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인터넷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이유

전문가 칼럼입력 :2015/03/24 10:55

조중혁
조중혁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과학사를 연구 중인 예브게니 모로조프(Evgeny Morozov )가 ‘뉴욕 타임스’, ‘가디언’ 등에 기업 중심의 인터넷 문화를 비판하며 인터넷이 거대 기업들의 소유가 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가 특히 비판하는 부분은 인터넷의 지나친 상업화로 인해 인터넷의 자유가 축소되는 현실이었다. 기업들은 정보를 조작하기 위해 블로거를 매수 해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 진짜 인터넷의 자유와 정보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 되고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보고 배운 국가도 과거와 같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를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매수와 조작 등의 전략으로 발 빠르게 바꾸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과거처럼 지식인들, 비판론자들, NGO, 시민단체의 구성원들에게 힘을 부여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터넷 자유주의 운동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사실 인터넷 자유주의 운동은 역사가 오래 되었다. 인터넷 초창기 시절에는 폭넓은 지지를 받았으나 인터넷이 대중화, 상업화 되면서 지금은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으나 ‘예브게니 모로조프’의 주장으로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역사는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혁명 같은 혁명을 통해 국가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획득해 가며 발전했다. 하지만, 현대 국가는 더 이상 혁명을 용납하지 않는다. 제도의 안정성을 중시하며 사회 문제점을 일부 인정하며 제도를 수정하는 정도만 허용한다. 하지만, 사회의 안정성을 중요시하게 생각하자 국가로부터의 개인의 자유는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든 구조가 되었다. 오프라인에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자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오프라인을 넘어 당시 막 생기기 시작한 사이버 세상에서 자유를 꿈꾸었다. 국가를 초월해, 국가로부터 완벽한 자유를 보장 받기를 원했다. 인터넷 자유주의가 생긴 배경이었다.

과거, 인터넷 자유는 국가로부터의 독립을 뜻했다. 인터넷 세상에서 국가로부터의 자유 지키기 위해 사용한 대표적 슬로건은 ‘Information wants to be free’로, 인터넷 자유주의 운동을 상징한다. 인터넷 자유주의 운동을 이끄는 스튜어트 브랜드 (Stewart Brand)가 사용한 말이다. 그는 1968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에서 ‘Whole Earth Catalog’ 라는 잡지를 발행했다. 당시 유행했던 히피 문화의 편승 해 마니아적인 문화 정보를 다루었다. 컴퓨터가 대중화 되기 이전 시대로 컴퓨터 역시도 일부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Whole Earth Catalog’에서 자주 다루던 아이템이었다.

자연스럽게 이 잡지는 초기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큰 영향력을 주었다. ‘Whole Earth Catalog’를 창간 한 스튜어트 브랜드는 1985년 세계 최초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WELL을 만들기도 하였다. 현재 우리가 온라인에서 만나는 다양한 문화는 WELL에서 파생 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Information wants to be free’은 1960년대부터 사용하던 슬로건이었으나 1984년 해커스 컨퍼런스(Hackers' Conference)에서 스튜어트 브랜드와 애플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이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나와서 더 유명해지며 온라인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슬로건이 되었다.

최초의 인터넷 자유주의는 인터넷을 만든 과학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상징적 사건은 ‘존 포스텔(Jon Postel) 사건’이 있다. 존 포스텔은 초기 인터넷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과학자로 도메인 기술을 개발했다.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IANA에 근무하며 도메인과 IP 정책을 그가 대부분 설계하고 관리했다. 하지만, 인터넷의 중요성이 커지자 미국 정부는 자신들의 비용으로 인터넷이 연구 개발 되었다는 명분으로 도메인과 IP 정책에 대한 권한을 그에게서 빼앗아 가져가 버렸다.

이에 존 포스텔은 TCP/IP를 개발해 인터넷의 아버지로 추앙 받고 있는 빈트서프 (Vinton Gray Cerf) 등 초기 인터넷 과학자들을 모아 1992년에 ‘인터넷 소사이어티’라는 인터넷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범세계적인 민간 단체를 만들어 미 정부로부터 독립하려고 했다. 존 포스텔은 IP주소와 DNS 같은 중요 정책 결정은 미 정부와 독립된 국제적 단체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터넷 소사이어티는 IP주소와 도메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전세계 주요 상표권자들과 협력하기로 하였으며 미국 대형 통신사인 MCI와 대형 IT 기업인 디지털이큅먼트 등과도 협력을 해 미국 정부로부터 인터넷을 독립시키려고 했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인터넷 소사이어티의 활동과 그들의 협약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항의해 존 포스텔은 자신의 컴퓨터를 전 세계 인터넷의 루트 서버로 바꾸는 도발을 감행했다. 미국 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존 포스텔을 압박했고, 이에 위기를 느낀 그는 루트 서버를 다시 미국 정부로 돌려 놓았다.

1990년 대 중반 인터넷 사용자가 점차 늘어나면서 인터넷 자유는 과학자에서 사용자들이 주도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대표적인 인물은 스튜어트 브랜드가 만든 WELL에서 활동하며 초기 사용자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았던 존 페리 (John Perry Barlow)였다. 인터넷 자유 운동을 위해 전자프론티어재단 (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 을 설립한 그는 1996년 2월 8일 ‘사이버 독립 선언 (A Cyberspace Independence Declaration)’ 이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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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세계의 정부야, 나는 마음의 새로운 고향인 사이버스페이스로부터 왔다. 미래의 이름으로 과거의 망령에게 명령한다. 우리를 건드리지 말아라’ 라로 시작하는 한 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이었다. 하지만 짧은 글과는 반대로 큰 관심을 받으며 인터넷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글이 되었다. 이 글에서 그는 인터넷은 현실 세계의 법과 질서로는 간섭 할 수 없는 공간으로 국가로부터의 완벽한 독립을 주장했고, 이 주장은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2000년 들어 인터넷 자유주의 운동은 인터넷에 다양한 국가가 참여하고, 다양한 집단들이 참여하면서 더 이상 미정부의 영향력 행사가 어려워 질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점점 힘을 잃었다.

다시 인터넷 자유주의를 생각 할 때가 되었다. 인터넷 자유주의 운동을 사라지고, 인터넷은 우리 삶으로 깊이 들어왔다. 지나친 상업화는 거대 기업의 참 모습을 감출 수 있게 되었고, 국가로부터의 독립은 오히려 국가의 여론조작이라는 부작용을 만들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터넷 자유주의 운동이 새롭게 관심 받고 있다. ‘예브게니 모로조프’가 주장하는 것처럼 인터넷을 다시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 아쉽게도 그 역시도 구체적인 방법은 이야기하지 못한다. 인식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같이 고민 할 수 밖에 없는 시점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종혁 IT컬럼니스트

문화체육부 선정 '올해의 우수 도서'로 선정 된 ‘인터넷 진화와 뇌의 종말' 저자이다. 96년 국내 최초 인터넷 전문지였던 '월간 인터넷' 기고로 글쓰기를시작하였다. 02년 '서울시청 포털' 메인 기획자로 일을 했다. '서울시청 포탈'은 UN에서 전자정부 세계 1위로 대상을 수상해 우리나라 전자정부의 기틀이 되었다. 미래부 '월드IT쇼' 초청 연사, 콘텐츠진흥원 심사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이동 통신사 근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