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싸우는 애플과 MS가 부러웠던 이유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데스크 칼럼입력 :2016/04/15 11:32    수정: 2016/04/15 11:38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수사기관이 테러현장에서 압수한 스마트폰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A기업이 “방법이 없다”고 거부했다. 그러자 그 수사기관이 법원에 호소했다. 법원에서도 “웬만하면 해주라”는 명령을 발령했다. A기업은 아예 공식 재판 절차를 밟겠다고 나섰다.

B기업은 아예 최고 법 집행기관인 법무부를 제소했다. 이메일 같은 고객정보 압수수색 관행 때문이었다. 수색해놓곤 고객들에게 그 사실을 통보도 못하게 했다는 게 소송 이유였다. 법 집행 근거가 됐던 ‘전자커뮤니케이션프라이버시법(ECPA)’이 위헌이라는 청원까지 함께 했다.

요즘 미국에서 진행 중인 사건이다. 잘 알고 있듯이 A는 애플, B는 마이크로소프트(MS)다. “기업이 저렇게까지 정부에 맞서도 될까?” 싶을 정도다.

애플은 아이폰 잠금 해제를 원천 무효로 만들 수 있는 만능키 요구 때문에 골치 아프다. FBI가 지난 해 12월 발생한 샌 배너디노 테러 사건을 기회로 맹공격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은 “선례가 될 수 있다”며 강하게 맞서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 FBI와 법무부에 맞서는 두 기업

MS는 클라우드에 저장돼 있는 이메일 같은 개인 정보 수색 관행을 문제 삼았다. 수사기관이 수색 영장을 집행한 사실을 고객에게도 알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MS는 법원 제출 문건을 통해 ‘수색 당하고 말도 못한 사례’가 얼마나 되는 지 까발렸다. 최근 18개월 동안 총 5천624건의 요청을 받았는데, 그 중 절반에 가까운 2천576건에 대해선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강조했다.

소송 시점도 흥미롭다. 로이터에 따르면 MS가 소송 제기하기 하루 전 미국 의회가 ECPA 개정안을 마련했다. ECPA가 의회안대로 개정될 경우 수사 기관들은 수색 대상인 ‘특정 이용자’를 통보할 의무를 면제받게 된다. 이 법이 상하원에 실제로 상정될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만약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 하원 청문회에 출석한 제임스 코미 FBI 국장 (사진=씨넷)

MS는 이번 소송에서 문제가 된 ECPA 275조 b항이 수정헌법 1조와 4조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언론의 자유, 4조는 부당한 압수수색을 당하지 않을 자유에 해대 규정하고 있다.

사생활 보호와 공익 보장은 늘 상충되는 가치였다. 따지고보면 언론 역시 ‘사생활 보호’와 ‘알 권리’ 사이에서 위험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직종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평가하긴 쉽지 않다.

또 애플과 MS가 반드시 공익 때문에 소송을 택했다고 보기도 힘들 것이다. 실제로 두 기업의 소송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고도의 마케팅 아니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MS의 이번 소송에 대해선 애플 소송에 물타기 하기 위한 ‘꼼수’란 비판도 나오고 있다.

■ 알파고 같은 혁신, 자유로운 토론 문화에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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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개발자인 데미스 하사비스(왼쪽)와 이세돌 9단. (사진=구글 공식 블로그)

충분히 생각해볼 비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사기업이 국가 최고 법 집행 기관의 요구에 맞서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다면, 그 사회는 건강하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점이다. 고객을 앞세우는 게 ‘마케팅적 고려’에서 나온 것일 망정, 공론의 장에서 사생활 보호와 국가 안보의 경계선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사회 역시 건강하다는 점이다.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의 바둑 대결 이후 ‘한국형 알파고’ 얘기가 적지 않게 나왔다. 한국형 알파고. 물론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창의적인 기술은 금전적인 투자만으로 이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계급장 뗀 격의 없는 토론’과 ‘성역 없는 문제 제기’가 가능할 때 알파고 같은 혁신의 씨앗이 싹틀 수 있는 법이다.

조금은 무모해보이고, 또 약간은 ‘마케팅적 고려’가 포함됐을 수도 있음직한 MS와 애플이 벌이는 법정 공방을 보면서 내가 한 없이 부러웠던 것은 바로 그런 문화였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