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 입사하려면…좋은 스펙이 오히려 독?

전문가 칼럼입력 :2014/12/18 10:54    수정: 2014/12/19 17:34

임백준
임백준

뉴욕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구글에 취직하는 방법'(How to Get a Job at Google)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있다. 구글 채용과정을 총괄하는 라슬로 바크와의 인터뷰를 다룬 글인데, 칼럼에 따르면 바크는 이렇게 말했다.

"채용기준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후보자들이 대학에서 받은 학점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각종 시험성적 역시 의미가 없다. 우리는 그런 숫자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학점이나 시험성적만이 아니다. 구글은 후보자들이 졸업한 대학의 브랜드 가치도 (혹은 심지어 대학 졸업장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과 구글에서의 성공 사이에 특별한 함수관계가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크에 의하면 대학의 브랜드와 좋은 시험 성적은 독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똑똑한 사람들은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실패로부터 배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배우는 대신, 판단미스를 범한다. 성공을 거두면 자기가 천재이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실패를 거두면 다른 사람이 멍청하기 때문에 혹은 자기에게 충분한 자원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구글이 직원을 채용할 때 주목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숫자로 표현되는 외형적인 ‘스펙’이 아니라 소프트 기술(soft skills)이라고 불리는 자질이다. 프로그래머의 실력을 파악하기 위해서 코딩실력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밖에 리더십(leadership), 지적겸손(intellectual humility), 협동(collaboration), 적응력(adaptability)과 같은 자질을 중시한다. 이런 자질은 학교성적이나 브랜드와 직접적인 함수관계가 없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지적겸손이다. 그것은 몇 가지 속성을 합친 개념인데, 보기에 따라서 리더십, 협동, 적응력과 같은 다른 속성을 포함하기도 한다. 잘난 척 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말할 때의 겸손이 아니다. 그런 품성을 갖춘다면 좋은 일이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지적겸손은 구체적인 지적 ‘능력’을 가리킨다.

그 능력을 두 가지 정도로 설명하자면, 하나는 타인의 아이디어를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실수로부터 배우는 능력이다. 프로그래머들은 기술적인 논쟁을 할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하는 태도가 DNA에 각인되어 있다. 특히 IQ가 높고 성적이 좋은 사람일수록 타인의 아이디어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예를 들어서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중심이자 당대 최고의 해커로 손꼽히는 리처드 스톨만 같은 사람조차 이런 DNA의 작동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컴퓨터 세계의 흐름이 텍스트 기반 인터페이스에서 그래픽 기반으로 옮겨가고 있을 때 스톨만은 텍스트를 고집했다.

전 세계의 프로그래머가 이용하던 이맥스 편집기는 자바를 창시한 제임스 고슬링이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이용해서 업그레이드하기 전까지 스톨만의 고집에 묶여 텍스트 기반을 고수했다. 이맥스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적인 소프트웨어였다면 스톨만의 고집은 자존심의 훼손보다 더 큰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스톨만이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성격은 지적겸손과 거리가 멀다.

모든 사람이 구글에 입사하는 것을 목표로 생각할 이유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업계의 리더인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바크의 말에 의하면 구글은 특정한 기술을 깊게 아는 것을 뜻하는 ‘전문성(expertise)’에 낮은 비중을 둔다. 전문성보다는 부족한 정보를 토대로 최선을 판단을 내리는 적응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식을 빨리 흡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은 더 중요하다. 지식이 아니라 메타지식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지적겸손은 태도나 품성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메타지식 능력을 일컫는 말이다. 프로그래머가 다루어야 하는 정보의 량이 과거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의미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팀이 공동으로 작업해야 하는 요즘에는 탁월한 전문성을 갖췄지만 지적겸손이 부족한 리처드 스톨만보다 전문지식은 부족해도 새로운 것을 빨리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프로그래머가 요구된다.

타인의 아이디어가 자기 생각보다 낫다고 판단되면 즉각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실수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로부터 배우기를 즐기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마치 무협지에 등장하는 북명신공이나 흡성대법과 비슷하다. 타인의 내공을 빨아들여서 자신의 내공을 키운다. 제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주변 사람들의 내공을 빨아들이면서 성장하는 사람을 당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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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폴리글랏 프로그래밍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언어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어떤 언어를 얼마나 빨리 배울 수 있는가”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빅데이터, 머신러닝, 반응형, 사물인터넷, 멀티 플랫폼의 시대에는 하나의 지식이 생명을 다하는 주기가 짧다. 죽은 지식을 버리고 산 지식을 받아들이는 속도와 능력이 중요한 이유다.

구글이 이렇게 대학의 브랜드나 성적표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이유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지식보다 메타지식이 중요해지는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교육이 강조되고,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을 국가적 과제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우리가 좇고 있는 것은 죽은 지식인가 산 지식인가. 지식인가 메타지식인가. 우리가 오늘 무엇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10년 뒤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모습을 완전히 달리하게 될 것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백준 IT컬럼니스트

한빛미디어에서 『폴리글랏 프로그래밍』(2014),『누워서 읽는 퍼즐북』(2010), 『프로그래밍은 상상이다』(2008), 『뉴욕의 프로그래머』(2007), 『소프트웨어산책』(2005), 『나는 프로그래머다』(2004), 『누워서 읽는 알고리즘』(2003), 『행복한 프로그래밍』(2003)을 출간했고, 로드북에서 『프로그래머 그 다음 이야기』(2011)를 출간했다. 삼성SDS, 루슨트 테크놀로지스, 도이치은행, 바클리스, 모건스탠리 등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맨해튼에 있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분산처리, 빅데이터, 머신러닝과 관계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