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와 모바일 스토리텔링

데스크 칼럼입력 :2015/08/12 10:59    수정: 2015/08/12 11:0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텔레비전 등장 초기를 떠올려보자. 그 땐 영상 뉴스 진행 경험 있는 기자들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라디오나 신문 출신 기자들이 주축을 이룰 수밖에 없었다.

텔레비전 뉴스의 최대 강점은 ’영상’이다. 하지만 그 무렵 기자들에겐 오히려 애물단지였다. 글과 말로만 뉴스를 전달하는 데 익숙했기 때문이다.

미셸 스티븐스의 <뉴스의 역사>가 들려주는 초기 텔레비전 뉴스 풍경은 흥미롭다. 어찌할 바 몰랐던 기자들은 아나운서 뒤에 성조기를 가져다놨다. 그런 다음엔 선풍기를 이용해 성조기가 펄럭이게 만들었다. ’심심한 화면’에 뭔가 변화를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현장을 담은 영상을 내보내거나, 앵커가 직접 사건 현장에서 뉴스를 진행하는 건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다. 하다못해 자료 화면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영상뉴스의 기본 문법이 정착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다.

카드뉴스 원조인 복스의 카드스택. (사진=VOX)

■ 모바일 플랫폼에 적합한 깔끔한 스토리텔링

테크놀로지 측면에서 요즘 저널리즘 현장의 고민거리는 모바일이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트래픽 포트폴리오 역시 과제로 꼽힌다. 모바일에 최적화된 뉴스를 만들기 위해 각종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최근 가장 인기를 끄는 형식은 역시 카드뉴스다. 미국의 복스뉴스가 지난 해 ’카드 스택’을 처음 선보인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카드뉴스는 사진을 한 장씩 넘겨가면서 볼 수 있도록 돼 있는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을 잘 활용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꼽힌다.

올 들어선 국내에서도 경쟁적으로 카드뉴스를 만들고 있다. 웬만한 매체 중 카드뉴스를 하지 않는 곳은 없을 정도다. 특히 SBS의 ‘스브스뉴스’는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팬덤현상까지 만들어냈다.

교육방송의 인기 프로그램인 지식채널e. (사진=EBS)

기자는 처음 카드뉴스를 보면서 어디선가 많이 본 형식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곤 이내 카드뉴스의 ‘또 다른 원본’을 떠올렸다. 교육방송이 오래전부터 방송해왔던 ‘지식채널e’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식채널e’는 요즘 유행하는 카드 뉴스와 비슷한 형식이다. 사진에 간단한 텍스트를 곁들인 화면 몇 개를 카드 넘기듯 보여주는 형식이었다. 영상 문법이 지배하는 텔레비전에서 사진과 인상적인 스토리텔링을 곁들인 ‘지식채널e’는 꽤 흥미로웠다.

내가 ’지식채널e’를 눈여겨본 건 흥미로운 주제와 깔끔한 스토리텔링 때문이었다. 영상으로 가득한 텔레비전에서 사진으로 구성된 스토리가 나오는 게 흥미롭긴 했지만, 그런 ‘낯설게 하기’는 잠깐이었다. 이후엔 얼마나 재미있거나 유익하냐가 관전 포인트였다.

요즘 유행하는 카드뉴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카드뉴스이기 때문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카드뉴스에 적합한 스토리를 흥미롭게 잘 담아낸 것이 주된 경쟁 포인트다. 물론 '지식채널'과 달리 소셜 미디어를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경쟁 포인트로 꼽을 수 있다.

■ 형식의 확장 보다 더 중요한 건 스토리의 힘

예를 들어보자. SBS 스브스뉴스에서 흥미롭게 본 카드뉴스 중 하나가 ‘최저 시급으로 '밥상 차리기'…각 나라별 사진 화제’란 기사였다.

이 기사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최저 시급’으로 살 수 있는 물건들을 모은 사진으로 구성돼 있었다. 크라우드 소싱 방식을 곁들인 카드뉴스였던 셈이다. 실제로 이 기사는 전통 형식으로 취재할 경우 훌륭한 기획 보도물이 될 수도 있어 보였다.

페이스북 공간에서 많은 화제를 모으는 머니투데이의 ‘T타임스’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외신 비중이 높은 ‘T타임스’ 역시 흥미로운 소재를 모바일 환경에서 잘 읽을 수 있게 버무려냈다. 모바일 친화적인 스토리텔링을 잘 구현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디넷코리아의 카드뉴스.

12년 전 난 <인터넷신문과 온라인 스토리텔링>이란 책 서문에서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쓴 적 있다.

“(온라인 스토리텔링의 두 축은 멀티미디어와 링크다.) 멀티미디어성이 기사 형태의 확장이라면, 링크는 기사 내용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란 명제가 성립되는 만큼이나 ‘온라인 미디어는 기존 미디어의 확장’이란 등식 역시 설득력을 갖는다. 온라인 스토리텔링이란 개념의 밑바탕에는 이처럼 전통적인 기사 형식의 확장이란 문제 의식이 깔려 있다.”

요즘 유행하는 카드뉴스를 보면서 그 때 썼던 글이 떠올랐다. 난 카드뉴스가 ‘전통적인 기사 형식의 확장’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특히 모바일 플랫폼을 잘 활용한 기사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카드뉴스가 사랑을 받는 건, ‘뉴스를 카드로 나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카드에 적합한 뉴스를, 카드에 적합한 방식으로 ‘스토리텔링’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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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뉴스의 개념과 범위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진리다. 그런 전제 하에 한 마디로 결론을 맺자.

카드뉴스에서도 중요한 것은 ‘카드’가 아니다. 뉴스가 핵심이다. 그리고 그 뉴스를, 어떻게 스토리텔링 하느냐가 진정한 경쟁 포인트가 될 것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