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바보처럼 보이는걸 두려워말자

전문가 칼럼입력 :2015/02/17 09:18    수정: 2015/02/17 09:39

임백준
임백준

존 썬메즈(John Sonmez)가 쓴 '소프트 기술'(Soft Skills)이라는 책이 있다. 부제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위한 인생 매뉴얼”이다. 썬메즈는 이 책이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프로그래머 자신을 다루는 책이라고 말한다. 우리말로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내용은 71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크게 경력, 마케팅, 학습, 생산성, 재산관리, 건강관리, 영혼이라는 7개의 큰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개발자의 입장에서 장기적인 경력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스스로를 어떻게 마케팅 할 것인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기술을 어떻게 학습할 것인가 등을 이야기한다. 노후연금을 비롯한 재산관리 방법과 건강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가까지 말하는 이 책은 언뜻 보면 흔한 인생 매뉴얼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다. 하나마나한 소리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오랜 개발 경험을 통해서 길어 올린 통찰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개발자가 시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형태는 (미국에서는) 샐러리맨, 독립적인 컨설턴트, 기업인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월급을 받는 길을 선택하면 안정성은 올라가지만 성공했을 때 갖는 파이가 작다. 반면 자기 회사를 경영하면 적지 않은 위험이 따르지만 성공했을 때 갖는 파이가 커진다. 상식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썬메즈는 월급을 받는 개발자들에게 자기가 회사에 소속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틀에서 벗어나라고 주문한다. 대신 자기 회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계약을 맺는 서비스 업체의 CEO라고 생각하라고 말한다.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샐러리맨의 소극적 태도보다 비즈니스 오너들이 가진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월급은 내 회사(즉, 나 자신)가 제공한 서비스에 대해서 지불되는 서비스 사용료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개발자는 자신의 운명을 회사의 운명과 동일시하는 착각을 범하지 않는다. 오너들이 회사의 발전과 성장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처럼, 자기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과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방법을 (회사의 CEO처럼) 고민한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비교해 놓은 대목도 흥미롭다.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에서 아마추어와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썬메즈의 구분이 가슴이 와 닿을 것이다. 나 역시 다양한 모습의 아마추어들을 만난 경험이 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내가 아마추어로 보일지 모르는 일이지만, 돈을 받고 개발을 하는 ‘프로페셔널’ 개발자 중에는 생각보다 아마추어가 많다. 썬메즈는 아마추어의 틀을 벗어나서 진정한 프로가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을 꼽는다.

“진짜가 될 때까지 진짜처럼 행동하라 (Fake it till you make it)”는 원리는 프로그래밍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널리 회자되는 행동요강이다.

-성공을 위해서 필요한 기술과 재능을 이미 갖추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라.

-되고 싶은 부류의 사람이 이미 된 것처럼 행동하라.

-승부가 이미 끝났으며 자신이 크게 승리한 것처럼 행동하라.

-처음 가보는 길을 이미 여러 번 왕래한 길인 것처럼 여기며 행동하라.

거짓말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현가능한 목표를 정하고, 목표가 이루어질 때까지 열정적으로 ‘행동’하라는 이야기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예컨대 PHP만 사용하던 개발자가 좋은 자바 개발자 자리를 만났을 때, 나는 자바는 모르니까, 하고 움츠러들지 말고 오래 전부터 자바를 사용해온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다. 생애 처음으로 강연 요청이 들어왔을 때, 내가 무슨 강연을, 하며 위축되지 말고 오래 전부터 강연을 다닌 사람처럼 행동하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다.

이 책에 담긴 71가지를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 '26장. 바보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만큼은 이야기하고 싶다. 말 그대로 남들에게 바보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내가 바보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이 칼럼을 쓸 수 없고, 책도 쓸 수 없고, 강연도 할 수 없다. 어쨌거나 내가 쓴 글을 읽고 비판하고 욕하는 사람은 존재한다. 아쉽지만 사실이다. 그렇지만 두렵지 않다. 비판과 욕과 긍정과 수긍이 공존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썬메즈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을 거두기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사람들 눈에 자기가 바보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 (중략) ..... 하지만 사람들 앞에 섰을 때 두 손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서 마이크를 손에 쥘 수조차 없다면,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간단하다. 신경 쓰지 않으면 된다. 사람들 앞에서 바보처럼 보이는 것을 신경 쓰지 않으면 된다. 사람들이 그대의 블로그 글을 읽고 완전히 잘못된 바보 같은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신경 쓰지 않으면 된다. 누군가 그대를 비웃는 것을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과 함께 소리 내어 웃으면 된다. 그뿐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인용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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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를 통틀어서 저는 9,000번의 슛을 실패했습니다. 300번 가량의 시합에서 패했고요. 동료들이 믿고 패스해준 마지막 슛 찬스를 26번이나 놓쳤습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저는 끊임없이 실패를 되풀이했습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저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 마이클 조던”

개발자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의 눈에 바보처럼 보이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그것은 번지점프와 같다. 저지르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후련하고 상쾌한 것을, 저지르지 못하고 망설이고 고민하다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개발자를 위한 인생 매뉴얼의 최고봉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두려움을 걷어내라. 더 많이 말하고, 질문하고, 저질러라. 바보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백준 IT컬럼니스트

한빛미디어에서 『폴리글랏 프로그래밍』(2014),『누워서 읽는 퍼즐북』(2010), 『프로그래밍은 상상이다』(2008), 『뉴욕의 프로그래머』(2007), 『소프트웨어산책』(2005), 『나는 프로그래머다』(2004), 『누워서 읽는 알고리즘』(2003), 『행복한 프로그래밍』(2003)을 출간했고, 로드북에서 『프로그래머 그 다음 이야기』(2011)를 출간했다. 삼성SDS, 루슨트 테크놀로지스, 도이치은행, 바클리스, 모건스탠리 등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맨해튼에 있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분산처리, 빅데이터, 머신러닝과 관계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