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과 MS, 14년 만의 묘한 데자뷰

데스크 칼럼입력 :2014/11/24 18:21    수정: 2014/11/24 18:3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뉴 밀레니엄'의 감격이 채 가시기 전인 지난 2000년 3월. 미국 연방법원은 깜짝 놀랄 판결을 내놓는다. 당대 최고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를 두 개로 분할하라는 판결이었다. 윈도 운영체제(OS) 부문과 애플리케이션 부문을 각각 별도 회사로 쪼개도록 한 것이다.

미국에선 1982년 장거리 전화회사인 AT&T를 두 개로 쪼갠 이래 18년 만에 나온 판결이었다. 그러다보니 판결을 주도했던 토머스 펜필드 잭슨 판사는 졸지에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돼 버렸다.

MS가 분할 판결을 받은 건 '브라우저 끼워팔기' 때문이었다. 당시 MS는 PC 운영체제(OS) 시장의 95%를 독식하고 있었다. 이 힘을 바탕으로 윈도에 익스플로러 브라우저를 기본 탑재하면서 경쟁업체들을 압살했다. 그 대표적인 피해자가 바로 마크 앤드리센이 이끌던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였다.

■ 분할될 뻔한 MS, 분할될 것 같지 않은 구글

케케묵은 MS 분할 판결 얘기를 꺼낸 건 최근 유럽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구글 분할론’ 때문이다. 유럽의회가 최근 검색 시장에서 반독점적 행위를 일삼고 있는 구글을 두 개로 분할하자는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검색 사업과 나머지 사업으로 회사를 분할하자는 발상이다.

구글 분할 논쟁은 14년 전 MS를 둘러싼 공방과 묘하게 닮았다. 운영체제와 검색이란 관문 역할을 하는 플랫폼의 위세를 앞세워 경쟁 업체들을 부당하게 차별했다는 혐의는 빼닮은 듯이 닮았다. 분할하겠다고 기세등등하게 달려들고 있지만, 회사가 분할될 것으로 믿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도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물론 한 가지 차이점은 있다. MS를 분할하려고 시도한 것은 미국 정부였다. 반면 구글은 대서양 건너 유럽 쪽에서 분할론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구글은 이미 지난 해 초 미국에선 면죄부를 받았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유럽이 구글을 분할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유럽의회가 분할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미국 쪽에선 코웃음을 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유럽의회의 ‘구글 분할’은 상징적 조치라고 봐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유럽의 공세에 직면한 구글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물론 알 수 없다.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MS 사례를 통해 간접적으로 짐작해볼 수는 있다.

MS는 일단 법적인 공세는 피해가는 데 성공했다.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것. 그리고 1년 뒤엔 회사를 분할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받아냈다. 1년 사이에 시장 상황이 달라진 것이 항소심 판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 20세기 최고 기업 MS, 반독점 공방 이후 크게 위축

구글도 마찬가지 행보를 보일 것이다. 설사 분할 명령을 받더라도 제소를 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면 상황이 달라지면서 흐지부지 되고 만다. IT 시장의 대형 소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굳이 따지자면 삼성과 애플 간 특허 소송도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전혀 문제가 없는 걸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 부분은 미국의 IT 전문 사이트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잘 지적해주고 있다. 그 부분을 살짝 옮겨보자.

MS는 반독점 공방 때문에 알게 모르게 많이 위축됐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MS는 반독점 공방 전엔 윈도에 빙 검색 엔진을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만약 그랬더라면 ‘검색 제왕’ 구글이 탄생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브라우저 반독점 공방 이후 MS는 그 계획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익스플로러 사업도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났다. 반독점 공방 와중에 점유율을 높이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덕에 파이어폭스나 크롬 같은 경쟁제품들이 시장에서 속속 자리를 잡았다.

외부적인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MS가 PC에 안주하고 있는 사이에 시장의 무게 중심은 모바일과 태블릿 쪽으로 급속하게 기울었다. 2007년까지만 해도 인터넷 접속의 90% 이상은 윈도 PC를 통해 이뤄졌다. 이제 그 비율은 15%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더 이상 독점 운운할 필요가 없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변화를 몰고 온 것은 정부의 규제가 아니었다. 기술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나가면서 순식간에 패러다임이 달라져 버린 때문이다.

참고로 2000년 MS 분할 판결을 했던 토머스 잭슨 판사도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는 지난 해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구글은 검색 시장에선 절대 강자다. 웹 트래픽의 상당 부분은 구글 검색을 통해 이뤄진다. 덕분에 구글은 인터넷 광고 시장에서도 절대 강자다. 안드로이드를 앞세워 모바일 OS 시장에서도 실력자 노릇을 하고 있다. 크롬은 데스크톱 시장에서 익스플로러를 제쳤다. 2000년 당시 MS 못지 않은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다.

■ 구글을 위협하는 건 오히려 법정 바깥의 변화

그런만큼 구글에게 MS는 반면교사가 되기도 충분하다. 구글 입장에선 유럽 당국의 규제 압박에 맞서면서 페이스북이 만들어나갈 새로운 패러다임에도 대응해야 한다.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웹 대신 앱이 지배적인 플랫폼 역할을 하는 상황도 염두에 둬야만 한다. 그럴 경우 순식간에 구글이 뒷전으로 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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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회사 분할’ 압박을 받았던 MS가 지금은 오히려 독점 기업에 맞서는 형국이 된 상황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MS는 지난 2011년 구글이 검색 시장에서 반독점적 행위를 하고 있다면서 유럽에 제소를 했다. MS 입장에선 격세지감이란 말이 절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어쨌든 유럽 의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구글이 분할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애초 불가능에 가까운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독점 공방이 당대 최고 실력자 구글의 행보에 족쇄가 될 가능성은 적지 않아 보인다. 구글 역시 어쩌면 그 점을 더 두려워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14년 전 MS를 통해 한 차례 학습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