 마크 헝의 입을 빌어서 “스마트폰은 알루미늄 덩어리일 뿐이다”고 했네요. 기기는 단순한 그릇(vessel)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구글 하드웨어 사업 부문을 이끌고 있는 릭 오스털로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오스털로는 “구글이 하드웨어를 만들기로 한 건 아래에 깔려 있는 기술에 대한 걱정 없이 모든 걸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제대로 한다는 건’ 바로 풍부한 AI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와이어드는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삼성전자가 시리를 만들었던 미국 인공지능 플랫폼 비브를 인수했다. 사진은 비브 공동 창업자인 디그 키틀로스가 테크크런치 주최 행사에서 발표하는 모습. (사진=씨넷)

삼성의 비브 인수도 같은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외신들에 따르면 이번 인수는 삼성 모바일 팀이 주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삼성이 단순히 갤럭시 폰 성능 높이려고 비브 같은 AI 강자를 인수하진 않았을 겁니다.

시리보다 몇 발 앞섰단 평가를 받는 비브는 ‘크로스플랫폼’ 제품입니다. 스마트폰 뿐 아니라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 같은 다양한 전자제품에 두루 응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비브 창업자인 다그 키틀로스의 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왜 삼성을 택했냐?”는 테크크런치 기자의 질문에 “유비쿼티(ubiquity)”란 답을 내놨습니다. 삼성이 매년 출하하는 기기 수가 5억개에 이른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삼성 역시 비브 인수 이유로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을 내놨습니다. 어쩌면 사물인터넷(IoT) 시대의 거대 플랫폼을 꿈꾸고 있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 스마트폰과 IoT…손가락을 잊어야 달이 보인다

삼성과 구글의 최근 행보는 스마트폰 시장만 놓고 보면 답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제살 깎기’(구글)나 ‘과잉 투자’(삼성)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가정 내 모든 기기를 아우르는 또 다른 생태계란 관점으로 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스마트폰이 ‘만능 리모콘’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겠다는 야심. 그리고 그 스마트폰은 손으로 작동시킬 게 아니라 말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비전. 그 비전을 바탕에 깔고 보면 그림이 조금 다르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지키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을 테니까요. 기업들은 그렇게 번 돈으로 미래를 준비할 겁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스마트폰을 ‘상수’로 생각하는 건 단편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 얘길 하고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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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얘기가 있습니다. 조만간 마이크로소프트(MS)와 노키아, 그리고 소니가 경쟁자가 될 것이란 얘기였습니다. 당대 최고 기업들이 거실 점령 전쟁을 벌일 것이란 얘기였지요.

지금 삼성과 애플, 그리고 구글 같은 기업들의 경쟁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4차산업혁명의 핵심 축이라는 IoT가 만들어갈 ‘멋진 신세계’가 아닐까요?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