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 기기가 MLB 야구와 만났을 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데스크 칼럼입력 :2016/04/06 14:11    수정: 2016/04/06 14:2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제리 카플란의 ‘인간은 필요없다’엔 흥미로운 얘기가 나온다. 미국 프로풋볼(NFL) 경기에 지능형 운동화가 사용되는 얘기다. 물론 저자가 상상해본 장면이다.

지능형 운동화 덕분에 선수들의 킥 실력이 엄청나게 향상된다. 반대편에서 찬 공이 그대로 골인될 정도다. 그러자 수비 선수들을 위해 하늘을 날 수 있는 지능형 신발이 또 나온다. 기술 발전으로 NFL 경기는 해리포터에 나오는 ‘퀴디치’ 같은 모양새가 된다.

그러자 NFL은 경기를 정비하기 위해 몇 가지 높이 규정을 도입한다. 12미터보다 높이 올라간 공은 아웃처리하고, 선수 헬멧이 9미터 이상 올라가연 오프사이드 처리된다.

이 얘길 떠올린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가 경기 중 웨어러블 기기 사용을 허가할 것이란 소식 때문이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가 웨어러블 기기 사용을 일부 허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허용 대상 중 하나인 모터스 베이스볼 슬리브. (사진=모터스 글로벌)

■ 선수 부상 방지용으로 적극 쓰일 듯

AP가 단독 보도한 기사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MLB 사무국이 팔꿈치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하는 '모터스 베이스볼 슬리브(Motus Baseball Sleeve)'와 심박수와 호흡을 정밀 진단하는 '제퍼 바이오하네스(Zephyr Bioharness)’를 경기 중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모터스 베이스볼 슬리브’는 투수들의 부상 방지용으로 유용한 도구다. 특히 투수들의 고질병인 ‘토미 존 부상’을 방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투수 중엔 토미 존 수술을 받은 선수들이 꽤 많다. 호세 페르난데스, 맷 하비 같은 사이영상 급 투수들도 예외 없이 수술대에 올랐다. 최고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부상 때문에 빠지는 건 흥행에도 도움이 안 된단 판단을 했을 법하다.

‘제퍼 바이오하네스’는 선발 투수나 포수처럼 극도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선수들에게 유용하다고 외신들은 평가하고 있다. 경기가 끝난 후 체력과 스태미너를 회복하는 데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물론 무제한 사용은 아니다. 웨어러블 기기가 포착한 데이터는 경기 중엔 사용할 수 없다. 경기가 끝난 뒤 다운받도록 제한했다. ‘선수 부상 방지’란 원래 목적에 충실하게 쓰도록 했다는 얘기다. 이 데이터는 방송사에 제공해서도 안 된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올 시즌부터 애플 아이패드 프로를 더그아웃과 불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사진=MLB.com)

MLB 사무국은 왜 웨어러블 기기를 허용하려는 걸까? 기사에 설명된대로 ‘부상방지’ 때문이다. 최고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부상 없이 최상의 경기력을 선보이도록 하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고액 연봉을 지급한 선수들이 부상 때문에 경기에 빠지는 건 구단 입장에서도 큰 손실이다.

물론 이런 기기들은 훈련 과정에선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다. 다만 그 동안은 경기장엔 반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문호가 개방된 건 분명 놀라운 일이다. 한번 물꼬가 트이면 추가 조치는 생각보다 수월하다. 따라서 앞으로 다양한 기기들이 계속 허용될 가능성이 많다. MLB를 비롯한 많은 스포츠 단체들은 이미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던 오랜 신념을 버리고 비디오 판독을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 경기장 바깥에선 이미 광범위하게 활용

사실 IT 기술은 현대 스포츠에선 필수품이나 다름 없다. 경기장 반입만 안됐달 뿐이지 실제 경기에선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다.

간단한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MLB 보스턴 팀의 왼손 강타자 데이비드 오티즈가 나오는 타석을 유심히 살펴보라. 2루수가 우익수 앞자리에 가서 수비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오티즈 선수가 친 타구가 바로 그 자리로 날아가는 걸 자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걸 수비 시프트라고 부른다. 이런 모험 수비가 가능한 건 ‘빅데이터 기술’ 덕분이었다.

투수들의 투구 궤적을 추적하는 PitchFX 역시 이미 대부분의 구단들이 활용하고 있다. 역시 경기력 극대화와 부상 방지에 중요한 기여를 한 IT 기술이다.

투수들의 투구 궤적을 정밀 추적하는 Pitch/fx는 메이저리그 야구에선 널리 활용되고 있는 IT 기술이다. (사진=스포츠비전)

몇년 전 개봉된 영화 ‘머니볼’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구단 운영 사례를 잘 보여줬다. ‘그들은 어떻게 뉴욕 양키스를 이겼을까(원제 Extra 2%)’란 책은 미국의 저예산 구단 탬파베이 팀 얘기를 다루고 있다. 그 책엔 첨단 IT 기술에다 월가의 가치 투자 기법까지 도입한 얘기가 상세하게 나온다.

2010년 이후 월드시리즈에서 가장 많이 우승한 샌프란시스코 팀은 ‘테크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근처에 실리콘밸리가 있다는 점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야구 뿐 아니다. 축구, 육상을 비롯한 웬만한 스포츠 팀은 첨단 IT 기술을 활용해 경기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경기장에까지 웨어러블 기기가 등장한다는 건 놀라운 변화인 건 분명하다. 지난 해 아이패드 반입을 허용하면서도 ‘와이파이 기능 불허’란 조건을 달았던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 기계를 활용한 스포츠 경기, 끝은 어딜까?

다시 카플란의 책 얘기로 돌아가보자. NFL에 스마트 운동화가 도입되자 보수파들이 불만을 제기한다. 결국 순수한 인간의 능력으로 겨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별도 리그를 만든다. IT 기술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는 경기를 펼치는 리그다.

난 웨어러블을 비롯한 여러 첨단 IT 기기들이 스포츠 경기에 적극 활용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승부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한 최고 경기력을 제공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최고 수준 선수들이 부상 때문에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것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선 MLB의 열린 정책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가끔은 아날로그적 향수가 밀려오는 것까지 막을 순 없다. 그래서 언젠간, 카플란이 묘사했던 것과 같은 ‘그들만의 또 다른 리그’가 생길 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본다.

(덧글) 수비 시프트에 관한 추억 하나.

수비 시프트는 만화가 이현세 씨가 1980년대 초반 출간한 ‘공포의 외인구단’에도 나온다. 투수인 조상구가 몸쪽 바짝 붙은 공을 던지면 3루수 쪽으로, 바깥쪽 꽉찬 공을 던지면 1루수 쪽으로 직선 타구가 날아갈 것이란 발상이다.

관련기사

이현세 씨는 감독의 입을 통해 ‘필살 수비’가 가능한 건 제구력 뛰어난 투수 조상구와 반사신경과 수비력 뛰어난 3루수 최경도, 1루수 오혜성 덕분이란 친절한 설명하고 있다.

뛰어난 작가 이현세 씨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필살수비는 내가 아는 한, 수비 시프트의 원조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