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가 진정 필요로 하는 TV의 미래

전문가 칼럼입력 :2014/01/02 17:43    수정: 2014/01/02 17:44

이윤수
이윤수

지난 칼럼에서 지나친 디스플레이 해상도 경쟁에 대해 비판했다.  네이버에서 꽤 많은 피드백을 받았는데, 찬성도 있었지만, 반대 의견도 무척 많았다. 부정적 의견은 대부분 그럼 더는 기술을 발전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냐는 반문이었다. 물론 아니다. 기술 발전을 부정하는 IT 칼럼니스트라니!

기술 발전에는 한 가지 방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게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 글의 논지였다. TV의 예를 들어보자. 얼마 전 LG와 삼성이 올해 소비자가전쇼(CES)에 내놓을 새 TV 제품을 예년보다 서둘러 경쟁적으로 발표했다.

바로 '105인치 곡면 UHD TV’가 최근 몇 년간 계속 실패해온 TV 산업계의 연례 마케팅 구호인 3D, 스마트 TV 그리고 UHD TV의 바통을 이어받으려 하고 있다.

역시나 발전 방향은 높은 해상도, 큰 화면에 맞춰져 있다. 이는 현장감, 현실감을 극대화하려는 TV의 전통적인 발전 방향이다. 거기에 큰 화면에서 발생되는 왜곡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면까지 구부렸다니, 정말 궁극의 기술력이 아닐 수 없다.

현실 세계가 극장 무대로 그것이 다시 평면의 영화관으로 그리고 조그만 흑백 TV 화면으로 다운 그레이드를 감수하며 소비자에게 접근성을 높여왔던 영상 기술이 이제 다시 잃어버렸던 현실감을 고스란히 복구하게 되는 실로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생각해 보자. 높은 해상도와 큰 화면은 더 많은 자원을 요구한다. 이런 발전 방향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우리가 아직 성장 위주의 석유 시대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제러미 리프킨 교수가 표현했듯 석유에 의존하는 2차 산업혁명은 노화하고 있으며 다가올 3차 산업혁명에 맞는 새로운 플랜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에게 자원 고갈과 지구 온난화는 언제 터질지 몰라 가슴을 졸이는 폭탄 냄비 게임 같은 것이다. 이제는 고사양이 아니라 고효율이 새로운 기술 발전의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

고사양이 아닌 고효율이 기술의 역행인가? 아니다. 낭떠러지 폭포로 가는 갈래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기수의 조정이 필요한 것뿐이다. '105인치 곡면 UHD TV’만이 최고의 기술력인 것은 아니다. 고효율의 기술 요구 수준도 결코 낮지 않다.

저전력 프로세서와 저전력 디스플레이 등의 기술은 고도의 도전 과제이다. 물론 이런 노력을 LG, 삼성이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아니 누구보다도 많이 노력하고는 있다. 

하지만 기술 마케팅의 방향이 문제다. 이미 ‘77인치 곡면 UHD OLED TV’를 발표한 마당에, ‘105인치 곡면 UHD TV’ 라니. 둘 사이의 차이를 눈치챘는가? 화면은 더 커졌지만, OLED가 아니다. 왜 상대적으로 더 고품질이고 에너지 효율적인 OLED를 버리고 화면 크기 경쟁에 치중했을까를 생각해 보자.

낮은 수율의 OLED가 아직은 그 정도 화면 크기의 경제성을 해결하지 못한 것일 테고, 그동안 항상 세계 최초 최대 크기라는 타이틀이 주요 TV 마케팅 선전 항목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번에도 그런 뻔한 행보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새 시대에 맞지 않는 기술 발전의 역행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해보자. 과연 TV가 현장감, 현실감을 극대화해서 시청 몰입도를 높이는 데에만 집중하면 되는가, 꼭 시각적인 감각 몰입만이 TV 미디어의 역할인가? 몰입에 대한 인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감각 몰입보다 중요한 것이 서사 몰입이다.

우리는 멋진 이야기에 매료된다. 우리는 책으로도, 라디오로도, 모바일 DMB로도 미디어 소비의 즐거움에 빠져들 수 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행복감을 주는 심리적 몰입 상태, 즉 '플로우(flow)'는 외적 조건과 상관없이 의식이 질서 있게 움직일 때 일어나는 것이라 설명했듯이 현실에 최대한 근접하도록 꾸민 시각적 외적 조건보다는 콘텐츠 자체의 시각적 구성이나 이야기의 구조가 더 즐거움을 주는 몰입 조건이 될 수 있다.

물론 시각적 감각 몰입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현재의 TV가 바로 그런 걸 극대화하는 특장점이 있는 스크린이다. 그런 특장점에 맞는 콘텐츠도 분명 있다. 새로운 TV 모델의 특수가 꼭 대형 스포츠 이벤트와 맞물려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1인칭 시점 게임 같은 것도 시각적 현실감이 분명 게임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요소이다. 하지만 그것이 TV의 모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TV 시청 시간의 대부분은 드라마, 예능, 뉴스같이 시각적 감각 몰입이 아니라 서사 몰입에 적합한 콘텐츠로 채워지고 있다.

점점 개인화되는 미디어 소비 행태 변화도 간과하면 안 된다. 라이브 방송은 온디맨드 스트리밍 서비스에 점점 자리를 내주고 있고, 비 TV 스크린으로 미디어를 소비하는 시간도 늘고 있다. 당연히 차세대 TV 스크린의 중요한 주제에 개인화가 빠지면 안 된다.

물론 스마트 TV가 본질적으로 개인화 성향이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스마트 TV의 스크린 폼팩터는 개인화와는 거리가 멀다. 경제성 면에서 큰 화면은 개인화와 궁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TV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TV가 아닐 수 있다. 예컨대 태블릿 같은 미디어 단말기가 새로운 개인화된 TV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진정 태블릿의 확산으로 시장 잠식을 두려워해야 할 업계는 PC가 아니라 TV일 수도 있다.

이런 포스트PC는 개인화되고 전용화된 미디어 단말기의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고 있다. 더는 PC는 PC고, TV는 TV인 시대가 아니다. 그렇다고 PC나 빅 스크린 TV 시장이 이 모호한 태블릿의 포지셔닝을 우려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TV 폼팩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에너지 효율적인 보다 작은 스크린의 개인용 포터블 TV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자. 애초부터 라이브 방송 포트와 튜너는 갖고 있지도 않고 무선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푹이나 호핀을 볼 수 있는 전용 TV이자 PC나 태블릿의 무선 모니터 역할도 한다.

아주 가볍고, 충전식이며, 책상이든 침대 위든 쉽게 세울 수 있는 스탠드 구조로 되어 있다. 말하자면 TV 대용으로서 지금의 태블릿이 완벽히 채워주지 못하는 가려운 구석을 잘 긁어줄 수 있는 새로운 개인 미디어 전용 스크린이랄까. 예를 들자면 그렇다.

시대가 바뀌었고, 기술의 발전 방향에는 이런 다양한 고민이 필요하다. 당연히 마케팅의 방향도 그런 고민의 결과와 맥을 같이 해야 한다. 2013년의 꽃이었던 85인치 UHD TV는 가격이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105인치 곡면 UHD TV 가격은 1억 원에 근접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일반 소비자의 경제력과는 괴리가 있는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을 기술이다. 대중적 ‘소비'가 요원한 전시회 제품으로 기술력 우열을 가리는 장면은 소비자 입장에선 잘 와닿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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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기술력이란 누가 더 높은 수율의 더 큰 패널로 TV를 만들어 내느냐의 경쟁이 더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다. 누가 더 소비 효율적으로 최적화된 제품을 만들어 내느냐, 누가 새로운 소비 경험의 TV 폼팩터를 만들어 내느냐. 새해에는 그런 구태스럽지 않은 기술 발전의 바람직한 경쟁이 시작되길 기대해 본다.

(글을 다 쓰고 난 다음에, 삼성이 1억 7천만 원짜리 110인치 UHD TV를 출시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내용을 수정할까 했지만 달라질 건 없다. 이 코멘트만 추가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윤수 IT컬럼니스트

디지털 경험 연구가, 테크 칼럼리스트, 미래 전략가. 2012년까지 SK텔레콤에서 유비쿼터스 및 뉴미디어 사업 전략 및 기획 업무를 담당했었고, 이후 디지털 경험 연구를 위한 DIGXTAL LAB을 설립하였으며, 미래 전략 컨설팅 그룹인 에프앤에스컨설팅에 참여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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