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CEO는 왜 'AI 퍼스트' 선언했나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데스크 칼럼입력 :2016/05/02 11:36    수정: 2016/05/03 14:3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모바일 퍼스트에서 AI 퍼스트 시대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순다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가 보낸 편지가 화제입니다. 피차이는 지난 28일(현지 시각) 구글 지주회사인 알파벳 주주들에게 보낸 ‘창업자의 편지(Founders’ Letter)’에서 회사의 비전에 대해 밝혔습니다.

화제가 된 건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외에 ‘창업자의 편지’를 쓴 건 피차이가 처음이란 점입니다.

이런 점 때문이었을까요? 피차이가 쓴 ‘창업자의 편지’ 앞부분엔 래리 페이지 알파벳 CEO가 쓴 짤막한 글이 덧붙어 있습니다. 그 글에서 페이지는 알파벳의 대부분은 구글에 달려 있기 때문에 피차이에게 구글이 성취한 것과 미래 비전을 나누길 원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순다 피차이 구글 CEO

■ 창업자의 편지, 창업자 외 사람이 쓴 건 처음

형식 못지 않게 내용 면에서도 관심을 모았습니다. 국내외 많은 언론들은 피차이가 모바일 퍼스트에서 인공지능(AI) 퍼스트로 전환하게 될 것이라고 한 내용을 많이 부각시켰습니다. 실제로 그 편지엔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이게 새로운 얘긴 아닙니다. 구글 입장에선 지극히 당연한, 상식적인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피차이의 편지는 그 상식적인 얘기를 논리적으로 풀어놨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피차이의 편지는 꽤 긴 편입니다. 하지만 IT매체 리코드가 지적한 것처럼 ‘새롭거나 놀랄만한(new or mind-blowing)’ 내용은 없습니다. 구글의 방대한 영업 분야를 6개 영역으로 나눈 뒤 각 부문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은 글입니다. 하긴 획기적이거나 깜짝 놀랄 내용이라면 피차이가 아니라 래리 페이지가 공개를 했겠지요.

순다 피차이가 쓴 창업자의 편지. (사진=구글)

그렇다면 피차이의 편지는 크게 볼만한 가치가 없는 글일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꼼꼼하게 읽어볼만합니다. 구글이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차이는 구글이 처음 세상에 탄생하던 1998년 얘기부터 운을 뗐습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을 창업하던 그 무렵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은 약 3억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10배인 30억 명에 이릅니다. 그 땐 PC가 전부였지만 지금은 사용하는 기기도 엄청나게 많지요.

하지만 피차이는 그 때나 지금이나 구글의 ‘창업 미션’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알고 계시나요? 구글의 창업 미션이 뭐 였는지? 이렇게 돼 있습니다.

“세상의 정보를 체계화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한다(Organize the world's information and make it universally accessible and useful)”

잘 아시시겠지만 구글은 검색으로 출발한 회사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안드로이드를 비롯한 다른 쪽에 무게 중심이 쏠려 있지요. 하지만 피차이는 여전히 검색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참고로 피차이는 검색(Search)을 대문자로 썼습니다. 어떤 외신에 보니 래리 페이지나 세르게이 브린조차도 ‘창업자의 편지’에서 검색을 대문자로 쓴 적은 없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일 수 있습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이젠 정보 자체보다는 그것을 제 때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할테니까요.

■ "스크린 확산 시대엔 기기 개념 옅어질 것"

피차이는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가치를 제기합니다. 검색을 비롯한 여러 구글 서비스를 끊김 없이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작업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게 바로 머신러닝과 인공지능이란 게 피차이의 논리입니다. 예전처럼 PC 앞에 앉아서 텍스트를 입력해야만 찾을 수 있어선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이젠 말로 직접 정보를 찾을 수도 있고, 다른 언어를 번역해주기도 하며, 메일 박스에서 스팸을 걸러내줄 필요도 있다는 겁니다.

사진과 영상 이용이 많아지면 다른 검색 수요도 생깁니다. 이를테면 허그하는 사진을 찾기 원할 땐 그것만 찾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에 인공지능 충격파를 던져준 딥마인드 챌린지. 사진은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의 제5국 대국 해설 장면. (사진=유튜브)

지난 3월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에서 승리하면서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지요.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확산됐습니다. 하지만 피차이는 그 모든 게 인류를 위한 승리라고 강조했습니다. 세상의 정보를 체계화해서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창업 미션’을 실행하는 중요한 전기가 됐기 때문입니다.

‘모바일 퍼스트’에서 ‘AI 퍼스트’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겁니다. 피차이는 이 말을 하기 전에 ‘스크린 확산(proliferation of screens)’ 이란 새로운 기술 발전을 거론합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컴퓨팅은 책상 위에 있는 큰 컴퓨터와 동의어였지요. 하지만 최근 들어 프로세서와 센서 같은 초강력 컴퓨팅의 핵심 요소들이 소형화되고 저렴해지면서 우리 호주머니 속에 슈퍼컴퓨터를 넣고 다니게 됐습니다. 바로 휴대폰이지요. 현재 안드로이드 이용자만 14억 명에 달합니다.

피차이는 이런 현상을 얘기한 뒤 ’스크린 확산’을 거론합니다. 데스크톱, 태블릿 뿐 아니라 스마트폰 영역까지 넘어서고 있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자동차(안드로이드 오토), 손목(안드로이드 웨어)에서부터 가상현실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구글 카드보드를 통해 500만 명 이상이 VR을 맛보고 있습니다.

구글 가상현실기기 '카드보드'

‘AI 퍼스트’ 얘긴 그 다음에 나옵니다. 미래가 되면 ‘기기(device)’란 개념 자체가 희미하게 사라진다(fade away)는 거죠. 컴퓨터 자체가 하루 종일 우리를 도와주는 똑똑한 비서가 될 것이란 겁니다.

그런 다음에 피차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We will move from mobile first to an AI first world.”

■ 기기보다는 컴퓨팅 현상 자체가 더 중요

자, 정리를 해 볼까요? 피차이는 ‘편지’에서 기기가 없어지게 된다는 말을 한 건 아닙니다. 기기보다는 컴퓨팅 현상 자체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될 것이란 얘길 하는 겁니다.

VR을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를 전달하는 기기는 스마트폰이 될 수도 있고, 태블릿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지금 우리가 모르는 다른 기기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현상을 전달해주는 인공지능 기술 자체가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란 얘기입니다. 그리고 이건 세계의 모든 정보를 체계화해서 이용하기 쉽게 해주겠다는 구글의 초기 창업 미션과 그대로 연결된다는 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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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 편지를 읽으면서 구글의 최근 흐름이 조금은 이해가 됐습니다. 그들이 왜 인공지능에 투자를 하는 지, 왜 조금은 생뚱맞은 무인차 사업에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다음 번에 기회가 되면 그 얘길 한번 정리해볼까 합니다.

독자 여러분 중에 구글의 행보에 관심이 있는 분은 피차이가 쓴 ‘창업자의 편지’를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순다 피차이 창업자의 편지 바로 가기 )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