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확인해주는 컴퓨터…기자들 친구될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데스크 칼럼입력 :2016/04/04 11:33    수정: 2016/04/04 13:0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알파고가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꽤 컸다. 난공불락의 영역이라 여겼던 바둑까지 인공지능에 내준 데 따른 충격파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전부 빼앗아 갈 것이란 호들갑이 더 이상 호들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정도다.

저널리즘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로봇 저널리즘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미국 AP통신은 지난 2014년 중반부터 기업 분기 실적 기사는 전부 로봇으로 처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파이낸셜뉴스를 비롯한 일부 경제지들이 간단한 공시 기사는 로봇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사람은 어떤 기사를 써야 할까? 분석과 통찰이 담긴 기사나, 탐사보도가 인간 기자 고유의 영역이 될 것이란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듀크대학에서 열린 테크&체크 컨퍼런스

하지만 인공지능이 담당할 영역이 생각보다는 훨씬 넓을 것 같다. 단순히 보도자료나 간단한 자료 처리하는 수준에 머물진 않을 것 같단 얘기다. 알파고에서 이미 확인한 것처럼 ‘직관’ 능력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미국 미디어 전문 매체 포인터에 올라온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미국에선 ‘팩트체킹(fact-checking)’ 영역에서 컴퓨터를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 저널리즘의 핵심 영역까지 들어오는 걸까

언뜻 보면 황당해보이지만 곰곰 따져보면 꽤 설득력이 있다. 컴퓨터를 활용하면 사실 확인 작업을 훨씬 빨리 할 수 있다는 것. 특히 방대한 자료를 뒤지면서 비교해야 하는 영역이라면 사람보다는 컴퓨터가 훨씬 더 유용할 수도 있다.

우리 말로 사실 확인, 혹은 사실 검증 등의 의미를 가진 팩트 체킹은 최근 언론의 신뢰성이 위협을 받으면서 중요한 덕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간단하게는 특정 정치인의 발언이 사실인지부터 시작해 각종 통계자료 같은 것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팩트체킹이 저널리즘 영역에서 중요한 기능으로 떠올랐다. ‘팩트체크(factcheck.org)’ 같은 전문 기관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듀크 리포터스 랩 사이트.

물론 팩티체킹은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 중 하나다. 하지만 탐사보도 같은 영역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컴퓨터를 활용한 사실 확인’이 사람이 하는 일과 완전히 분리된 건 아니다. 저널리즘 영역에서 사실 확인 전문 툴이 생긴다면 ‘인간 기자’가 하는 작업 상당 부분을 보완해줄 수도 있다. 딱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미국 대학들에서 많이 활용되는 ‘표절 적발 소프트웨어’ 같은 것들을 떠올려며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포인터에 따르면 영국 팩트체킹 전문 기관인 풀팩트(Full Fact)는 이미 자동화된 툴을 활용하고 있다. 풀팩트는 이 툴을 활용해 의원들의 새로운 발언부터 신문에 인쇄된 각종 내용들까지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다.

지난 주 미국 듀크대학에서 열린 ‘테크&체크 컨퍼런스(Tech&Check Conference)’의 주제가 바로 컴퓨터를 활용한 팩트체크였다. 이 컨퍼런스에선 저널리즘 영역의 ‘패트체크 전문가들’이 구글, IBM 같은 기술 기업 개발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선 ‘저널리즘 팩크체크’ 영역에서 인공지능 같은 새로운 컴퓨터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지를 놓고 심도 있는 논의가 오갔다고 포인터가 전했다.

■ 실시간 사실확인 사이트도 등장

미심쩍은 발언이나 사실을 실시간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텍사스대학 연구팀이 듀크 리포터스 랩 및 구글 컴퓨터 과학자들과 공동 작업한 ‘클레임버스터(ClaimBuster)’란 사이트가 바로 그것이다. (☞ 클레임버스트터 바로 가기)

클레임버스터는 사실 여부를 확인해줄 뿐 아니라 좀 더 취재할 가치가 있는 부분까지 표시해주기 때문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포인터가 평가했다.

물론 포인터연구소 기사는 “인공지능이 저널리즘 영역을 침범해들어오고 있다”는 쪽에 초점을 맞춘 건 아니다.

실시간으로 사실 확인할 수 있는 클레임버스터 사이트.

기자들이 알고리즘이나 자연어처리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컴퓨터 과학자들 역시 자기네 분야가 아닌 저널리즘 영역의 모든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긴 힘들다는 것. 결국 양쪽 전문가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인공지능을 잘 활용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관련기사

‘알파고 충격’ 이후 우리 사회에선 ‘인공지능=터미네이터’란 두려움이 꽤 많이 확산됐다. 물론 인공지능이 몰고올 엄청난 바람은 분명히 대비해야 한다. ‘컴퓨터에 아웃소싱되지 않을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방안이다. 저널리즘의 핵심 영역인 ‘팩트체킹’기술까지 터득한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잘만 활용한다면 ‘퀄리티 저널리즘’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