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시대, 긴 글로 승부해도 될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데스크 칼럼입력 :2016/05/09 14:16    수정: 2016/05/09 14:3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모바일 공간에선 어떤 글이 먹힐까? 길게 쓰면 외면당하지 않을까? 그러니 기사를 짧게 잘라 써야 하는 것 아닐까?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를 통해 뉴스를 보는 독자들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고민들이다. 카드뉴스 같은 새로운 형식 실험 역시 이런 고민에서 나온 것들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이런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긴 읽을거리가 모바일 뉴스 세계에서 생존의 흔적을 보여줬다(Long-Form Reading Shows Signs of Life in Our Mobile News World)’란 긴 제목의 보고서엔 작은 화면이 걸림돌이 되진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담겨 있다.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는 독자들은 분량이 긴 기사를 부담없이 읽어낼 수 있을까. (사진=지디넷코리아)

이번 보고서는 퓨리서치센터가 웹 분석 전문업체인 파슬리 자료를 활용해서 작성했다. 분석 대상은 2015년 9월 미국 내 30개 뉴스 사이트에 게재된 7만4천840개 기사다.

이 기간 동안 총 순방문자 수는 7천100만명이다. 전체 세션은 1억2천500만회, 인터랙션은 1억1천700만회다. 물론 모바일 기기로 접속한 사람만 통계낸 수치다. (☞ 퓨리서치센터 보고서 다운받기)

■ 긴 기사 평균 참여시간, 짧은 기사의 두 배

퓨리서치센터는 분석을 위해 이 자료를 ‘짧은 기사(short-form articles)’와 긴 기사(long-form articles)로 나눴다. 짧은 기사는 101~999단어, 긴 기사는 1천 단어 이상으로 구성된 글로 조작적 정의를 했다. 왜곡된 결과가 나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 100단어 이하 기사는 조사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퓨리서치센터 측이 밝혔다.

연구 결과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긴 기사의 참여 시간(engaged time)이 평균 123초로 짧은 기사(57초)의 두 배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긴 기사를 읽는 시간은 짧은 기사보다 당연히 더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퓨리서치센터 지적대로 “긴 기사와 짧은 기사의 참여 시간이 비슷한 수준일 경우 모바일 화면이 읽는 습관에 제한요소로 작용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결과는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판단된다.

세부적인 연구 결과를 보면 더 고무적이다. 1천~4천999단어 기사의 평균 참여 시간이 116초인 반면 5천자 이상 기사는 270초에 이르렀다. 같은 1천자 이상 긴 기사에서도 길이에 따라 참여 시간이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 셈이다.

이는 짧은 기사에도 마찬가지였다. 101~250단어 기사의 평균 참여 시간은 43초로 251~999단어(60초)에 비해 많이 짧았다.

시간을 기준으로 한 연구 결과도 흥미롭다. 짧은 기사는 90% 이상이 참여 시간 2분 이내였다. 반면 긴 기사는 36% 가량이 참여 시간 2분이 넘었다.

퓨리서치센터는 이 같은 연구 결과에 대해 “공중들은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글을 읽을 때도 어떤 지점을 넘어가면 자동으로 눈길을 돌려버리진 않는다는 의미”라면서 “그들은 짧은 기사가 끝난 지점을 훨씬 지나서 계속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고 의미 부여했다.

■ 긴 기사, 출고 이후 생명 짧은 기사보다 더 길어

퓨리서치센터는 이번 분석을 위해 주중과 주말 데이터를 비교했다. 또 하루 중에서도 아침, 한낮, 저녁 등 다섯 시기로 분류했다.

이렇게 비교한 결과 긴 기사와 짧은 기사의 참여 시간은 하루 종일 비슷한 추이를 유지했다. 다만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주말 아침이었다.

다른 시기에 비해 주말 아침엔 긴 기사를 읽는 시간이 두드리지게 긴 것으로 나타난 것. 이 때는 긴 기사 참여 시간은 137초로 주중 아침(123초)에 비해 확연하게 많았다.이번 조사에선 기사의 수명도 눈길을 끌었다. 긴 기사가 짧은 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퓨리서치센터가 각 기사 출고 시점과 모바일 이용자의 최초 방문 시간 간의 간격 조사를 통해 밝혀냈다.

조사 결과 1천자 이하 짧은 기사는 송고된 지 이틀 내에 전체 방문의 82%가 이뤄졌다. 이 비율은 사흘 째에는 89%로 늘어났다. 반면 긴 기사는 이틀 내 방문 비율이 74%였으며 사흘째에는 83%까지 늘어났다.

이번 조사 결과 출고 된 지 닷새 이후에도 방문자들이 찾는 비율은 6%(짧은 기사)와 10%(긴 기사)에 불과했다.

출고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참여 시간 면에선 짧은 기사와 긴 기사가 큰 차이가 났다. 짧은 기사는 출고 후 열흘 동안은 평균 참여 시간이 58초 수준을 기록하다가 11일째부터는 급속하게 감소했다. 이 수치는 출고 이후 27일 째에는 35초까지 줄어들었다.

반면 긴 기사의 소비 패턴은 조금 달랐다. 출고 첫날 평균 117초였던 참여 시간은 7일 째에는 147초로 오히려 증가했다. 이후 완만하게 줄어든 끝에 28일 째에는 96초로 감소했다.5천자 이상 아주 긴 기사에 초점을 맞추면 상황은 좀 더 확연하게 달라진다. 5천자를 웃도는 긴 기사들은 첫날 199초 였던 참여 시간이 8일 째가 되면 373초로 훌쩍 증가한다. 증가율만 따지면 87%에 이른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해 퓨리서치센터도 딱 부러진 해답을 내놓진 못하고 있다.

다만 퓨리서치센터는 “남들보다 나중에 긴 기사를 발견한 소수 독자들이 그 주제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론했다.

■ 정보-스토리텔링만 괜찮으면 길어도 승부 가능?

퓨리서치센터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 외에도 여러 가지 연구 결과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모바일 기기에서도 긴 기사는 잘 읽힌다는 점이다.

물론 이번 연구 결과는 확실한 해답을 제시했다고 보긴 힘들다. 긴 기사에 더 많은 시간을 썼다는 사실 만으로 ‘모바일 기기에서도 긴 기사가 통한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건 다소 성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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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이번 연구 결과의 의미가 훼손되는 건 아니다. 독자들이 화면이 작다는 이유만으로 긴 글을 대충 읽다가 다른 곳으로 가는 건 아니란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진이 지적한 대로 이런 결과는 모바일 독자들에겐 짧고 간략한 기사로 승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언론사들에겐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담겨 있는 정보가 유익하고, 스토리텔링이 재미 있기만 하다면 모바일 독자들도 얼마든지 긴 기사를 소비할 의향을 갖고 있다는 건 확실하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