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를 '을'로 취급하는 하드웨어의 무지

전문가 칼럼입력 :2014/02/27 08:50

전규현
전규현

필자는 펌웨어를 개발하는 등 하드웨어 팀과 같이 일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자주 만난다. 그런데 많은 개발자들이 하드웨어 팀과 일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회사에서 하드웨어에 더 집중하고 투자하며 소프트웨어는 보조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은 회사도 있지만 많은 회사들이 하드웨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부수적인 역할로 생각하곤 한다.

'소프트웨어' 하면 흔히 데스크톱 소프트웨어나 게임, 모바일앱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순수 소프트웨어, 즉 하드웨어에 종속적이지 않은 소프트웨어 비중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다. 반대로 하드웨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프트웨어 비중은 의외로 크다.

자동차의 예를 들면 현재 최고급 차량의 생산 원가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육박하고 있다. 그리고 2020년이 되면 고가 차량을 넘어 전체 자동차 생산 원가에서 소프트웨어 비중이 50%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과거에 하드웨어로 수행하던 기능이 점점 소프트웨어로 대체되고 있고 그러면서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기능이 실현 가능해져서 하드웨어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런 소프트웨어를 펌웨어,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라고 한다. 하드웨어와 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소프트웨어까지 합치면 그 비율은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하드웨어에서도 소프트웨어 비중이 점점 증가하고 있고 하드웨어 자체 성능에도 소프트웨어가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데 이를 다른 측면으로 보면 조만간 하드웨어 경쟁력도 소프트웨어 역량이 좌지우지 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게 될 날이 몇년 남지 않았다.

즉, 간단하게 얘기해서 앞으로는 소프트웨어를 잘해야 자동차도 잘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늦게 산업화되었지만 몇몇 분야에서 선진국을 따라잡았거나 앞질렀다. 자동차, 반도체, 선박, 휴대전화, 가전, 디스플레이, 플랜트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분야는 소프트웨어 선진국과 비교하여 아직 멀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몇 년 후가 되면 소프트웨어 역량이 하드웨어 경쟁력을 판가름한다니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분야에선 선진국에 더욱 뒤졌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그나마 따라잡고 앞지른 분야까지 내놔야 할 상황이 될 것이다.

실제 성공한 하드웨어 중심인 회사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방식을 보면 문제가 많다. 하드웨어 개발팀이 우위를 가지고 소프트웨어 팀은 시키는 대로 개발하는 방식인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A사는 하드웨어가 이미 설계된 상태에서 소프트웨어는 거기에 맞춰서 개발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개발팀 관점으로 봤을 때 하드웨어 설계에 문제가 있어도 소프트웨어가 우회 방법을 찾든지 해서 재주껏 해결해야 한다. 하드웨어 설계에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제대로 참여를 못해 이런 비효율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나 A사는 하드웨어는 변경이 어렵지만 소프트웨어는 얼마든지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으니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에 맞춰 개발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버그가 발견되면 무조건 소프트웨어 개발팀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하고 하드웨어 문제도 소프트웨어 개발팀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발생하면 욕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먹는다.

기획 단계부터 소프트웨어 개발팀의 의견을 들을 기회조차 없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이 잘 모아질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데 하드웨어 중심적인 개발에서는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지도 않는다.

B사는 모든 개발 일정이 하드웨어에 맞춰져 있다. 하드웨어 개발팀은 소프트웨어 개발팀과 개발 일정을 논의하지도 않는다. 이미 단계 별로 하드웨어 개발 및 양산 일정이 정해져 있으니 소프트웨어는 각 단계 별로 어떤 것은 1주일 어떤 단계에선 3주 안에 하드웨어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무조건 만들어내야 한다.

소프트웨어 개발팀은 인터페이스를 맞추거나 에뮬레이터를 통해서 미리 개발을 하고 싶지만 미리 정보를 제공 받지 못해 하드웨어 일정에 맞추느라고 항상 야근에 시달린다. 하드웨어 부서 일정이 바뀌면 소프트웨어 개발 일정도 틀어져서 일정을 조율하기가 매우 어렵다.

C사는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세스도 하드웨어 개발 프로세스에 맞춰져 있다.

과거에는 하드웨어를 개발할 때 한 두명의 개발자가 밤세워가며 펌웨어를 만들어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엄청나게 늘었다. 그런데도 하드웨어 개발 프로세스에 소프트웨어를 끼워 넣는 방식은 그대로다.

하드웨어 개발 프로세스에는 있지만 소프트웨어에는 없는 것도 있고 물론 그 반대도 있다. 소프트웨어는 알파, 베타 단계가 있지만 하드웨어는 그렇게 고쳐 나가지 않는다. 하드웨어 개발 프로세스에 억지로 소프트웨어 개발을 끼워 맞추다 보니 매우 비효율적으로 되어 있다. 용어들도 상이해서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도 적응해서 프로세스를 따르고 있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은 프로세스임은 명백하다.

D사의 경우 소프트웨어 기술 책임자가 하드웨어 출신이다.

이같은 상황은 업계에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다. 소프트웨어 분야는  전문가가 아니면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콜라를 팔던 경영자가 TV 파는 회사의 경영자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아무리 잘 하던 사람도 소프트웨어 조직의 기술 책임자가 될 수는 없다. 불가능하다.

그런데 많은 회사들의 소프트웨어 부문 CTO(Chief Technical Officer)가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아니거나 CTO가 아예 없는 경우도 많다. 하드웨어 출신이 소프트웨어를 맡기도 하고 소프트웨어 출신이라고 해도 중간에 관리자로 넘어가서 이제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아닌 사람이 CTO를 맡기도 한다.

경영자에게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요구하는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전문가인 경영자들은 추진력이 부족한 것처럼 보여 많이 밀려 났고 이제는 소프트웨어 조직도 전혀 다른 분야 출신의 불도저 같은 사람이 맡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영자들이 추진하는 정책이라고는 고작 끊임없는 야근이다. 단기적인 성과는 날 수 있지만 아키텍처는 엉망이고 개발자들은 지치고 개발 문화는 엉망이 되었다. 소프트웨어는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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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적인 하드웨어에서의 성공을 회상하며 소프트웨어도 거기에 끼워 맞추려고 하면 큰 착오다. 하드웨어에서 성공했다고 그 방식으로 소프트웨어를 조금만 더 잘하면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소프트웨어는 스타트업을 제외하고는 한두명의 천재가 밤을 세워서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의 부속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나마 그 동안 이룩했던 우위를 잃지 않으려면 소프트웨어가 '을'의 자리에서 벗어나 하드웨어와 동등한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규현 IT컬럼니스트

ABCTech Software의 대표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이며 소프트웨어 공학/개발 컨설턴트다. 27년간 한글과컴퓨터, 안랩 등에서 수많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였다. 그 과정에서 경험한 실리콘밸리의 개발 문화와 소프트웨어 공학을 국내의 대기업부터 중소기업에 이르는 수많은 회사에 전파하고 글로벌 수준의 소프트웨어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컨설팅하고 있다. 저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모든 것”(2010 페가수스)이 있으며 소프트웨어 공학 블로그인 allofsoftware.net의 운영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