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뷰징 시대' 기사 제목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

데스크 칼럼입력 :2015/03/18 16:58    수정: 2015/03/18 17:3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내용을 충실하게 반영해야 할까? 아니면 호기심을 유발하는 게 좋을까?

기자 초년병 때 몇 년 동안 편집기자로 활동했습니다. 그 무렵 몇몇 동료들과 '기사 제목의 효용’을 놓고 토론한 적 있습니다. 젊고 혈기 왕성했던 우리는 당시 속에 품고 있던 얘기들을 서로 직설적으로 나눴던 것 같습니다.

그 때 토론했던 내용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어떤 기자들은 제목은 기사 내용을 최대한 잘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또 다른 기자들은 제목은 제2의 창조라고 맞섰습니다. 때론 취재 기자를 리드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내용을 충실하게 요약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일반 독자들이 기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기자들도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답이 없는' 논쟁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분명하게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인터넷신문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편집기자들이 요즘 같은 제목 낚시질은 생각도 하지 않을 때였습니다.

■ IT 큐레이션 사이트 테크밈의 고민

케케묵은 '제목 논쟁'을 떠올린 건 미국 포인터연구소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사에 따르면 미국의 대표적인 IT 큐레이션 사이트인 테크밈(Techmeme)의 최고경영자(CEO)가 기사 제목에 대해 중요한 화두를 던졌습니다.

참고로 테크밈은 미국 IT 종사자들 사이에서 꽤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사이트입니다. 우리나라 포털 만큼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트래픽 폭탄을 선사해주는 사이트입니다. IT 매체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이트입니다.

테크밈은 초기에는 제휴 사이트 기사를 표출할 때 원 제목 그대로 노출했습니다. 하지만 2013년 9월부터 이런 정책을 바꿨습니다. 이젠 표출 제목은 '마음대로' 수정하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은 간단합니다. 3월 들어 테크밈이 큐레이션한 기사 중 제목을 수정한 것이 61%에 이른다는 내용입니다. 10개 중 여섯 개의 제목을 고친 뒤에 게재한다는 얘깁니다.

테크밈을 이끌고 있는 가베 리베라 CEO는 포인터와 인터뷰에서 제목을 수정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모호하거나 두루뭉수리한(vague and unspecific)’ 제목을 주로 수정하고 있다는 겁니다. 제목을 엉뚱하게 달면 독자들이 기본적인 내용을 접하기 위해 페이지가 로딩되는 시간동안 기다려야만 한다는 얘기도 하고 있습니다. 더 나쁜 경우엔 독자들이 (제목에서) 기대했던 것과 딴판인 내용을 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겁니다.

리베라는 아예 클릭 낚시질(clickbait)은 독자들이 아니라 언론사만 위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언론사들에 가장 뉴스 가치가 많은 부분을 제목으로 뽑아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도 흥미롭습니다. 나인투파이브맥, 테크크런치, 벤처비트 같은 IT 전문지들이 테크밈 편집자들이 높이 평가하는 제목을 잘 달아준다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대형 미디어들은 테크밈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제목을 잘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무래도 좀 더 넓은 범위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다 보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리베라 CEO는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 같은 매체들은 사실을 좀 더 직접적으로 전해주는 제목은 수준 낮은 사람들의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구요.

제목, 기사 내용 요약일까? 관심끄는 부분 부각일까?

요즘처럼 '어뷰징'과 '낚시질'이 난무하는 시대에 좀 한가한 얘기인가요? 하지만 테크밈 CEO의 제목 얘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어떤 형태로든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야만 하는 기자 입장에선 깊이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에 대해선 아직 딱 부러진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목만 보면 기사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과연 옳은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 물론 '헐' '허걱' 같은 과도한 감정표출 언어나, 과도하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이 옳다는 얘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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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목이 더 중요해진건 아무래도 기사를 접하는 입구가 좁기 때문일 겁니다. 제목만으로 읽을지 말지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사 제목은 내용을 충실하게 요약해줘야 한다고 보세요? 아니면 본문 내용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을 부각시켜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세요?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