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2차 특허소송 감상법

美항소법원, '특허 권리'보다 후속 혁신에 더 무게

데스크 칼럼입력 :2016/02/27 13:30    수정: 2016/02/29 08:4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특허 분쟁 관련 기사를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첨예하게 대립한 사안일수록 복잡한 기술 공방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관련 문건을 살펴봐도 쉽게 해독되지 않는다. 암호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될 때도 적지 않다.

이럴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면 의외로 문제의 핵심에 쉽게 다다를 수 있다. 특허 소송에선 당연히 ‘특허제도의 근본 뿌리’가 뭔지 성찰해보면 된다.

특허제도의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혁신 장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왜 그럴까? 특허가 비밀리에 독점하던 기술을 공개하는 대가로 일정한 권리를 부여해주는 제도란 점에 눈을 돌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진=씨넷)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허는 이율배반적인 제도다. 권리를 보장해주면서 동시에 권리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권리 보장’과 ‘권리 남용’ 간의 경계선이 흐릿해지기 쉬운 것도 그 때문이다.

특허를 둘러싼 철학적 공방은 바로 그 이율배반에서 출발한다. 보장된 권리가 적을 경우 기술 공개 유인이 떨어진다. 반면 지나치게 많은 권리를 보장해줄 경우 후속 혁신 가능성이 사라지게 된다. 특허권자가 길목을 독점하고 앉아서 자릿세를 챙기는 구조가 될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 퀵링크, 개념이냐 기술작동 방식 차이냐

이런 배경 지식을 갖고 삼성과 애플 간의 2차 특허 소송을 한번 살펴보자. 두 회사 소송에서 쟁점이 된 특허는 크게 세 가지. ▲데이터 태핑(647)▲단어 자동완성(172)▲밀어서 잠금 해제(721) 특허가 바로 그것들이다.

하지만 단어 자동완성과 밀어서 잠금해제는 곁다리로 끼어 있는 특허라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연방항소법원은 26일(현지 시각) 이 두 특허는 선행기술 등을 이유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2차 특허 소송의 승부를 가른 애플의 데이터 태핑 특허권 개념도. (사진=미국 특허청)

이번 공방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바로 ‘데이터 태핑’ 기능을 규정한 647 특허였다. 647 특허는 특정 데이터를 누르면 바로 연결 동작을 지원해주는 기술이다. 이를테면 웹 페이지를 누르면 바로 관련 창이 뜨고, 전화번호를 누르게 되면 곧바로 통화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기술이다. 이 특허 기술이 ‘퀵링크’로도 불리는 건 그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만 놓고 보면 간단해보인다. 삼성의 갤럭시 폰들 역시 아이폰과 똑 같은 방식으로 ‘퀵 링크’를 구현하기 때문이다. 갤럭시 폰에서도 이메일 주소를 누르면 메일 창이 뜨고, 전화번호를 누르면 곧바로 통화 기능으로 연결된다.

■ 특허제도 근본 취지 보면 이번 재판 이해

그런데 특허 제도의 근본 취지로 돌아가보면 생각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겉으로 드러난 기능적 유사성을 모두 보장해줄 것이냐, 아니면 삼성 주장대로 그 기능이 구현되는 기술 방식 차이를 인정해줄 것이냐는 논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자 쪽에 무게를 둘 경우 특허권자의 권리를 넓게 보장하는 것이 된다. 반면 후자는 특허권 보장 범위를 좁게 해석해서 후속 혁신의 길을 넓혀주는 방식이다. 어느 쪽에 무게를 둘 것이냐는 부분이 이번 법리 공방의 핵심 쟁점이었다.

자, 이런 배경 지식을 깔고 연방항소법원 판결문을 한번 살펴보자. 이번 소송에서 쟁점이 된 부분은 647 특허권 중 9번 청구 조항이었다. 그 부분엔 “분석 서버가 응용 프로그램으로부터 받은 데이터 구조를 탐지한 뒤 관련된 행위를 하도록 연결해준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서 쟁점이 된 것이 바로 ‘분석 서버’가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부분이었다. 이번 사건을 다룬 연방항소법원은 지난 2014년 애플이 동일한 사안으로 모토로라와 공방을 벌인 재판 때는 분석 서버를 “데이터를 수신하는 클라이언트로부터 분리된 서버 루틴”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항소법원. 특허소송 항소심 전담 법원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연방항소법원은 이번 판결문에서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일단 판결문에서 그 부분을 그대로 옮겨보자.

“우리는 ‘서버’는 그 분야 보통의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클라이언트-서버 관계에서 끌어내는 것으로 봤다. 이런 관점을 견지할 경우 분석 서버는 그것이 기능하는 애플리케이션과 분리된 것이란 해석을 할 수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기준을 갖고 삼성과 애플 기술을 비교했다. 다시 말해 삼성 갤럭시 폰의 ‘퀵링크’ 기능이 구현되는 부분을 분리된 서버로 볼 수 있을 것이냐는 것이 법리 공방의 핵심이었던 셈이다.

여기선 복잡한 기술 얘길 하려는 건 아니다. 항소심 재판부의 이번 판결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이냐는 얘길 하려는 것이다.

■ 문학 모티브 vs 스토리텔링-문장 유사성 공방과 비슷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문학에 한번 비유해보자.

영문학은 대부분 그리스 신화와 성경에서 많은 모티브를 가져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잃어버린 성궤’를 찾는다는 모티브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다는 ‘성배(holy grail)’를 찾는 모험은 영문학의 영원한 젖줄이었다. 영화에서 이런 모티브를 구현한 대표적인 작품이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다.

이런 모티브에서 출발한 대표적인 판타지 소설이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다. 현대 판타지 소설 대부분은 ‘반지의 제왕’ 아류란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실제로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를 곰곰 살펴보면 ‘반지의 제왕’과 비슷한 모티브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학 표절 논쟁에서도 특허 분쟁의 한 실마리를 도출해 볼 수 있다. 사진은 영화 '반지의 제왕' 한 장면.

하지만 누구도 ‘해리포터’ 시리즈가 ‘반지의 제왕’을 표절했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 정도 모티브는 ‘공공 영역’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런 모티브를 구현하는 스토리텔링 방식이나 문장이 선행 작품을 베꼈느냔 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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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애플의 2차 특허 소송 판결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애플 특허권 청구 문서에 있는 ‘분석 서버’를 좁은 범위로 해석함으로써 퀵 링크 기능의 상당 부분을 문학의 모티브와 비슷하게 해석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판결은 ‘특허권자 권리’ 보다는 ‘후속 혁신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실은 것으로 봐도 크게 그르진 않을 것 같다. 이게 삼성과 애플의 2차 특허소송을 감상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