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 나도 포르노 스타에게 배웠다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 스토리텔링 인상적

데스크 칼럼입력 :2014/11/18 09:56    수정: 2014/11/21 15:2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T 외신을 담당하는 기자로서 관심을 갖는 주제 중 하나가 '망중립성'이다. 국내에 미치는 정책적 시사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인터넷을 규정하는 철학적 기반과도 연결돼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망중립성 논쟁과 관련된 소식이 나오면 웬만하면 기사로 소화하는 편이다.

물론 망중립성 기사는 많이 읽히진 않는다. 어려울 뿐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와 관련된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적 가치에 비해선 수요가 많지 않은 이슈인 셈이다.그런데 요 며칠 사이에 망중립성 기사 하나가 포털과 SNS를 중심으로 화제가 됐다. 포르노 스타들이 직접 나서 망중립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설명했다는 기사였다. Funny or Die란 사이트에 올라온 동영상을 토대로 매셔블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이 보도한 기사였다.

처음 이 기사가 화제가 되는 걸 보면서 살짝 불편했다. 독자들에겐 좀 미안한 얘기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생각까지 했다. 왜 내가 애써서 쓴 기사는 홀대받고 있는데, 포르노 스타들이 옷 벗고 나왔다니까 이 난리들인가란 생각까지 했다.

■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 스토리텔링 인상적

그런데 오늘 아침 출근 길에 “대체 어떤 동영상이기에?”란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관련 기사와 영상을 찾아서 어떤 내용인지 살펴봤다.

이를테면 이런 설명들이 담겨 있었다. 망중립성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돈 있는 사업자는 ‘급행회선’을 만들 수 있다. 그럴 경우 SNS도, 스트리밍도, 포르노도 느려진다는 의미다.

더 적나라한 설명도 있었다. 망중립성은 거대한 XX파티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원칙이 없다면 부자들만의 파티가 된다.

물론 노골적이다.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긴 하지만, 일할 때 복장(?)으로 나와 있어서 보기에 따라선 선정적일 수도 있다.하지만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쏙쏙 들어왔다. 추상적인 망중립성 얘기를 아주 구체적으로 풀어주고 있었다. (물론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측면은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그 부분까지 기대할 순 없을 것이다.)

포르노 스타들의 망중립성 강의(?)를 접하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 IT 기자로서 독자들에게 이 사안을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란 반성. 생활 속에서 우러나는 설명을 하는 포르노 스타들만큼 스토리텔링에 신경을 쓴 적 있었던가, 라는 반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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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난 이렇게 선언했다. “그래, 내가 졌다.”고. 그리고 이렇게 되뇌어봤다. “어려운 사안도 쉽게 풀어주는 것. 그게 진정한 고수다.”고.

오늘 아침 난 솔직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포르노 스타들과의 ‘망중립성 강의 배틀(battle)’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다고. 그리고 이 패배는 앞으로 복잡한 IT 이슈를 쉽게 풀어쓰는 길라잡이로 삼겠노라고.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