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 속 치킨게임

전문가 칼럼입력 :2016/07/29 10:00

박구락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기획팀장

치킨게임(chicken game)은 게임 이론 모델 중 하나다. 어떤 사안에 대해 대립하는 두 집단이 있을 때 그 사안을 포기하면 상대방에 비해 손해를 보게 되지만, 양쪽 모두가 포기하지 않는 다면 가장 나쁜 결과가 벌어지는 게임이다.

두 사람이 자동차를 타고 서로에게 돌진할 때 누군가가 핸들을 돌려 피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 죽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가 피한다면 먼저 피하는 사람이 겁쟁이(chicken)가 되어 결국 게임에서 지게 된다. 이 용어는 냉전 시절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 간의 군비 경쟁을 빗대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박구락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기획팀장

요즘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익명성에 기댄 채 양보 없이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원색적 비난을 일삼는 악성댓글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이로 인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뉴스에조차 고인을 비방하거나 고인의 가족을 비난하는 댓글이 심심찮게 목격된다는 점이다. 범죄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를 향한 신상털기와 비난의 정도가 더 이상 용인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고 있다.

2016년 2월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발표한 ‘2015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초중고등학생 3천명 가운데 사이버폭력 가해경험이 있는 학생들 중 51.7%가 사이버폭력 피해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버폭력 피해경험이 있는 학생들 중 47.4%가 사이버폭력 가해경험이 있고, 성인의 경우에는 조사대상 1천500명 가운데 사이버폭력 가해경험이 있는 성인들 중 67.5%가 사이버폭력 피해경험이 있으며 사이버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성인들 중 54%가 사이버폭력 가해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결과는 사이버 공간 치킨게임 양상을 잘 보여준다. 사이버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이러한 양상은 마치 마주보고 돌진하는 차량의 운전자들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핸들을 팔에 묶어 결국 모두가 피해를 입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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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겁쟁이가 되어 게임에서 지더라도 먼저 핸들을 돌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군가 먼저 멈추지 않는다면 사이버 공간의 치킨게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혼자 핸들을 돌리기 어렵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경찰청은 이러한 상황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고 판단해 지난 5월 16일부터 인터넷 공간에서의 명예훼손과 모욕사범에 대해 엄정히 대응하고 있다. 참을 수 없는 피해를 당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언제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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