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논쟁'과 삼성-애플 특허공방

데스크 칼럼입력 :2016/01/06 17:10    수정: 2016/01/07 07:3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표절은 문학에선 쉽게 판정하기 힘든 공방이다. 물론 문장을 통째로 베낄 경우엔 바로 가려낼 수 있다. 애써 갈고 닦은 문장을 도용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티브 차용’에 이르게 되면 상황이 조금 복잡해진다. 공정 이용으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문학 작품 대부분은 그리스 신화와 성경에 그 젖줄을 대고 있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다는 ‘성배(holy grail)’를 찾는 모험은 영문학의 영원한 주제 중 하나다. 영화에서 이런 모티브를 구현한 대표적인 작품이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다.

현대 판타지 소설의 원형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소설 '반지의 제왕'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한 장면.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나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역시 비슷한 모티브를 갖고 있다. 특히 현대 판타지 소설 절대 다수는 ‘반지의 제왕’에서 모티브를 많이 갖고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다시 삼성과 애플의 특허 소송이 시작됐다. 이번에 개막된 건 지난 2014년 5월 1심 판결이 나온 2차 특허 소송의 항소심이다.

디자인이 핵심 쟁점이던 1차 소송과 달리 이번엔 실용 특허가 이슈다. 그러다보니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게 쉽지가 않다. 조금 애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 모티브와 표절, 그 애매한 경계선

삼성이 이번 소송에서 1억 달러를 넘는 배상 판결을 받은 건 ‘데이터 태핑’(특허번호 647)’이란 애플 특허 때문이다. 이 특허 때문에 삼성에 부과된 배상금이 9천800만 달러에 이른다. 전체 배상금의 80%를 넘는 수치다.

‘퀵링크’로도 불리는 이 특허는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는 기능이다. 이를테면 이런 기능이다. 문자 메시지에 있는 전화번호를 그대로 누르면 곧바로 통화가 된다. 이메일 주소를 누르면 바로 메일을 보낼 수 있게 된다. 말 그대로 필요한 기능에 ’퀵링크’ 해주는 기술인 셈이다.

언뜻 보기엔 쉽게 가려낼 수 있을 것 같다. 애플이 먼저 퀵링크 기능을 구현한 뒤 삼성이 따라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문학에 비유하자면, 애플의 문장이나 플롯을 삼성이 그대로 도용한 형국이다. 물론 애플 주장이 그렇단 얘기다.

애플의 데이터 태핑 특허권 개념도. (사진=미국 특허청)

하지만 삼성 얘긴 조금 다르다. ‘퀵링크’ 자체는 더 이상 고유한 아이디어로 독점해선 안 된다는 게 삼성 논리다. 역시 문학에 비유해보자. 퀵링크는 이를테면 ’잃어버린 성궤를 찾는’ 플롯 같은 차원이란 주장인 셈이다. 그 정도는 이젠 공동 아이디어로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신 삼성은 ‘잃어버린 성궤를 찾는 플롯’을 자기만의 이야기로 좀 더 정교하게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서버 단에서 ‘퀵링크’ 기능을 구현하는 애플과 달리 자신들은 애플리케이션에서 비슷한 기능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애플 특허와는 별개 기술이란 게 삼성 논리다.

두 주장을 가려내는 건 쉽지 않다. 미국 법조계에서조차 상반된 의견이 팽팽하게 맞설 정도다.

■ 치열한 특허공방, 승패 못지않게 논리에도 관심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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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난 삼성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건 아니다. 난 지금 특허 공방이란 게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로만 판단하기 힘든 부분이 있단 얘길 하고 있다. 이건 문학에서 모티브나 플롯의 독점성을 어느 수준까지 인정할 것이냐는 것과 비슷한 공방이란 얘기다.

자, 글을 맺자. 거듭 얘기하지만 난 1심 판결이 삼성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나왔단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한 동안 계속될 특허 공방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 게 좋을 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 판결이 ‘특허 기술 무단도용 인정 범위’와 관련한 중요한 잣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