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저널리즘, 위기일까 기회일까

AP 로봇 기자 실험 기대보다 성공적

데스크 칼럼입력 :2015/01/30 10:11    수정: 2015/01/30 10:2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한 때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세계는 평평하다'는 책이 인기를 끈 적 있다. 유행을 따라 그 책을 읽으면서 몇몇 대목에선 무릎을 쳤던 경험도 있다. 그 때 내 눈에 확 들어온 구절이 있었다. 자신의 일을 아웃소싱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대목이었다. 그 이유도 명확했다. 평평한 세계에서 한 사람의 경제적 자유는 다른 이의 실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기자는 ‘아웃소싱 가능한 직업’일까?란 질문. 10년 쯤 전이었다면 “절대 불가”를 외쳤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현재 기자들이 하고 있는 업무 중 상당 부분은 아웃소싱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AP의 로봇 기자 실험, 기대보다 훨씬 성공적

오늘 외신 기사를 읽다가 어떤 기사가 눈에 확 들어왔다. AP통신이 6개월 전인 지난 해 7월 도입한 로봇 기자가 제법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매 분기 실적 관련 기사를 3천 여 건 가량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발표된 애플의 분기 실적을 보도하는 AP의 첫 기사도 로봇이 자동 작성했다. 그 기사를 찾아서 읽어봤다. 특별한 분석 없이 키포인트를 간략하게 요약해주고 있었다. 주요 실적 지표에 주가 추이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끝 부분에 있는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가 잭스 투자 리서치 자료를 활용해서 작성했다”는 문구만 없다면 기사 작성 주체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기 힘들 것 같았다. 통상적인 실적 관련 기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단 얘기다.

AP통신이 로봇 기자를 활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기본 자료는 잭스 투자리서치에 있는 실적 관련 데이터다. 이 자료를 토대로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의 로봇 기자 알로리즘이 기사로 만든다.

AP는 실적 발표 기사에 한해 로봇에게 맡겼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기사 건수 확대. AP는 지난 7월 “로봇 알고리즘을 이용할 경우 실적 관련 기사가 지금보다 10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했다. 그 동안 매 분기 기업 실적 관련 기사를 300건 정도 처리했는데, 로봇에게 맡길 경우엔 4천400건 정도로 늘릴 수 있을 것이란 게 당시 AP의 예상이었다.

2개 분기 정도 시행해 본 결과는 어땠을까? 외신들에 따르면 AP는 매분기 실적 관련 기사를 3천 건 가량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4천400건에는 못 미치지만 당초 목표로 내세웠던 ‘콘텐츠 건수 10배’는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두 번째 이유가 더 중요하다. 단순 실적 처리 기사를 로봇에게 넘긴 뒤 ‘사람 기자’들은 좀 더 인사이트 있는 분석기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얘기였다. 이를테면 실적 수치가 의미하는 것이라든가, 트렌드 기사를 쓰는 데 주력하겠다는 얘기였다.

그 부분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는지 알 방법은 없다. 그건 AP통신의 기사를 비교 분석하거나, 내부 평가를 들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의 성과를 거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로봇이 자신들의 일상 업무 중 상당 부분을 가져간 마당에 어떤 기자가 긴장하지 않겠는가? 생산성 없는 일을 하게 되면 곧바로 로봇에게 아웃소싱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 기자들이 로봇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건 아닐까?

AP통신 얘기를 들으면서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우리가 일하는 방식 중 상당 부분은 로봇으로 대체 가능한 것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각종 보도자료를 처리하는 일이라면 정교한 알고리즘만 있다면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부 매체들이 트래픽을 올리기 위해 쏟아내는 검색어 기사는 어떨까? 이건 정말 로봇이 인간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봐야 한다. 소셜 분석 기법과 기사 작성 알고리즘을 잘만 조합하면 훨씬 신속하고 정확한 검색 키워드 기사를 쓸 수도 있다. 실제로 몇몇 스타트업 언론사들이 이런 실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AP가 로봇 기자를 도입한다고 선언할 당시 애틀랜틱이란 미국 잡지가 흥미로운 분석을 했다. 그 동안 AP통신이 실적 기사에 대해선 기자들에게 로봇 같은 방식으로 일하도록 했다는 것. 당시 애틀랜틱은 AP통신의 발표를 전해주는 기사가 전부 비슷비슷하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AP 보도 자료를 요약해주는 선에서 처리하다보니 제목부터 본문 내용까지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자, 이제 글을 맺도록 하자. 로봇 기자의 활약은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해 준다. 조금 식상한 표현이긴 하지만, 기자들에겐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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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를 리라이팅하거나, 검색어 기사를 쏟아내는 저널리즘은 분명 위기다. 프리드먼의 표현대로 아웃소싱 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만 한다. 반면 발상을 바꾸면 충분히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잡다한 업무에서 벗어나 좀 더 생산성 높은 기자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우리에겐 조금 먼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충분히 실현 가능한 얘기다. 그러니 기자들의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남 얘기 할 때가 아니다. 나부터 그런 고민 좀 해야겠다. )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