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도전하는 구글-페북의 인공지능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데스크 칼럼입력 :2016/02/03 14:03    수정: 2016/02/04 10:0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내가 SF영화 중 최고로 꼽는 작품은 ‘블레이드 러너’다. 1982년 세상에 태어난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엔 처참하게 실패했다. 공교롭게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 영화 ‘ET’와 같은 시기에 개봉된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명작 반열에 올라섰다.

이 영화는 인간의 감정을 가진 로봇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모티브에서 출발했다. 반란을 일으킨 로봇은 타이렐사가 만든 ‘넥서스6’ 전투팀.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는 이들을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 경찰이다.

이런 모티브를 갖고 있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성에 대해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에서 로봇을 만드는 타이렐사의 모토는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다. 실제로 영화 속 로봇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감정을 갖고 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의 전형을 보여준 영화 블레이드 러너. (사진=씨넷)

■ 바둑 정복 노리는 구글, 좋아할 콘텐츠 추천하겠다는 페이스북

최근 구글과 페이스북이 연이어 인공지능 연구 결과물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케케묵은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리게 됐다. 사실 구글과 ‘블레이드 러너’의 인연은 생각보다 깊다.

잘 아는 것처럼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은 필립 딕이 쓴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다. 짐작했겠지만 구글의 모바일 플랫폼 안드로이드는 바로 이 작품에서 따 왔다.

그 뿐 아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로봇의 이름은 ‘넥서스6’다. ‘넥서스’에서 구글의 자체 안드로이드폰 브랜드를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내가 구글과 페이스북의 인공지능 연구에서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린 건 그 때문만은 아니다. 둘 사이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혹은 알고리즘)이란 공통 분모가 존재한다.

구글 알파고와 판후이 2단이 대국을 하는 장면. 알파고가 수를 놓으면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이 대신 바둑판에 놔주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사진=유튜브 캡처)

우선 프로바둑 기사와 대국에서 완승한 구글의 알파고를 살펴보자. 알려진 것처럼 알파고는 머신러닝 기술의 극단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알파고는 복잡한 바둑 게임을 정복하기 위해 인간의 지능을 흉내냈다. 경우의 수를 분석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추론하는 능력’까지 갖췄다. 알파고가 유럽 바둑 챔피언인 판후이 2단을 꺾을 수 있었던 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전략을 구사한 덕분이었다.

실제로 구글 연구팀의 한 관계자는 와이어드와 인터뷰에서 “알파고는 신경망들끼리 수백만 번의 게임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새로운 전략을 찾아내는 방법을 익혔다”고 밝혔다.

인간의 영역에 도전하는 건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뉴스피드 우선 노출 기준을 바꾸면서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그 포부 속엔 자기네가 골라주는 콘텐츠가 가장 흥미로울 것이란 강한 믿음이 깔려 있었다.

페이스북은 뉴스피드 알고리즘 변경 소식을 전하면서 '좋아하거나 공유가 많은 콘텐츠'를 우선 노출했던 기존 방식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 동안 ‘많이 좋아하고 많이 공유한 글’을 노출해봤는데 이용자 만족도가 생각만큼 높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좋아할만한 콘텐츠’를 골라주겠다는 얘기였다. 이쯤되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기계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페이스북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좋아요’나 공유 수를 늘리기 위해 인위적인 마케팅을 해봐야 소용없을 것이라는 경고도 빼놓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정도 꼼수는 알고리즘으로 다 걸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구글과 페이스북의 최근 행보를 보면서 두려운 생각까지 들었다. ‘인간보다 더 뛰어난 인공 지능’이 SF 영화 속 개념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다.

■ 구글과 페북은 어떤 꿈을 꾸는 걸까?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구글, 페이스북의 인공지능을 나란히 비교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블레이드 러너'는 신의 영역을 넘본 인간의 파멸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이 그린 세계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였다.

이 대목에서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과연 구글과 페이스북의 인공지능은 어떤 세계를 가져다 줄까?

아직까지는 쉽게 짐작하기 힘들 것 같다. 둘 모두 인공지능 연구는 완벽한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야심이 실현된 세계가 아름답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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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상상해보라. 구글 알파고가 이세돌 9단까지 완벽하게 제압하게 될 그 날을.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나도 모르는 내 숨은 취향까지 기막히게 분석해내는 그 날을.

구글과 페이스북의 야심찬 도전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선뜻 응원을 하지 못하는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뛰어난 인공지능을 갈망하면서도 인간의 영역만은 건드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때문일까?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