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란 뗏목을 이고 사는 사람들

데스크 칼럼입력 :2015/02/11 13:33    수정: 2015/02/11 15:3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최근 스마트폰을 바꿨다. 무려 4년 6개월 만이다. 오랜 만에 맛보는 상큼한 새 폰의 감촉이 정겹게 느껴진다.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새 폰을 장만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있다. 바로 든든한 보호 케이스 장만이다. 다이어리처럼 앞 뒤를 완전히 감싸주는 케이스였다.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를 '액정 파손'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소심한 마음이 작동했다.

평소 같으면 한번쯤 더 고민했을 테지만, 새 폰을 구입하고 보니 추가 지출에 대한 저항쯤은 쉽게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새 스마트폰을 보호하는 기능은 뛰어났지만, 정작 활용성은 떨어졌던 탓이다.

물론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앱을 쓸 때는 큰 문제가 없었다. 킨들을 활용하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진 탓에 앞 뒤면을 완전히 감싸주는 케이스가 그리 낯설 진 않았다.

■ '보호 본능' 때문에 불편 감수

문제는 통화를 할 때 발생했다. 앞 면을 덮는 케이스 때문에 폰을 들고 통화하는 것이 적잖게 불편했다. 사무실에서도 이런 판에, 하물며 이동 중엔 어떨까, 란 생각마저 들었다.

곰곰 따져보니 스마트폰을 바꾸기 전에는 굉장히 자유로웠던 것 같다. 4년 이상 쓰다보니 폰이 살짝 긁히는 정도엔 신경도 쓰지 않게 됐다. 게다가 케이스를 다 벗겨버린 덕분에 스마트폰 특유의 슬림한 그립감도 만끽할 수 있었다.

새로운 스마트폰으로 교체하면서 그런 맛이 사라졌다. 내가 구입한 폰은 제조업체가 그립감이 굉장히 좋아졌다고 자랑하는 제품이다. 하지만 난 스마트폰 보호를 위해 그립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몸체 뒷면의 고급스러운 골드 빛깔도 더 이상 내 눈에 띄지 않게 됐다. 대신 짙은 고동색 계통의 케이스만 눈에 들어온다. 보호 필름을 붙이지 않은 탓에 고해상 화면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룻 동안 애지중지 새 스마트폰을 다루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어느 순간 기계의 노예가 되는 것 같아 살짝 기분이 나빠지기도 했다.

생각의 꼬리는 ‘뗏목을 이고 가는 사람들’이란 고사까지 이어졌다. 대충 이런 얘기다.

뗏목을 머리에 이고 가는 사람을 본 어느 현자가 물었다. 강을 다 건넜는 데도 왜 뗏목을 버리지 않느냐고. 그러자 그 사람은 강이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고 간다고 답했다. 그래서 쓸 데 없는 짐을 버리지 못하고 부여잡고 있는 상황을 빗대 흔히 ‘뗏목을 이고 간다’고 표현한다.

■ 뗏목을 과감하게 벗어 던질 때가 올까

요즘 우리에게 스마트폰이 ‘머리에 이고 가는 뗏목’ 같은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편의성을 추구해야 할 기기가 어느 순간 우리를 옥죄는 사치품으로 바뀐 듯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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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하기 전엔 두께를 따지고, 해상도를 따지다가도 막상 손에 넣은 뒤에는 두툼한 케이스로 꽁꽁 싸매고 다니는 게 살짝 우습단 생각도 든다. 스마트폰이란 뗏목을 계속 머리에 이고 사는 것만 같아서다.

언제쯤이면 뗏목을 과감하게 버리듯 스마트폰을 좀 더 실용적으로 대할 수 있을까? 혼자 되뇌어보면서도 부질 없는 질문인 것만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난 앞으로도 한참 동안 두툼한 케이스에 더 의존하고 있을 것만 같아서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