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전자문명의 불씨 진공관⑨증폭진공관

일반입력 :2014/04/13 15:15    수정: 2014/04/26 18:18

이재구 기자

■귀큰 미국인의 증폭진공관 진공관...라디오시대의 물꼬

1904년 마르코니는 자사의 고문이던 앰브로즈 플레밍박사가 발명한 2극 진공관 특허권을 넘겨 받아 이를 자신의 무선 수신기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주목할 만한 특징은 교류전류를 직류로 바꾸어 주는 이른바 ‘정류(rectifying)’기능 실현이었다. 라디오 수신기로 무선전파 정보가 전달되려면 1초에도 수천번씩 양전류와 음전류를 오가는 교류신호를 통해야 했다. 이 전파가 안테나에 포착돼 수신기로 전달되더라도 사람의 귀로 인식할 수 있으려면 진동(pulse)으로 전환돼야 했다. 이를 위해선 전류의 교류를 직류로 바꿔주는 정류기능 부품이 필요했다. 플레밍밸브는 정류기능을 통해 교류전파신호를 직류로 전환해 가청(可聽·audible)신호로 전환(검파)해 주는 최초의 부품이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발명소식을 들은 리 드 포리스트는 이 발명품의 중요성을 간파해 냈다. 그리고 이를 좀더 발전시켜 자신이 구상하는 무선방송에 도움이 될 부품으로 만들어 내고 싶어했다.

그는 플레밍의 진공관을 살펴보고는 이 발명품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됐다.

“이 장치를 이용하면 보다 강력해진 신호로 사람의 목소리를 전달하는데 사용할 수도 있겠어.”

포리스트는 필라멘트에 하나의 배터리가 연결돼 있는 플레밍진공관을 변형시켜 보았다. 플레이트에 자신이 날개(wing)로 부르는 또 하나의 배터리 전극을 연결시켜 보았다.

1906년 1월18일. 드 포리스트는 2년 전 플레밍이 발명한 진공관을 변형했다. 그 결과 두 개의 전극을 가진 전자기장파 검출용 다이오드진공관 검파기(dector)가 등장했다. 이름하여 오디온(Audion)이었다.

포리스트는 이를 특허출원하면서 “이 발명은 미약한 전류나 발진, 특히 무선전신수신시스템의 전류를 검출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 발명의 목표는 무선전신신호를 받을 때 아주 단순하고, 민감하며, 불완전한 전기 접촉, 저항 등의 요인이 발생해도 별다른 조정을 할 필요가 없는 오실레이션 검파기 또는 리스폰더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썼다.

오디온은 조악했다. 그리고 불완전한 진공관 속에는 가스가 차 있었다.

드 포리스트 진공관과 플레밍밸브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플레이트와 이어폰 사이에 ‘B’배터리로 불리는 두 번째 배터리가 추가된 점이었다. 또 전류,전압,전기량을 측정하는 검류계(galvanometer ·檢流計) 대신에 이어폰을 사용한 점이었다.

■플레밍진공관을 변형해 혁신을 가져오다

하지만 이 두가지 변화는 혁신을 가져왔다.

플레밍의 2극진공관은 유리관 안에서 신호를 비접촉식으로 전달해 주기만 했다. 반면 포리스트의 진공관인 오디온은 전파신호를 증폭해 사람의 귀로 직접 들을 수 있게 해 주었다.

9년 후인 1915년 AT&T를 통해 해군용으로 설치될 무선전화 통신 장비에 유일하게 선택될 진공관 부품이었다. 또한 그것은 1920년 미국에서 본격화되는 상업용 라디오방송 및 수신기 세트 생산에 사용될 결정적 부품이 발명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드 포리스트는 이 해 11월 19일 미특허청으로부터 오디온(Audion)으로 불리는 이 발진반응기기(Oscillation Responsive Device)에 대한 특허(미특허 836,070호)를 받았다.

앞서 8월에는 플레이트 회로에 건전지를 사용하는 변화를 준 또 하나의 진공관 특허를 확보했다. 그는 이 특허출원서에 “오디온은 전류를 연속적으로 연결했다 끊었다 함으로써 전화선의 전류를 강화시켜 주기 때문에 전화의 송수화기 신호를 강화하는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오디온은 무선통신용 스위칭 역할을 하는 부품으로서는 유용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심각한 기술적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어느 정도 소리를 증폭하게 되면 전파에서 찍찍거리는 불규칙한 잡음들이 났다. 장치 자체에서 나오는 전류가 만들어 내는 소리였다. 전류가 오디온의 회로로 역류하는 피드백 과정을 거듭 되풀이 하면서 전파방해를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 잡음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어떻게 없애야 할까?”

리 드 포리스트는 이를 제거하기 위해 고민에 빠졌다.

1906년 11월. 드 포리스트는 에디슨이 전구에서 전류가 빠져 나가도록 금속을 추가했던 것을 기억해 내고 이를 적용할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즉각 전구를 만드는 헨리 맥캔들리스를 찾아 부탁했다.

“오디온의 필라멘트와 플레이트를 지나는 세 번째 전극을 만들어 주게나.”그 결과는 네모난 금속판(plate)과 그 위를 지나는 필라멘트 사이를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지나는 세 번째 전극이 붙은 진공관이었다. 드 포리스트는 이부품의 명칭을 격자(grid)모습 그대로 '그리드(grid)'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연히도 그리드는 드포리스트가 졸업한 예일대 축구장이름 그리디온(gridion)의 앞글자이기도 했다.

이 부품은 약한 검출신호를 더 크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이 세 번째 전극 그리드에 양전하가 전달되면 필라멘트 근처에서 더 많은 전자를 끌어오고, 그 결과 소리를 크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듬 해인 1907년 1월 특허가 출원됐다.

1907년 3월 14일. 드 포리스트는 브룩클린예술과학대(Brooklyn Institute of Arts and Sciences)에서 최초의 일반인 대상 지능형무선전송(The Wireless Transmission of Intelligence) 시연회를 가졌다.

이로써 1906년 이른 바 고양이 수염방식으로 불리는 10센트짜리 갈레나라디오(광석라디오)수신기의 불편함을 극복할 길이 열렸다. 여전히 갈레나 수신기로 라디오방송을 들으려면 여전히 무선수신사들처럼 헤드폰 선을 수신기 잭에 연결해 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리 드 포리스트 진공관은 발명 특허 출원 때 자신의 발명품의 원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부품은 그가 생각했던 이상의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미특허청은 전자기파에 훨씬 민감한 이 3극 진공관에 대해 1908년 2월 ‘무선전화(Wireless Telepnony)’란 이름으로 특허(미특허 879,532)를 허여했다. ‘우주전신(Space Telegraphy)’, 드 포리스트 밸브 등으로 불린 이 3극진공관이 바로 1919년 이후 알려진 트라이오드였다.

이 3극오디온은 당시 가장 빠른 전자식 스위칭 전극 진공관이었고 컴퓨터같은 초기 디지털 전자기기 등에 사용됐다. 트라이오드는 1948년 트랜지스터가 발명되기까지 대륙간 전화통신, 라디오,레이더의 주력 핵심부품이었다.

■사기꾼으로 몰린 발명가

하지만 리 드 포레스트의 소리를 증폭시켜 주는 3극 오디온이 관련업계로부터 쓸 만한 기술로 인정받기까지 9년이 더 지나야 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발명품이 사기라는 혐의를 뒤집어 쓰는 수모까지 당해야 했다.

“피의자 드 포리스트는 자사주식을 부적절하게 처분했으며 매수를 권유하기 위해 자신의 오디온이 중요한 가치를 지닌 발명품인 양 주주들을 속였다.”

1912년 3월. 뉴욕검찰은 디포리스트 와이어리스 텔레그래프(De Foress Wireless Telegraph)대표인 그를 사기 혐의로 체포, 기소했다.

그의 회사 임원들이 디 포리스트도 모르게 엄청난 가치를 붙인 회사 주식을 발행해 판매하고 판매대금의 75%나 가로챈 것이었다. 이들이 회사주식가치를 크게 불려 매각할 수 있었던 데는 리 드포리스트의 오디온기술이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한차례 발명품 시연회가 끝나면 일반인들에게 주식을 팔아 자본 규모를 늘리는 것이 기업들의 일반적 관행이었다. 에이브러햄 화이트를 비롯한 디 포리스트 회사 임원들은 주식을 발행하면서 성공 가능성을 설명했다. 이들은 “이 오디온 기술은 바다 건너까지 무선통신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며 주주들에게 투자하라고 권유했다.

뉴욕검사는 오디온에 대해 “백열전구로도 쓰지 못할 발명품”이라며 주주들을 대표해 디 포리스트를 사기꾼으로 몰아세웠다. 이미 회사 임원들은 150만달러에 달하는 주주들의 투자액 가운데 75%이상을 몰래 착복해 버린 상황이었다.

회사가 소송에 휘말려 있는 가운데서도 드 포리스트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실리콘최초의 무선통신회사 페더럴텔레그래프(FTC)의 초청을 받아 각종 실험을 하고 있었다.

1912년 8월22일. 캘리포니아 팰러앨토시 에머슨가 페더럴 텔레그래프(Federal Telegraph Company) 전자연구소(Elelctronics Research Laboratory). 소송비를 마련해야 하는 리 드 포리스트는 자신의 특허를 10만달러에 팔기위해 검증차 방문한 AT&T의 엔지니어들 앞에서 섰다. 그는 조수 찰스 V. 로그우드, 허버트 밴 에튼과 함께 3극 오디온 시연을 시작했다.

테이블에 깔린 종이 위에 집파리가 살금살금 걸어가면서 바르르 떠는 걸음 소리가 군화의 행진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렸다. 그리고 동그란 원통형 유리진공관으로 파리의 걸음을 120배나 증폭시켜 신호를 크게 듣는 실험에 성공했다. 하지만 AT&T엔지니어들은 이를 보고서도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아직 이 오디온을 무선전화기용 증폭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 평가를 해 봐야겠습니다.”

이들은 뉴욕으로 돌아가서도 답을 보내오지 않아 드 포리스트의 애간장을 타게 만들고 있었다.

“제 오디온 특허를 구매하기로 한 결정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결국 소송에 몰려있던 드 포리스트는 시드니 마이어스란 변호사를 내세워 특허인수 지연작전을 펼친 AT&T에 자신의 특허를 제안가의 절반에 매각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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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듬 해 2월 2일. 더블그리드 오디온이라 불리는 라디오송신기능을 가진 진공관을 개발했다. 이는 진공관으로 음성을 수신하는 것은 물론 송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미였다. 1915년 AT&T가 미해군에 설치하는 송신기용 진공관에 드 포리스트의 진공관이 처음 채택됐다. 이는 드 포리스트의 진공관이 라디오실용화를 위한 핵심부품으로서 인정받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하지만 무선송수신기를 통해 인류 최초로 모스부호 기계음이 아닌 인간의 목소리를 수백킬로미터 밖까지 전달하는 획기적 발명에 성공한 것은 캐나다의 발명가였다. 그것은 물론 드 포리스트의 진공관 시연에 앞서 이뤄진 것이었지만 라디오통신 역사의 한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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